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델리 부자동네에서도 한달 10만원이면 되는데 안 두고 사는 이유
▣ 델리= 우명주 전문위원 greeni@hotmail.com
내게 집안일 도와주는 아줌마란 텔레비전 속 ‘회장님’ 댁에서나 보던 풍경이었다. 그러던 것이, 인도에 와서 마음만 먹으면 그런 사람쯤(!) 쉽게 둘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다른 개발도상국도 비슷한 상황이겠지만, 특히나 인도는 인구가 많아서 그런지 인건비가 터무니없이 싸다. 간단한 청소 정도라면 매일 와서 일하는 사람이 한달에 겨우 1만원을 받아가기도 하고, 하루 종일 집안일을 봐주는 사람도 몇만원 정도에 고용할 수 있다. 이곳 델리에도 강남과 강북 식의 차이가 있어서 뉴델리 부자동네에서는 그 금액이 10만원 정도가 되기도 한다지만, 한국 상황과 비교하면 심하게 ‘착한’ 가격이다.
인도 생활이 5년째지만 한번도 집안일 도와주는 사람을 둔 적이 없다. 그것은 알뜰하다거나 부지런하다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단지 그 사람들의 청소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다지 깨끗하게 빨지도 않은 걸레로 방바닥을 몇번 휘젓는 식의 청소는 오히려 방안의 더러운 것들을 이리저리 퍼트리는 꼴이 될 것 같아서 탐탁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일하러 오는 시간에 꼭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도 시집살이하는 것 같아 싫었다. 처음 이곳에 와서 베란다가 넓은 집에 살 때, 빨래를 널러 갈 때마다 옆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는 내 집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몇번을 거절한 뒤에는 매일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그 아주머니 눈길이 두려워 이웃집을 연방 흘끔대며 빨래를 널어야 했다. 사실, 아주머니에게 일을 하게 하고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하는 것이 내게는 경제적이었을 텐데.
인도인들에게도 아주 평범한 일이듯이 한국 사람들, 특히 가족이 모두 와 있는 경우에는 그렇게 일하는 사람을 두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긴다. 언뜻 생각하면 마냥 편할 것 같지만 그 사람들은 또 나름대로 고충을 호소한다. 운전기사는 차의 기름을 빼내 팔아버리고는 거의 매일같이 주유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새 부품을 헌 부품과 바꿔치기하는 일도 허다하다. 견디다 못해 해고하면 차를 못 쓰게 망가뜨리고 도망가버린다. 집안일을 봐주는 사람이 손버릇이 안 좋아 고생하는 경우도 있다. 돈이나 물건에 손을 댔다가 들키고도 뻔뻔하게 나온다.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와보니 돈과 사람이 함께 사라지고 없거나 월급 받은 다음날 아무 말 없이 안 와버리는 것도 일상다반사! 한국에서는 그런 도움 없이 지냈던 사람들도 이상하게 이곳에서는 그런 도움 없는 생활을 상상하지 못하고, 또 새로운 사람을 구하느라 나름대로 고생을 한다. 그래서인지 문제를 일으키는 고용인들을 서로 알리는 것이 교민사회에서 가장 큰 정보가 되었을 정도다.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사람을 고용해서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가끔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을 ‘아랫것’ 취급하며 자신을 조선시대 별당아씨 내지는 대감마님으로 착각하는 듯한 한국인들의 모습에 낯뜨거울 때가 있다. 아니면 인도 사회를 비판할 때 가장 먼저 꼽는 인도의 계급제도인 ‘카스트 제도’에 어느새 물들어 자신을 최상위 카스트인 브라만쯤으로 생각하거나, 마음속으로 식민지 시대의 영국 나리들 흉내를 어설프게 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단지 고용인들에 대한 멸시가 아니라 인도 전체에 대한 무시가 깔려 있는 그런 행동들은 무례할 뿐 아니라 참으로 위험한 것이다. 한 나라를 판단하는 데 단순히 현재의 국민총생산만을 기준으로 삼는 모습은 비단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배낭 여행객들의 태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인도를 무시하고 있을 때 인도는 과연? 지난해 우리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한 첫날 신문 경제면(15면)에서 겨우 사진도 아닌 대통령의 커리커처를 발견하고 좌절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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