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은 아는 얘기지만 이스라엘축구협회(IFA)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소속이 아니다. 본래 아시아축구연맹 원년 멤버였으나 1974년 중동 국가들에 의해 추방됐고, 1992년이 돼서야 유럽축구연맹(UEFA)에 받아들여지면서 새 상급단체를 찾았다. 이 뒤부터는 리그 클럽팀도 국가대표팀도 유럽 대회에 출전한다. 그러므로 2024년 10월 ‘A매치 기간’에 이스라엘이 유럽축구연맹 주관 네이션스리그에 출전해 프랑스(11일), 이탈리아(15일)와 맞붙은 사실 자체는 놀랄 일이 아니다. 대신, 경기 소식을 접한 누군가는 문득 이런 물음표를 그렸을 것이다. 이 시국에 이스라엘은 무슨 수로 국제대회를 뛸 수 있는 걸까.
이번 A매치 기간 첫날은 가자 전쟁 1주기(2024년 10월7일)이기도 했다. 이 전쟁은 가자지구를 실효 지배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해 민간인 1200여 명을 살해하면서 시작됐다. 유대인 커뮤니티가 ‘홀로코스트 이후 최악의 인명 피해’라고 일컫는 이 참사의 충격 탓에 한때 베냐민 네타냐후 내각의 대대적인 반격은 정당방위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전황이 이스라엘군의 일방적이고 집요한 학살로 치달으면서 국제 여론도 반전됐다. 아랍권 최대 뉴스채널 알자지라가 운영하는 통계 페이지를 보면 2024년 10월13일 기준 가자지구에서만 4만2천여 명이 죽었다. 사망자의 40%는 어린이다.
스포츠계에서는 일찌감치 반발 움직임이 일었다. 2023년 12월 요르단축구협회(JFA)가 먼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휴전에 동의할 때까지 모든 스포츠 대회에 출전을 금지하자’라는 요구를 담은 공개서한을 발표하며 운을 떼었다. 이는 2024년 2월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등 12개 회원국이 속한 서아시아축구연맹(WAFF)의 요구로 확대됐고, 5월 국제축구연맹(FIFA) 총회 자리에서 지브릴 라주브 팔레스타인축구협회(PFA) 회장이 연단에 서면서 축구계의 의제가 됐다. 그는 “지금도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되고 있는 학살과 폭력을 피파가 언제까지고 모른 척할 수 없다”며 “역사의 옳은 편에 서달라”고 했다.
이들의 호소에는 이스라엘을 겨냥한 규탄과 함께 이런 질문이 배접돼 있다. 왜 러시아 때처럼 대응하지 않는가. 2022년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피파와 유럽축구연맹은 나흘 만인 2월28일 러시아 국가대표팀과 클럽팀을 모든 대회에서 퇴출했다. 피파는 당시 성명에서 “축구는 완전하게 단결했으며, 도탄에 빠진 우크라이나의 모든 이와 전적으로 연대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신속하게 러시아에 대한 국제대회 출전 금지 권고안을 냈고, 파리올림픽이 임박해서는 ‘전쟁을 지지하지 않으며 군대와 관계없다는 점’을 입증한 선수에 한해 참가를 허락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스라엘을 대하는 국제사회의 대응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팔레스타인의 요청을 접수한 피파는 이스라엘에 대한 법률 검토를 약속했지만 2024년 7월, 8월, 10월 세 차례 결정을 연기했다. 대신 잔니 인판티노 피파 회장은 5월 총회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의중을 에둘러 표현했다. “우리는 축구 조직이며, 축구는 분열이 아닌 단결을 위해 존재한다. 피파를, 211개 회원국을 분열시키고 싶지 않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7월 “우리에게는 두 국가의 올림픽위원회가 있고, 둘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에서는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한 국가 몫의 올림픽위원회를 둔 팔레스타인이 올림픽에서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말도 했다.
이스라엘은 러시아와 비교하는 일을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의 기자 우지 단은 9월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우크라이나에 해당한다. 우리가 침공당했다”고 했다. 야엘 아라드 이스라엘올림픽위원회 위원장 역시 “하마스가 테러조직이라는 사실은 전세계가 알고 있다”며 “(러시아와의 비교는)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피해자이고, 테러조직에 대항해 정의를 집행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이스라엘축구협회장은 5월 피파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의 퇴출 요청이 ‘반유대주의적 동기’를 갖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폈다.
앞서 설명했듯, 이스라엘은 아시아축구연맹에서 방출당한 기억이 있고, 1972년 뮌헨올림픽 때는 자국 선수들이 팔레스타인 테러단체에 살해당하는 일도 겪었다. 퇴출 목소리를 접할 때마다 ‘우리에게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그러나 카타리나 피예틀로비치 팔레스타인축구협회 법무부서장이 보기에 러시아와 이스라엘의 진정한 차이는 이런 점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나흘째 되던 날(피파가 제재를 결정한 날) 희생된 어린이가 14명이었다. 이것도 너무 많지만, 지금 팔레스타인에서는 1만4천 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 그런데 피파, 유럽축구연맹, IOC 어느 누구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는다.”
물론, 월드컵이나 올림픽 출전 길을 막는다고 전쟁이 종식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일종의 정치적 소격 효과를 도모해봄 직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 정책으로 갖은 스포츠 제재를 받았는데(피파는 1961년에 남아공을 퇴출했다), 결정타가 된 종목은 럭비였다. 1981년 남아공 럭비 대표팀의 뉴질랜드 투어를 앞두고 현지에서 대규모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일었고, 결국 경기가 무산됐다. 이는 지극히 보수적이었던 럭비협회를 움직이게 했고, 남아공은 이후 럭비 대회에서 퇴출당한다. 남아공에서 럭비는 지배 계급의 스포츠였기에 그 충격은 남달랐다. 이를테면, ‘세계가 우리를 싫어하는구나’라는 집단적 깨달음.
감옥에 있던 넬슨 만델라는 이때를 “해가 떠오른 순간”으로 회상했다. 미국의 격월간지 포린폴리시는 이 일화를 전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스라엘을 국제대회에서 퇴출하는 일은, 수백만 명의 평범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세계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현재 행위를 용인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일이 될 것이다.”
박강수 한겨레 기자 turner@hani.co.kr
*스포츠 인(人)사이드는 동서고금 스포츠 선수 관찰기로 4주마다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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