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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들의 직구는 말한다

노련미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게임
등록 2014-10-02 15:31 수정 2020-05-03 04:27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 회사인 ‘디쓰리쥬빌리’가 지난 9월24일 서울 삼성동 ‘임팩트허브’에서 사회적 벤처기업을 투자자에게 소개하는 행사를 열었다. 행사 전에 이덕준 디쓰리쥬빌리 대표(오른쪽 끝)의 사회로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엔젤 투자’ 집담회도 했다. 디쓰리쥬빌리 제공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 회사인 ‘디쓰리쥬빌리’가 지난 9월24일 서울 삼성동 ‘임팩트허브’에서 사회적 벤처기업을 투자자에게 소개하는 행사를 열었다. 행사 전에 이덕준 디쓰리쥬빌리 대표(오른쪽 끝)의 사회로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엔젤 투자’ 집담회도 했다. 디쓰리쥬빌리 제공

지난 8월28일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롯데의 선발투수는 35살의 송승준이었고, KIA는 31살의 송은범이 나섰다. 둘은 나란히 부진한 투구를 이어갔고 뒤이어 등판한 양 팀의 젊은 불펜투수들 모두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7회말 롯데의 공격. KIA는 41살의 최영필을 내세웠다. 최영필은 삼진 3개를 잡아내며 2이닝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날카로운 제구와 주 무기인 포크볼로 최영필은 이날 등판한 양 팀 10명의 투수들 중 가장 안정적인 투구를 보여주었다.

사회인 야구에서는 중·고교 시절 선수 경력이 있는 투수는 40살 이상부터 출전이 가능하다는 규정을 둔다. 선수 출신이더라도 40살이 넘으면 일반인들에 대한 경쟁력이 희석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슈퍼스타도 아니고 이렇다 할 국가대표 경력도 없는 최영필은, 철저한 자기 관리로 20년 가까이 프로야구 투수라는 직업을 유지하고 있다. 까마득한 후배들이 수십억원의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놀랍지도 않은 시절, 그는 제 나이 또래의 대기업 직장인 연봉 7천만원을 받으며 성실하게 마운드에 출근하고 있다.

뉴욕 양키스의 스즈키 이치로. 1973년생, 우리 나이 42살로, 1992년 일본 프로야구에 데뷔한 이 슈퍼스타는 2014년인 현재도 메이저리그의 우익수다. 전성기는 지나간 지 오래고 선발로 나서지 못하는 경기가 더 많지만, 언제 은퇴해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것이 분명한 세기의 슈퍼스타 이치로에게는, 은퇴 뒤의 박제된 훈장보다 후보지만 현역 선수라는 오늘이 더 소중하다. 메이저리그의 투수 제이미 모이어는 40살에 시즌 21승을, 46살에 시즌 12승을 거두고 51살인 2012년에 은퇴했다. 50살의 투수가 던지는 ‘느린 공, 더 느린 공, 더더 느린 공’이라는 다양한 직구(?) 앞에 메이저리그의 20대 짐승들의 배트는 속절없이 허공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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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이어를 넘어선 남자도 있다.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 투수 야마모토 마사는 1965년생이다. 지난 9월5일 그는 50살의 나이에 선발로 등판해 한신 타이거스를 상대로 5이닝 1실점의 호투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러니까 1983년, 내가 8살 때 프로야구에 데뷔한 선수가, 내가 딸을 가진 아빠가 되어 마흔을 목전에 둔 지금도, 여전히 프로야구 선발투수인 것이다.

40살 배 나온 아저씨의 노련미가 20대 청춘의 힘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구기 종목. 이것이 야구다. 노장의 기준을 바꾸고, 근력의 한계를 이겨내며, 노련미를 실측 가능한 전투력으로 증명하고, 한 직업의 근속연수를 연장해주는 남자들. 후세에게 ‘야구선수’가 평생 직업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해주며 “꿈꿔도 된다”라고 말해주는 이들이야말로 진짜 슈퍼스타가 아닐까. 최동원은 야구를 시작하는 모두의 꿈이지만, 최영필은 야구를 하고 있는 모두가 희망하는 미래다.

자신감이 없는 시점에 이미 재능은 없는 것이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게임오버다. 불안하지만 역동적인 현역으로서의 지금이야말로 언제나 우리 인생의 영광의 시기다. 인생에 너무 늦은 때라는 것은 없다. 저 아저씨들의 직구가 우리에게 말한다.

김준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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