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면 조금 더 미치는, 광란의 뉴욕 닉스 팬덤

긴 세월 패배로 단련된 유별난 에너지… 2025 시즌, 결승 문턱에서 멈췄으나 열정은 불멸할 것

2025년 5월16일 뉴욕 닉스가 보스턴 셀틱스를 꺾고 2024~2025 미국프로농구 동부 콘퍼런스 결승 진출을 확정한 뒤 닉스 팬들이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많은 스포츠팬이 2025년의 비범한 기운을 주시하고 있다. 토트넘 홋스퍼가 17년 무관의 세월을 뒤로하고 유로파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파리 생제르맹은 구단 역사상 첫 빅이어(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품었다. 크리스털 팰리스는 120년 만에 첫 메이저 대회(FA컵) 정상을 제패했고,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카라바오컵을 쟁취하며 70년 묵은 트로피 가뭄을 끝냈으며, 볼로냐FC는 51년 만에 이탈리아컵 왕좌에 복귀했다. 한국에서는 창원 엘지(LG) 세이커스가 창단 첫 프로농구 챔피언에 등극했고, 야구장에서는 어느덧 초여름 더위가 찾아왔음에도 롯데 자이언츠와 한화 이글스의 약진이 심상치 않다. 하늘이 점지해준 세상 모든 보살 팬덤의 한풀이 시즌인가. 팬데믹처럼 번지는 기대 속에 가장 야단스러운 열정을 표출해온 ‘닉스’(Knicks)만큼은 그러나, 웃지 못했다.

 

승률 5할 미만인데 가장 비싼 축에 드는 팀

뉴욕 닉스는 독특한 팀이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도 가장 거대한 시장을 거느린 프랜차이즈로 2024년에는 포브스 선정 ‘가장 가치 있는 프로스포츠팀’ 순위에서 5위를 차지했다. 지난 10년간 이 순위표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일이 없지만, 스포츠팀으로서의 성적은 NBA 대표라기에는 영 시원찮다. 79년 역사 속에 우승은 단 두 번뿐이며, 그마저도 반세기 전의 일이다. 닉스의 마지막 우승은 1973년으로, 이후 52년간 같은 연고지의 다른 종목에서 양키스(야구)가 일곱 번, 자이언츠(미식축구)와 아일랜더스(아이스하키)가 각각 네 번 우승하는 동안 무관에 그쳤다. 통산 승률은 5할 미만이고 팬들의 마음이라도 불려줄 리그 최고 수준의 슈퍼스타를 보유한 적도 없다. 그렇다면 닉스의 시장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닉스의 오랜 팬이자 작가인 매슈 미란다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이 팀의 진정한 가치는 팬들이 쏟아부은 에너지에 있다.”

닉스의 팬덤은 인터넷에서 가망 없는 팀에 과도한 열정을 불사르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피학적 컬트 집단 취급을 받곤 한다. 오랜 실패와 반복되는 패배의 고통은 세대를 뛰어넘어 그들의 마음 한편을 고장 내는 동시에 단단하게 단련해왔으니, 닉스 팬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닉스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곧 고통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가령 2021년 10월 시즌 개막전에서 닉스가 보스턴 셀틱스를 2차 연장 접전 끝에 제압하자 매디슨스퀘어가든(닉스 홈구장) 일대는 광란에 휩싸였다. 풀린 눈으로 괴성을 지르고 사지를 펄럭이며 셀틱스에 욕설을 박는 것은 기본이고, 경기와 아무 관계 없는 다른 팀 선수, 심지어는 타 종목 선수까지 들먹이며(왜 이러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의 흥분을 마구 분출하는 사람들로 거리는 가득 찼다. 그러니까 이제 막 개막전 한 경기에서 이긴 이들의 뒤풀이였다.

2021년 10월22일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뉴욕 닉스가 보스턴 셀틱스를 꺾고 2021~2022 미국프로농구(NBA) 개막전에 승리한 뒤 길거리로 나선 뉴욕 팬들이 열광하고 있다. 유튜브 ‘SIDETALK’ 영상 갈무리

티모테 샬라메도 개근하는 경기

말하자면 닉스의 희로애락에 따라서 뉴욕 시내는 배트맨의 고담이 되기도 하고 조커의 고담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지난 5년여 기간은 그들에게 더없이 각별했으니, 동부 10위권을 전전하던 닉스가 연달아 플레이오프 티켓을 거머쥐며 우승 경쟁에 뛰어들기 시작한 덕이다. 1999년 아버지로부터 구단을 물려받은 뒤 독선적이고 무능한 경영으로 팬들의 원성을 사온 구단주 제임스 돌런이 2020년 별안간 구단 운영에서 한발 물러났고, 전권을 위임받은 에이전트 출신 경영인 리언 로즈의 청사진 아래 닉스는 차곡차곡 전열을 정비하고 대권에 도전하는 팀으로 탈바꿈했다. 돌런 체제에서 닉스는 1999년부터 2020년까지 693승 997패 승률 41%를 기록했으나, 로즈가 부임한 뒤 다섯 시즌 동안 226승 174패 승률 56%로 반등했다. 플레이오프 출석률도 비약하였으니 정말이지 때가 머지않은 듯했다.

올해 3위로 정규시즌을 마무리한 닉스는 플레이오프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 셀틱스를 차례로 꺾고 동부 콘퍼런스 결승에 진출한다. 돌런 체제 원년인 1999년 이후 25년 만에 벌어진 대사건이다. 마침 이것은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우승후보 0순위’이자 ‘디펜딩 챔피언’(직전 우승팀) 셀틱스를 함락하고 일궈낸 대업이었으니, 5월 뉴욕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닉스였다. 뉴욕시는 센트럴파크부터 타임스스퀘어를 가로지르는 7번가 도로표지판에 닉스 선수들 등번호를 따서 바꿔 달았고, 영화배우 티모테 샬라메는 멧갈라(패션 자선 행사)도 마다하고 닉스 경기를 쫓아다니며 안 그래도 셀럽으로 붐비는 매디슨스퀘어가든 맨 앞줄에 개근했다. 6차전에서 닉스가 셀틱스를 38점 차로 대파하며 동부 콘퍼런스 결승행을 결정지은 2025년 5월16일, 맨해튼 중심가를 점거한 닉스 팬들은 “주방위군 불러라, 우리 오늘 집에 안 간다”며 날뛰었다.

2025년 5월16일 뉴욕 닉스와 보스턴 셀틱스의 미국프로농구 플레이오프 2라운드 6차전 경기를 보기 위해 매디슨스퀘어가든을 찾은 영화배우 티모테 샬라메가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상투적 절망에 안주하지 않는 팬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방위군이 출동할 일은 없었다. 닉스는 결승행 문턱에서 인디애나 페이서스에 시리즈 전적 2-4로 패했다. 페이서스는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도, 25년 전 콘퍼런스 결승에서도 닉스를 주저앉힌 팀이었다. 인고의 세월이 길었던 만큼 희망고문의 백래시(반발)가 거셀 것이지만, 모르긴 몰라도 ‘아, 이 팀은 안 되나보다’ 같은 상투적인 절망에 안주하는 닉스 팬은 없으리라 본다. 언젠가 이 연재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아스널의 우여곡절을 다루며 ‘스포츠란 실패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아스널도 이번 시즌 리그 준우승에 모든 대회 무관을 기록했다.) 누구보다 가열차게 패배를 학습해온 이라면, 닉스 팬 수준의 광기(?)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통하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대선배님의 레딧(영미권 커뮤니티) 댓글로부터, 응원하는 팀의 실패와 당면한 만국의 스포츠 팬은 위무받는다.

“수십 년 된 닉스 팬입니다. 1970년과 1973년 두 번의 우승을 모두 봤지요. 그런데 지금도, 이기든 지든 매디슨스퀘어가든은 여전히 미친 분위기입니다.”

 

박강수 한겨레 기자 [e-mail]

*스포츠 인(人)사이드는 동서고금 스포츠 선수 관찰기로 4주마다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