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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처럼 도는데…” 지속가능성 웃기시네

선배보다 200시간 더 뛰는 후배…축구 자본에 혹사당하는 프로축구 스타들
등록 2024-06-28 20:44 수정 2024-07-02 11:13
2024년 6월20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유로 2024 C조 덴마크와 잉글랜드의 경기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드 벨링엄이 헤딩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4년 6월20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유로 2024 C조 덴마크와 잉글랜드의 경기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드 벨링엄이 헤딩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유럽에서는 다시 축구가 한창이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끝으로 여느 때처럼 시즌 커튼콜을 올린 듯싶었으나, 보름도 지나지 않아 2024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4)가 시작됐다. 유로는 로컬 대회지만 대회의 위상은 결코 로컬하지 않다. 외면하기에는 선수들 면면이 워낙 화려하고, 또 익숙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축구 패권을 두고 벌어지는 천하 쟁투에 전세계 축구팬이 자연스럽게 몰입한다. 그러나 대회의 향배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논하는 일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올여름 누가 유럽 챔피언이 될 것인가’보다 중요한 질문이 있다.

숨가쁜 20대 초반의 스타들

2024년 6월15일(한국시각) 열린 유로 2024 개막전에서는 개최국 독일의 플로리안 비르츠가 대회 첫 골을 넣었다. 비르츠는 직전 시즌 분데스리가 챔피언 레버쿠젠의 에이스 미드필더로, ‘분데스리가 올해의 선수’에 뽑혔다. 레버쿠젠은 구단 창립 120년 만에 처음으로 리그 정상에 섰는데, 한 경기도 지지 않으면서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초의 무패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덤으로 쌓았다. 그 역사의 일원인 비르츠는 2003년생으로 지난 5월 21살이 됐다. 비르츠에 이어 독일의 추가골을 신고한 자말 무시알라(바이에른 뮌헨)도 21살이다. 무시알라는 그다음 경기까지 연속 득점을 올렸다.

2000년대생의 활약상은 숨 가쁘게 이어진다. 개막 이튿날인 6월16일, 스페인에서는 16살 라미네 야말(바르셀로나)이 대회 역사상 최연소 선수로 데뷔했다. 야말은 86분을 소화하며 나이가 두 배쯤 많은 선배(다니 카르바할)의 골을 도왔다. 6월17일에는 팀 이름값에 견줘 영 퍼포먼스가 저조해 근심이 짙던 개러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잉글랜드에서 주드 벨링엄(레알 마드리드)이 결승골을 해치우며 해결사 노릇을 했다. 부카요 사카(아스널)가 골을 도우며 벨링엄을 보좌했다(패스가 상대 수비를 맞고 굴절돼 도움으로 기록되진 않았다). 벨링엄은 21살, 사카는 22살이다.

2024년 6월23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유로 2024 A조 스위스와 독일의 경기에서 독일의 플로리안 비르츠(오른쪽)와 스위스의 파비안 리더가 공을 다투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4년 6월23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유로 2024 A조 스위스와 독일의 경기에서 독일의 플로리안 비르츠(오른쪽)와 스위스의 파비안 리더가 공을 다투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들은 전도가 유망한 수준을 넘어서서 이미 소속팀·대표팀에서 주전 자리를 굳힌 재목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비범하지만 이 세대를 아우르는 열쇳말이 하나 더 있다. ‘과로’다. 역사상 그 어느 선수들보다 과로하고 있는 세대다. 다시 벨링엄을 보자. 발롱도르(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에게 주는 상)에 가장 가까운 선수로 꼽히는 벨링엄은 21살 이전까지 1만8486분(5월31일 기준)을 뛰었다. 이는 같은 나이 때 데이비드 베컴(3929분)보다 4.7배 많고, 프랭크 램퍼드(6987분), 스티븐 제라드(7034분), 웨인 루니(1만5481분) 등 잉글랜드의 대선배들을 압도하는 출전 시간이다.

비니시우스는 호나우지뉴보다 1만 분 더 출전

‘벨링엄이 베컴, 램퍼드, 제라드, 루니보다 잘난 덕분 아닌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다만 통계는 이 경향성이 현대 축구의 보편적 증상임을 보여준다.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가 2023년에 낸 보고서를 보면, 같은 나이 기준 킬리안 음바페(25·프랑스)는 티에리 앙리보다 37%, 페드리(21·스페인)는 사비 에르난데스보다 20%, 비니시우스(23·브라질)는 호나우지뉴보다 1만2천분을 더 뛰었다. 모두 과거 선배들보다 많이 뛰고 있다. 요컨대 앞서 소개한 16살 축구 천재 야말은 지난 시즌 바르셀로나에서 리그 37경기를 치렀는데 리오넬 메시가 리그 7경기에 출전한 것이 17∼18살 때 일이다.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핵심은 경기 수다. 경기가 너무 많다. 국제축구선수협회는 매년 프로 선수들의 혹사 실태를 모니터링해 발표한다. 2023∼24시즌 ‘과로왕’은 맨체스터시티와 아르헨티나의 공격수 훌리안 알바레스(24)였다. 그는 클럽과 대표팀을 오가며 70경기에 부름을 받았다. 클럽에서 프리미어리그, 챔스, FA컵, 카라바오컵, 클럽월드컵, 슈퍼컵, 커뮤니티실드에 출전했고, 시즌 틈틈이 A매치 친선전을 소화했다. 지금은 6월20일 개막한 남미 최대의 축구대회인 코파 아메리카 2024를 뛰고 있다. 7월 중순 대회가 마무리되면 곧 소속팀에서 프리시즌 투어를 시작할 것이고, 8월이면 다시 리그 개막이다.

2024년 6월20일(현지시각) 독일 겔젠키르헨에서 열린 유로 2024 B조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경기에서 스페인의 라미네 야말이 공을 컨트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4년 6월20일(현지시각) 독일 겔젠키르헨에서 열린 유로 2024 B조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경기에서 스페인의 라미네 야말이 공을 컨트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야말로 심란한 스케줄인데, 문제는 대회가 점점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 유럽축구연맹은 유로 선수권 밖에 별도의 국가 대항전 네이션스리그를 2018년부터 개최하고 있고, 챔피언스리그도 개편했다. 2024~25시즌부터는 더 많은 팀이 챔피언스리그에 나서서 더 많은 경기(최대 4경기)를 치른다. 피파(FIFA) 역시 클럽월드컵을 손보면서 출전팀을 7개에서 32개로 확대했다. 2025년 여름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이미 출전권을 따낸 맨체스터시티, 레알 마드리드 등 구단은 오는 시즌 최대 86경기, 프리시즌 친선전을 더하면 90경기 이상 출전할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축구 자본의 폭주 앞에 혹사당하는 선수들

이는 단순히 선수들의 번아웃 우려에 그치지 않는다. 국제축구단체, 빅클럽, 스폰서 기업에 더 많은 경기는 곧 더 많은 수익이다. 그들은 될 수 있는 한 파이를 키우려 들 것이고, 그 폭주 욕망 앞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엘리트 선수들조차 속수무책이다. 맨체스터시티의 페프 과르디올라 감독은 2023년 9월 관련한 질문을 받고 “뭔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모든 선수가 나서서 ‘그만하자’고 하는 것뿐”이라고 답한 바 있다. 그는 “쇼는 계속돼야 하는데, 저는 없어도 상관없지만 선수들이 없으면 그렇게 할 수 없다”며 파업의 필요성을 암시했다.

스포츠 과학·의학의 비약적 발전은 프로 선수들의 커리어를 확장하고 노화의 기준을 바꿨다. 이번에 다섯 번째 유로 대회를 마친 크로아티아의 캡틴 루카 모드리치(38)처럼, 불혹이 다 돼서도 여전히 전성기인 선수가 늘었다. 벨링엄이나 사카, 비르츠, 야말도 모드리치처럼 장수할 수 있을까. 기대는 난망하다. 모드리치는 그들 나이 때 그렇게 많은 경기를 뛰지 않았다. 2023년 29살 나이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프랑스의 수비수 라파엘 바란(31)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세탁기가 돌 듯 쉬지 않고 경기를 뛴다. 과부하 걸린 스케줄에 질식할 것 같았다.”

축구의 지속가능성이 위태롭다.

박강수 <한겨레> 기자 turner@hani.co.kr

*스포츠 인(人)사이드는 동서고금 스포츠 선수 관찰기로 4주마다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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