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야석에 한 청년이 서서 야구를 보고 있었다. 새로 만든 야구장인 대구 수성구 삼성라이온즈파크 외야석은 뛰는 선수를 가깝게 보기에 좋다. 외야 양쪽 끝을 둥글게 연결해 담을 만드는 다른 구장과 달리 라이온즈파크는 직선으로 연결한다. 국내에 첫선을 보인 팔각형 야구장이다. 류중일 삼성 감독이 “홈런이 쉽게 나올 수 있다”고 우려한 것처럼 관중석이 그라운드를 잘라먹고 들어왔다.
김아무개(27)씨는 더 가깝게 보기 위해 철조망에 바짝 기대고 있었다. “10년 전부터 야구를 봤어요. 삼성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요. 고향인 대전의 한화 이글스도 응원합니다.” 가끔 친구들과 응원석에서 ‘치맥’(치킨과 맥주)을 즐기던 김씨는 오늘(3월24일) 혼자 야구장을 찾았다. 어제 같이 왔던 친구는 학원에 갔다고 했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오후 1시 야구장을 찾는 청년들</font></font>“야구를 좋아하니까 학교 끝나고 와서 보고 그랬어요. 요즘은 공부하다 머리 식히러 가끔 와요. 1만원이 안 되는 입장료로 3시간30분 동안 보니까 괜찮아요.”
김씨는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뒤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에서 공부했던 전공과는 상관없다고 했다. 공무원이 되고 싶은 이유는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은 공장에 취직을 많이 했다. 대기업은 없다. 관리직이든 생산직이든 쉽게 들어갈 수 있지만 한 달에 200만원도 받지 못해 조금이라도 더 주는 곳을 찾아 1년마다 옮기는 이도 많다고 했다. “스트레스 풀기에는 야구만 한 게 없죠. 응원석에서 소리 지르고 욕하고 그러면 속이 다 시원해요”라고 김씨는 말했다.
오후 1시면 보통 직장에 있을 시간이지만 김씨처럼 경기를 보러 온 젊은이가 눈에 많이 띄었다. 지난해 대구의 청년 실업률은 11.4%로 전국 평균(9%)을 웃돌았고,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두 번째로 높았다.
6시간 전, 라이온즈파크로 가기 위해 동대구역에서 만난 택시 기사는 말했다. “대구에 남은 삼성은 라이온즈 야구팀뿐이야. 대구에는 대기업 하나 없어요. 삼성도 제일모직 땅 팔아 아파트 짓고, 삼성 상용차도 없어지고 다 나갔지. 이제 야구장 하나 남았다니까.”
택시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 동구 발전의 중심’이라고 빨갛게 쓰인 한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총선 현수막 밑을 지나갔다. 현수막 주인은 유승민 의원 공천 파동 속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택시 기사는 “대통령이 대구에서 나오면 뭐해요. 그동안 TK(대구·경북)가 다 해먹었어도 대기업 하나 없고”라고 말했다. 택시 기사가 혀를 차는 사이 택시는 대구 지하철 2호선 대공원역 옆에 웅장하게 자리잡은 라이온즈파크에 도착했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대구에 남은 삼성은 야구단뿐</font></font>올해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두 야구장이 문을 연다. 팔각형 모양의 최신식 야구장인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공사비 1666억원)와 첫 돔구장인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1948억원)이다. 삼성라이온즈가 프로야구 원년부터 쓰던 낡은 대구시민야구장을 떠나고, 넥센 히어로즈가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돔구장으로 옮긴다. 두 야구장을 3월22일과 24일 직접 찾았다.
삼성 라이온즈가 원래 쓰던 대구시민야구장은 2008년에 가본 적이 있다. 택시 기사 말마따나 국내 제일의 재벌인 삼성의 이름과 걸맞지 않은 곳이었다. 낡은 시설을 지탱하기 위해 군데군데 철제 빔을 덧댔고, 화장실은 열악하고 부족했다. 관중석 의자도 불편했고 통로는 비좁았다. 여름철 기온이 가장 높은 도시임에도 그늘을 만드는 설계를 하지 않아 땡볕에서 야구를 봤다.
그런 기억을 가진 이에게 라이온즈파크는 천지개벽 수준이다. 그린벨트 수목 가운데 널따란 공간을 잡은 라이온즈파크는 무더운 대구 지역 날씨를 감안해 오후 4시면 전 좌석에 그늘이 지도록 설계됐다.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관중석과 그라운드가 보이게 광장 같은 개방형 콘코스를 만들었고, 매점이나 화장실에 가기도 편하다.
그라운드에 가까운 익사이팅존 좌석은 지면보다 낮게 설치돼 내야 땅볼과 선수들의 슬라이딩을 눈높이에서 즐길 수 있다. 익사이팅존과 파울 라인 사이의 거리는 4.6m에 불과하다. 라이온즈 구단은 “상단 관람석도 국내 최초로 돌출형 스탠드 구조로 만들어져 기존 야구장보다 7.4m 더 가깝게 경기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새 야구장의 ‘킹왕짱’ 변신</font></font>낮 12시, 야구장 문이 열리자 관중은 중앙 VIP석과 테이블석을 잡기 위해 뛰어들어왔다. 시범경기임에도 테이블석이 꽉 찼다. 주중 시범경기는 무료다. 경기는 홈런 4방을 앞세운 두산 베어스의 8 대 3 승리로 끝났다. 홈런 4개 모두 짧아진 외야 쪽을 넘긴 것은 아니지만, 라이온즈파크에서 홈런이 많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실제로 커보였다.
반면 서울에 새롭게 등장한 고척스카이돔은 홈런이 쉽게 나오지 않을 야구장으로 꼽힌다. 고척돔은 외야 크기가 좌우 99m에 중간은 122m다. 펜스 높이는 3.8m나 된다. 라이온즈파크와 달리 외야가 둥글게 설계돼 좌중간·우중간 지역도 깊숙하다. 고척돔을 찾은 3월22일 장타자가 많은 넥센 히어로즈와 롯데 자이언츠 경기가 있었지만 홈런은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전 목동야구장은 홈런이 쉽게 나오는 ‘타자 친화적’ 구장이었다. 홈런왕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자마자 주전을 꿰찼던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수없이 많은 홈런을 날렸다. 그 많은 홈런공은, 원래 아마추어용으로 만들어져 외야석이 없는 목동야구장 특성상 주워간 사람이 없었다.
고척돔은 홈런공을 주워갈 수 있다. 서울의 협소한 부지에 짓다보니 외야 양끝 대신에 중앙 전광판을 중심으로 좌석을 두껍게 배치했다. 전체 1만8076석 가운데 5316석이 외야에 있다. 그라운드에 가까운 내야석은 시야를 가리는 좌석이 기둥 뒤에 군데군데 있어 피하는 게 좋다. 특히 내야 상단석 1~3번째 열은 앞에 설치된 세로 철조망이 눈을 가린다. 라이온즈파크처럼 철조망 대신 투명 강화유리를 썼으면 시야를 가리지 않았을 것이다. 30석이 넘는 좌석이 한 줄로 붙어 있어 지나다니기 불편했던 내야석은 중간에 통로를 내는 보수공사를 마쳤다.
이날 고척돔을 찾은 서아무개씨는 “고척돔에서 응원단 앰프와 치어리더는 자제해야 할 것 같다”며 “실내 돔구장이라 시범경기 중에도 관중이 지르는 소리가 그대로 울려퍼지는데 앰프까지 틀면 너무 시끄러울 것”이라고 했다. 서씨는 전광판이 작은 것도 아쉽다고 했다. 이날 고척돔에는 무료 시범경기를 보러 온 등산복 차림의 중년 남성과 노인이 많았다.
고척돔과 라이온즈파크 두 야구장의 개장은 프로야구 원년 풍경이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한화 이글스가 대전 한밭야구장을, NC 다이노스가 마산야구장을 여전히 사용하지만 한밭야구장은 대규모 증개축을 끝냈고 마산도 야구장 신축에 들어간 상태다. 50년이 넘는 낡은 야구장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새 야구장 시대를 맞아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올해 목표 관중을 처음으로 800만 명을 넘는 868만 명으로 잡았다.
1982년에 시작한 한국 프로야구는 지역 연고주의의 힘을 빌려 호남과 영남의 상대편을 욕하기 위해 야구장을 찾던 팬이 많았다. 그때는 야구장이 꼴찌팀 팬에게도 우승팀 팬에게도 여러 가지 울분을 쏟아놓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2010년대 정부와 재벌은 야구장을 최신식으로 탈바꿈시켰다. 물론 팬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야구장만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경제나 팬들의 삶의 질은 야구만큼 신나게 성장하지 않았다. 김씨처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이나 야구 외엔 다른 재미가 없는 이들은 더 많이 야구장을 찾을 것이다. 신나게 욕을 퍼부을 공간이나 ‘인생 역전’의 홈런을 볼 수 있는 곳은 이제 야구장 외에 찾기 힘들기도 하다. 퇴근 뒤 저녁 6시30분 야구 경기를 여유 있게 볼 수 있는 직장인도 늘지 않았다.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려면 노동당이 내건 ‘5시 퇴근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야구장만 최신식으로 바뀌었다.
지린내. 동대문운동장의 냄새는 항상 뭔가 고약했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에서 태어나 강북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낸 강북 키드들에게 동대문운동장은 이제 와 생각해보니 ‘성지’였고, 그때 기분으로 말하면 대체로 ‘일탈’적인 곳이었다. 원하는 게 무엇이건 거기 있었고, 거기 있던 것이라면 내가 그것을 원하리란 걸 직감해야 했다. 야구평론가 김은식의 표현을 빌리면 거긴 ‘가장 그늘진 자들이 깃들어 살던 둥지’였다.
야구부가 있는 학교에 다녔다. 어쩌다 학교 야구부가 동대문야구장에서 경기를 하게 되면, 학교 전체가 난리법석의 ‘에네르기’에 휩싸였다. ‘우리 학년이 동대문운동장에 가게 될 것이냐’를 둘러싼 치열한 탐색전이 펼쳐졌고, 무르익지 않은 전망들이 복도를 달궜다. 선동열의 슬라이더만큼 예리한 녀석들이 교무실 칠판에 적혀 있는 ‘낭보’를 교실로 꽂으면, 바로 파도타기가 시작됐다.
동대문운동장 안에선 말할 것도 없다.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집단적 야유의 공중전이 시작된다. 경기가 무르익건 말건 훌리건처럼 웃통을 벗어젖힌다. 일구 일구에 일희일비가 뒤섞인다. 행여 경기가 형편없이 기울기라도 하면 까닭 없는 시비가 난무한다. 끝내 참패의 기운이 덮쳐올 땐, 공이 아닌 주먹의 복수를 위한 선발대가 꾸려지곤 했다. 통제할 수 없는 한 시절의 열광과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의 발산이 예외적으로 넉넉하게 허용된 공간.
그러나 일촉즉발의 상황은 대체로 입길에만 머물곤 했다. 광활한 외야석 탓이었다. 범접하기 힘든 기운의 아저씨들이 그 혈기의 맞부딪침을 막았다. 강소주를 들이켜며, 매 순간 ‘번트’를 대라 으르렁댔다. “××고에 ○○○이 있었을 때가 정말 야구 볼 만했다”고 외치던 그 ‘달인’들을 차마 우리는 뛰어넘지 못했다.
동대문운동장이 물러날 때, 문득 그 많던 아저씨들이 다 어디로 갔을지 생각했다. 늘 져왔기에, 거기서만이라도 당당할 수 있었던 사람들. 동대문운동장은 그 모든 이야기를 각자의 기억으로 조용히 돌려주고, 고작 조명탑 한 대로 남았다. 거대한 콘크리트면서 동시에 가장 역동적인 유기체였던 그 공간은 이제 이름만으론 당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또 다른 콘크리트가 되었다. 그 눅눅한 공간을 적시던 함성은 고척스카이돔의 박진감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서울이란 트랙에서 밀려나 동대문운동장이라는 베이스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던 이들’은 지금쯤 구일역을 향하는 전철에 올랐을까.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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