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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프로풋볼 선수가 무릎 꿇다가 퇴출 당한 이유는?

인종차별에 항의한 콜린 캐퍼닉의 투쟁기…그가 마주한 두 개의 전장
등록 2025-07-04 19:02 수정 2025-07-07 17:15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 콜린 캐퍼닉(가운데)이 2016년 10월2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의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풋볼 댈러스 카우보이스와의 경기 전 국가 연주 순서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EPA 연합뉴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 콜린 캐퍼닉(가운데)이 2016년 10월2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의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풋볼 댈러스 카우보이스와의 경기 전 국가 연주 순서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EPA 연합뉴스


미국프로풋볼(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의 쿼터백 콜린 캐퍼닉이 대뜸 경기 시작 전 국가 연주 순서에서 기립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여름의 일이다. 이상행동을 발견한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길거리에 주검이 나뒹굴고 살인마들은 호의호식을 누리는 나라를 향해 경의를 표할 수는 없다.” 그해에만 적어도 4명의 흑인이 경찰의 불심검문과 과잉진압에 희생된 참이었으니, 캐퍼닉의 문제의식과 항의 방식은 선명하고도 단순한 논리로 정돈돼 있었다. 미국의 공권력이 유색인종을 ‘2등 시민’ 대우하며 그들의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를 언제까지고 방기하는 한,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 아메리카’는 없다는 것이다. 캐퍼닉의 항의는 미국 사회와 세계 스포츠 업계의 풍경을 크게 바꿨고, 이 시즌을 끝으로 그는 리그에서 사실상 퇴출당했다.

 

NFL만 보며 뛰었던 그가 투쟁을 택한 까닭

 

2025년 8월26일이면 캐퍼닉이 이른바 ‘무릎 꿇기’(taking a knee) 시위를 한 지 꼬박 9년이 된다. 당시 그를 향해 “당장 해고해야 한다”고 을러댔던 도널드 트럼프가 첫 번째 임기를 마치고 낙선했다가 다시 출마해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사이, 캐퍼닉의 커리어는 요지부동 멈춰 있었다. 이에 관해서는 이미 스파이크 리 같은 거장이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라고 하지만, 이 자리에서도 짧게나마 그의 일대기를 훑지 않을 수 없겠다. 캐퍼닉의 이야기에는 스포츠 선수가 윤리적 의사를 드러내며 운동장 밖을 향해 발화할 때 마주하는 대중의 지지와 냉소, 제도적 억압과 정치적 반동 등 일대 혼란이 소상하게 집약돼 있다. 그것은 다수의 스포츠 선수가 겪어보지 못한 무규칙의 싸움일 수밖에 없고, 여기서의 승부는 훨씬 더 복잡한 판정을 요하기 마련이다.

캐퍼닉의 어린 시절은 풋볼을 향한 사랑과 인종 정체성에 대한 애착을 두 축으로 삼고 있다. 백인 가정에 입양돼 백인 동네에서 자랐으나, 미국프로농구(NBA)의 스타 가드 앨런 아이버슨을 추종하며 ‘콘로’(머리카락을 두피에 붙여 땋는 아프리카 전통 헤어스타일) 머리를 했고, 고등학교 시절 야구 스카우트의 방문을 마다하고 오로지 풋볼팀 제안만을 기다리며 대학 수백 곳에 자신의 경기 영상을 돌렸다. 마침내 연이 닿은 네바다대학에서 캐퍼닉의 기량은 만개했는데 그가 얻은 것은 실전 경험과 성적, 신기록뿐만이 아니었다. 네바다대학은 1921년 첫 흑인 선수를 배출했고, 1946년 미시시피 원정 경기에서 상대 팀이 흑인 선수의 출전을 금지하자 경기 자체를 보이콧하는 등 다양성과 평등, 포용의 문화를 공동체의 기치로 삼은 팀이기도 했다.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선수들이 2020년 8월10일 미국프로농구(NBA) 덴버 너기츠와의 경기 전 국가 연주 순서에 무릎 꿇기 자세를 취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선수들이 2020년 8월10일 미국프로농구(NBA) 덴버 너기츠와의 경기 전 국가 연주 순서에 무릎 꿇기 자세를 취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인종차별 반대의 상징이 된 ‘무릎 꿇기’

 

캐퍼닉은 2011년 NFL 드래프트 2라운드 4순위로 프로에 입성했고, 이듬해 10대 흑인 청소년 트레이번 마틴이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귀가하던 중 자경단원 조지 지머먼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지머먼은 ‘정당방위’ 주장이 인정돼 2013년 7월 무죄 평결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이 촉발됐다. 이후 에릭 가너, 마이클 브라운, 프레디 그레이, 필랜도 캐스틸, 앨턴 스털링 등 수많은 흑인이 경찰의 총에 맞거나 목이 졸려 사망했고 가해자로 지목된 경찰은 대부분 기소조차 되지 않거나 처벌받지 않았다. 2016년 여름의 상황이다. 어느덧 샌프란시스코의 간판이 된 캐퍼닉은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프로스포츠 리그를 무대로 공개 시위를 개시한다.

‘무릎 꿇기’ 시위를 복기하는 많은 미디어가 캐퍼닉으로 인해 미국 사회가 두 동강 났다고 표현하곤 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인종차별을 둘러싸고 누적된 사회적 균열에 그가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가시화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보수세력 일각에서는 저들이 국가를 모독한다며 ‘애국자 대 배신자’ 프레임을 들고나왔고, 그들의 대변자인 트럼프가 “저 개자식들을 경기장에서 쫓아내라”라며 기름을 부었다. 트럼프의 발언 직후 경기에서 200명이 넘는 NFL 선수들이 무릎 꿇기에 동참했고 이는 곧 미국의 여타 프로리그, 즉 여자프로축구(NWSL)·프로야구(MLB)·프로농구(NBA)·여자프로농구(WNBA)와 유럽 축구, 테니스 등의 종목으로 수출됐다. 2022년 슈퍼볼 하프타임쇼 공연자 에미넴부터 프리미어리그의 손흥민까지, 무릎 꿇기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의 연대를 상징하는 포즈로 자리매김한다.

 

부당함 맞서다 경기장에서 쫓겨나다

 

캐퍼닉의 행적은 앞선 세대 선배들의 투쟁사 연장선상에 자리한다. 1945년 유리 천장을 깨고 리그에 진입하는 일이 곧 투쟁이었던 재키 로빈슨(미국 최초의 흑인 야구선수)부터,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육상 200m 시상대에 올라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하늘로 들어 올리며(블랙 파워 경례) 흑인 민권 운동의 상징적 한 장면을 남긴 토미 스미스와 존 칼로스까지, 그들은 종종 운동장 안팎의 싸움에서 모두 이겨 챔피언에 등극하거나 양쪽에서 패해 뒤안길로 사라지기도 했다.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하며 반전운동 선봉에 섰다가 복싱계에서 퇴출당했으나 보란 듯이 돌아와 시대를 평정한 무하마드 알리가 전자라면, 1990년대 캐퍼닉처럼 국가 연주 시간에 기립을 거부했다가 출전 정지 징계를 맞고 트레이드되며 몰락한 NBA의 마무드 압둘라우프는 후자다.

2021년 4월13일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에 나선 시민들이 무릎 꿇기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1년 4월13일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에 나선 시민들이 무릎 꿇기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17년 자유계약 신분이 된 캐퍼닉에게 영입을 제안하는 팀은 없었다. 당시 캐퍼닉의 나이는 겨우 29살이었으니, 누가 봐도 ‘모난 돌이 정 맞는’ 리그 차원의 집단 따돌림이었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미국 현대사에 길이 남을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NFL은 그제야 “캐퍼닉의 메시지를 경청했어야 한다”는 공개 메시지를 낸다. 결과적으로 캐퍼닉은 자의 반 타의 반 직업을 운동선수(athlete)에서 운동가(activist)로 바꿔야 했고, 선수 시절을 상회하는 명성과 어떤 NFL 선수도 넘보기 어려운 사회적 성취를 일궜으나 평생의 사랑이던 풋볼을 잃었다. 재단 활동과 사업으로 공사가 다망한 와중에도 캐퍼닉은 여전히 필드 복귀를 목표로 매일 훈련 중이라고 한다. 그가 이 투쟁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지지 않길 바란다.

 

박강수 한겨레 기자 turner@hani.co.kr

 

*동서고금 스포츠 선수 관찰기 ‘스포츠 인(人)사이드’ 연재를 끝냅니다. 그간 수고해주신 필자와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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