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난 잭 화이트(본명 존 길리스)는 고등학교 시절 사제가 될까 생각도 했지만, 신학교 입학을 목전에 두고 단념했다. 마침 새로 장만한 앰프가 있었는데 학교에 가져가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앙보다 기타를 삶의 우선순위에 놓기로 한 소년은 이후 화이트 스트라이프스라는 밴드를 결성했고, 2001년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호텔에서 공연 전 사운드를 점검하다가 짤막한 기타 리프를 만들어냈다. 미니멀한 7음 구성이었다. 화이트는 얼마 뒤 이 리프를 바탕 삼아 곡을 썼고, ‘세븐 네이션 아미’(Seven Nation Army)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러니까, 일이 이렇게 된 것이다.
‘세븐 네이션 아미’는 2024년 8월 기준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인 스포티파이에서만 17억 회 이상 스트리밍 됐다. 2021년 음악잡지 롤링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500곡’에서는 36위를 차지했다. 우리 시대 가장 탁월한 기타리스트 가운데 한 명인 잭 화이트가 세 개의 밴드를 거치며 생산해낸 숱한 록넘버 중에서도 위상을 달리하는 걸작이다. 상술했듯 이 노래의 뼈대는 즉흥적으로 창작됐고, 제목에도 별 의미가 없다. 구세군(Salvation Army) 발음을 잘못한 데서 유래한 뜻 없는 낱말 배치일 뿐이다.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싶은 이도 막상 선율을 접하면 ‘어, 이거’라며 머릿속 느낌표를 띄울 공산이 크다. 축구 팬이라면? 99.99%다.
화이트는 이 곡을 2003년 2월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4집 첫째 트랙으로 공개했다. 미국과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 준수한 성적을 거뒀으나, 이후 맞이할 신화적인 운명에 견주면 과히 소박한 첫발이었다. 같은 해 10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AC밀란과 클뤼프 브뤼허 KV(벨기에)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열렸다. 브뤼허 방문 팬들은 경기 전 술집에서 우연히 ‘세븐 네이션 아미’를 들었고, 금세 기타 리프를 따라 부르게 됐다. ‘떼창’은 자연스레 경기장으로 옮겨갔고, 곡조에 주술적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지 브뤼허는 밀란을 꺾고 깜짝 승리를 따냈다. 이후 이 곡은 브뤼허의 비공식 클럽 응원가가 됐다
2006년, 이번에는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 브뤼허와 AS로마가 맞붙었는데, 1·2차전 모두 로마가 승리했다. 이탈리아인의 설욕에 성공한 로마는 전리품으로 ‘세븐 네이션 아미’를 챙겨왔다. 로마의 주장 프란체스코 토티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브뤼허에서 들은 떼창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곧장 나가서 밴드의 앨범을 구입했다”고 술회했다. 로마 선수들은 이탈리아 대표팀에 노래를 퍼뜨렸고, 이탈리아는 그해 여름 2006 독일월드컵을 제패했다. 뒤풀이에서는 물론 ‘세븐 네이션 아미’를 열창했다. 그 뒤로 이 노래는 만국의 축구 클럽과 대표팀이 채택한 비공식 승전가로 전세계 경기장을 가득 채우게 된다.
퀸의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1977)라든가, 윤도현밴드(YB)의 ‘오 필승 코리아’(2002)처럼 시대를 풍미한 스타디움 히트곡이 적지 않지만, ‘세븐 네이션 아미’의 흥행에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첫째, 가사가 아닌 기타 리프를 따라 부르게 된다는 점(애초 곡 절정부에 보컬이 없다). 둘째, 가수 이름을 모른 채 부르는 이가 태반이라는 점. 화이트는 이 익명성을 최고의 훈장으로 여겼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따라 부르는 멜로디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익명으로 전파될수록 작곡가로서 성취감도 크다”고 했다. 말하자면 ‘작자 미상의 민요’를 써낸 작곡가의 쾌감이다.
어떤 작품들은 세상으로 나온 뒤 작가의 손을 떠나 스스로 불멸의 생명력을 쟁취한다. ‘세븐 네이션 아미’에는 가공할 전염성이 내재돼 있었고, 전염이란 밀집된 인파 속에서 극대화되기 마련이니, 이 노래는 늘 군중과 궁합이 좋았다. 2011년에는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에 항거하는 이집트 시민들이, 2017년에는 영국 노동당 당수 제러미 코빈 돌풍을 타고 입당한 신규 당원들이 화이트의 기타 리프를 따라 부르며 결속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 캠페인 영상에 이 노래를 써먹었을 때는 잭 화이트 쪽에서 “역겨운 무단 사용”이라고 정색하면서 분위기가 싸해진 일도 있다.(화이트는 버니 샌더스 지지자다.)
이제 스포츠 비즈니스 업계의 고민은 ‘세븐 네이션 아미’의 치세를 이을 후계자를 찾는 일이다.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미션은 아니지만, 후보군이 전혀 없지는 않다. 2024년 미국프로농구(NBA)와 메이저리그(MLB) 현장을 접수한 트랙은 래퍼 켄드릭 라마의 ‘낫 라이크 어스’(Not Like Us)였다. 이 곡은 캐나다의 팝스타 드레이크 디스곡인데, 누군가를 ‘씹는’ 내용임에도 워낙 완성도가 출중해 차트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를 밀어내고 정상을 차지할 정도로 흥했다. 한국 시장에 한정한다면 얼마 전 프로야구(KBO) 올스타전 클리닝 타임을 휘어잡은 데이식스의 ‘웰컴 투 더 쇼’(2024)가 대형 응원가 자질을 보이는 듯하다.
화이트는 2017년 뉴요커 인터뷰에서 제 삶의 태도를 ‘상승과 하강의 반복’으로 표현한 바 있다. “나 자신을 구석으로 몰고, 그렇게 약자에게 이입했다가 어느덧 강자가 되고, 그로 인한 대가를 치르고, 후퇴하고 전진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그 모든 순간을 창작에 쓰는 것, 그것이 제가 선택한 길이고 이제 와서 여기서 도망칠 수는 없죠.” 이 설명은 어쩔 수 없이 ‘세븐 네이션 아미’에 대한 큐레이팅처럼 들린다. 하나의 리프를 3분52초 동안 반복하면서 상승과 하강, 전진과 후퇴를 자아내는 주술적 멜로디. 21세기 초엽 한 디트로이트 출신 예술가를 영매 삼아 지구를 찾아온 7음 기타 리프가 마침내 세계를 정복했다.
박강수 한겨레 기자 turner@hani.co.kr
*스포츠 인(人)사이드는 동서고금 스포츠 선수 관찰기로 4주마다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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