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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114주 랭킹 1위, 애슐리 바티 ‘멈춤 버튼’ 누르다

〔스포츠 인(人)사이드〕 25살 나이에 테니스 은퇴를 선언한 애슐리 바티, ‘영원한 승리자’의 결론을 쓴 매우 드문 종류의 영웅담
등록 2023-06-02 19:11 수정 2023-06-06 00:56
애슐리 바티가 2022년 3월24일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리즈번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브리즈번/EPA 연합뉴스

애슐리 바티가 2022년 3월24일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리즈번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브리즈번/EPA 연합뉴스

2022년 테니스계에는 유독 이별이 잦았다. 9월 유에스(US)오픈을 끝으로 서리나 윌리엄스가 코트를 떠났고, 같은 달 로저 페더러가 작별을 고했다. 현역 시절 수확한 그랜드슬램 타이틀만 43개(서리나 23개, 페더러 20개)에 이르는 두 동갑내기 전설의 은퇴에 많은 이가 슬퍼했지만, 경천동지할 일까지는 못 됐다. 진정 테니스계를 동요하게 한 발표는 그보다 다섯 달 앞선 2022년 3월23일,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1996년생 테니스 스타 애슐리 바티의 입에서 나왔다. 25살 나이에 그는 라켓을 내려놓기로 했다.

7경기 동안 한 세트도 내주지 않은 호주오픈

두말할 것 없이 바티는 대단한 선수였다. 은퇴를 공표한 바로 그 시점까지 114주 연속 여자테니스협회(WTA) 랭킹 1위를 유지했는데, 이는 여자테니스 역사상 네 번째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바티는 그해 1월 호주 선수로는 44년 만에 호주오픈 단식 정상에 섰고, 이미 윔블던(2021년)과 프랑스오픈(2019년)까지 하드, 잔디, 클레이 서로 다른 세 코트를 제패한 선수이기도 했다. 포핸드와 서브가 강했고 기술만큼이나 전술이 뛰어났다. 호주오픈에서는 7경기 동안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우승컵을 들었다.

완숙한 기량과 궤도에 오른 커리어. 더할 나위 없어 보였던 호주에서의 대관식은 그러나 그의 마지막 경기가 됐다. 은퇴 소식을 알리는 인스타그램 영상에서 바티는 “(결정하기) 힘들었어요. 하지만 옳은 결정이라는 걸 알아요”라고 말했다. 젖은 눈으로 “정말 신나요”라고도 했다. 영상 속 대담 상대로 동석한 그의 십년지기 복식 파트너 케이시 델라쿠아는 미소와 눈물 섞인 포옹으로 바티를 축복했다. 바티는 이 대화에서 은퇴를 선언하거나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고백하고 있었다. 즉 ‘은퇴 고백’ 영상이었다.

바티의 고백에 접근하는 첫 번째 방법은 스포츠 노동 관점에서 보는 일이다. 사실 바티는 프로 데뷔 뒤 두 차례 일종의 은퇴 연습을 했다. 17살 무렵(2014년) 18개월을 쉬었고, 2020년 다시 11개월을 쉬었다. 테니스와 일상의 균형이 뒤틀려 위협으로 다가올 때마다 멈춤 버튼을 눌렀다. 네 살에 라켓을 잡았다는 바티는 여느 신동과 마찬가지로 일찍 냉엄한 승부의 세계에 입도했고, 14살에 프로로 전향해 15살에 윔블던 주니어 챔피언에 올랐다. 성장세가 가파른 만큼 우울과 불안의 골도 깊어졌다.

프로테니스 선수의 노동 강도는 가혹하다. 호주오픈(1월)부터 프랑스오픈(5∼6월), 윔블던(7월), 유에스오픈(8∼9월)까지 메이저 대회 네 개를 중심으로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투어가 한 해 달력을 빼곡하게 장악한다. 휴식은 곧 랭킹에 대한 타격으로 이어지므로 선수들은 시즌을 중단해야 하는 수준의 부상이 아니라면 사계절 대부분을 훈련에 매진하며 대회 준비로 보낸다. 코트 안팎에서 고독감과 압박감이 안주할 곳 없는 그들의 심신을 짓누른다. 그리고 이 모든 어려움은 보통, 어릴수록 더 버겁다.

운을 알아본 것은 ‘쉬었기 때문’

오래전부터 이 문제에 천착해온 여자테니스협회는 1995년 주니어 선수에 대한 연령 제한 규정을 도입했다. 이 규정이 생긴 이후 14∼17살 선수는 한 해에 참여할 수 있는 대회 횟수가 제한됐다. 어린 나이에 두각을 드러낼수록 빠르게 소모돼 탈진에 이르는 불상사가 거듭되자 고안한 예방책으로, 일명 ‘캐프리아티 룰’이라고 한다. 1990년 13살에 프로 데뷔해 천재로 칭송받다 4년 만에 조기 은퇴한 제니퍼 캐프리아티에게서 따왔다(캐프리아티는 2년 뒤 복귀했고 복귀 5년 만에 그랜드슬램 우승컵을 들었다).

다만 ‘캐프리아티의 가호’만으로 후배들은 평화를 지킬 수 없었다. 바티는 십 대 중반의 어느 해 집에 머무른 날이 27일에 불과할 정도로 혹독한 일정에 시달렸다. 17살에 ‘첫 번째 번아웃’을 선언한 그는 18개월간 가족 곁에 머무르며 우울증 치료를 받았고, 캠핑과 바비큐 파티 같은 일상을 만끽했으며, 프로 크로켓 팀에 들어가 소진된 에너지를 충전했다. 복귀 뒤 밑바닥에서 출발해 3년 만에 첫 그랜드슬램(프랑스오픈)을 석권한 그는 “(그때) 물러서서 거리를 두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 앉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바티의 이야기를 스포츠 노동자의 번아웃에 대한 경고장으로 한정하고 마는 일은 아쉽다. 그의 서사는 승리(우승)와 퇴장(은퇴)의 순간을 일치시키면서 ‘영원한 승리자’로 역사 속에 자신의 서사를 매듭짓는 데 성공한, 매우 드문 종류의 영웅담이기도 하다.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바티는 그 운을 알아볼 만큼 용감했다. 이 섬세한 관찰력은 물론 ‘쉴 때’ 익혔을 것이다. 쉬어갈 때마다 바티는 지친 자신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고, 많은 위대한 인물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직관할 수 있게 됐다.

그의 서브가 그리울 팬들로서는 아쉽겠으나 바티가 톰 브래디나 마이클 조던처럼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올 공산은 적어 보인다. 바티는 ‘은퇴 고백’ 영상에서 “내 행복은 결과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내가 전부를 바쳤다는 사실을 아는 데 있음을 알게 됐다. 나는 성취감으로 가득 차 있고 행복하다”고 했다. 은퇴 이후 그는 결혼했고, 임신 소식을 알렸으며, 책을 썼고, 골프 대회에 출전하는 한편, 호주의 ‘바티 키즈’들에게 멘토링을 시작했다. 변함없이 “테니스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멀리서 응원하는 사이’ 같다.

새로운 삶을 향해 떠난 지 440일

테니스 선수 애슐리 바티가 라켓을 놓은 지 440일(2023년 6월5일 기준)이 됐다. 이제 이 문장은 이렇게 뒤집어 쓰는 편이 낫겠다. 인간 애슐리 바티가 새로운 삶을 향해 떠난 지 440일이 됐다. 그는 순항 중이다. 언제든 멈춰 설 준비가 돼 있기에.

박강수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 기자 turner@hani.co.kr*새로 시작하는 ‘스포츠 인(人)사이드’는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 박강수 기자의 동서고금 스포츠 선수 관찰기입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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