러시아, 경찰이 곳곳에서 검문하지만 괴물이 사는 나라는 아니라네
▣ 상트페테르부르크= 박현봉 전문위원 parkhb_spb@yahoo.com
올해로 한-러 수교 15년째를 맞는다. 여전히 러시아 하면 공산당 ‘괴물’이 상주하는 ‘붉은광장’과 ‘크렘린’, 그리고 무시무시한 철권통치 기관인 ‘소련 비밀경찰 KGB’라는 단어를 떠올리곤 한다. 이런 사고방식의 근저에는 러시아의 대민 통제제도를 옛 소련의 전유물로 취급하는 태도가 자리잡고 있다. 러시아에서 대민 통제의 기원이 사회주의 이전 200여년간 존속해온 로마노프 왕조의 러시아 제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것은 내로라하는 러시아 전문가들도, 일반 러시아 사람들도 잘 모르는 사실(史實)이다.
현대 러시아에 들어와 이름을 ‘연방보안국, FSB’로 바꾼 KGB는 제정 말기 전제군주에 대항하는 불순분자들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설립된 내무경찰 산하 ‘비밀수배국’의 전신이다. 19세기 후반 급진 테러단에 의해 폭사한 부친의 뒤를 이어 황제로 즉위한 알렉산드르 3세는 보수 반동정책으로 정국을 몰아갔고 1880년 오늘날 현대 경찰제도와 다를 바 없는 내무경찰제도를 마련했다. 이듬해에는 ‘국가 질서와 사회 안녕을 수호하기 위한 조처’라는 특별 포고령을 발표하고, 그에 따라 내무경찰 산하에 ‘비밀수배국’을 창설했다. 이후 소비에트 러시아는 초대 내무위원을 지낸 제르쥔스키가 오늘날 유명한 KGB로 이 부서 이름을 변경하면서 대민통제의 전통을 이어갔다.
러시아를 출입하는 모든 외국인들은 한번쯤 ‘레기스트라치야’(거주 등록)라는 제도 때문에 골탕을 먹는다. 그럴 때마다 이구동성으로 “그럼, 그렇지. 소련이 어디 가겠어? 하여튼 이놈의 소련은 통제 하나는 끝내주니…”라고 불평한다. 이런 통제방식의 기원도 로마노프 왕조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 어디를 가더라도 경찰들의 모습이 보이고 단순 진압봉이 아닌 실총을 휴대한 일반 경찰들도 많다. 그리고 단순범죄와 테러 등 불미스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취지로 자주 거리의 행인들을 불심검문한다. 서류상 문제가 있는 사람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현장에서 벌금 낼 의향이 있다는 제스처를 하거나, 반대로 검문 경찰의 “경찰서까지 가야 하는데 골치 아플 거다”는 식의 말을 신호로 협상이 시작된다. 월평균 5천루블(20만원) 정도의 박봉에 시달리는 일선 경찰에게 이런 부수입은 유혹적일 수밖에 없다. “경찰 생활 1년에 외곽 지역 아파트 한채가 나온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어쨌든 검문은 고물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명감에 투철한 경찰도 많다. 지난 9월 초 취재 겸 한 지역을 여행할 때의 일이다. 1년 전쯤 수천명의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인질극이 벌어졌던 러시아 남부 베슬란에 도착했다. 당연히 지역적 특수성 때문에 경찰이나 공안당국이 적잖이 간섭하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제반 서류를 다 갖추고 있었기에 별반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취재허가서가 없다는 꼬투리를 잡혀 일행은 경찰서로 송치됐다.
경찰 심문 과정에서 아무런 불순한 의도 없이 이곳을 방문했다는 것을 누차 언급했다. 한참 지난 뒤 반장 격인 일리야라는 경찰이 문서상 문제없는 평시민을 오래 격리해 죄송하다고 정중하게 사과했다. 잉구세티아나 체첸 반군쪽에서 인질극 1주기를 전후로 또 한번 기념 테러를 할 것이라는 소문도 흘러나와서 이렇게 검문이 엄중하다는 것이다. 한 공안당국 요원은 현지에서 찍은 사진들이나 전해들은 얘기들이 외국 언론 어딘가에 공개될 것을 염려해 “러시아에 대해 너무 나쁘게 쓰지 마세요”라고 귀엽게 한마디 덧붙였다. 요즘도 우리 주변에서 누가 러시아에 간다고 하면 “왜 그 무시무시한 나라에 가느냐”고 질색한다. 100% 안심할 순 없겠지만 여느 나라와 같고 한번쯤은 와볼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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