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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마주친 세 남자의 인생

전 초등학교 코치 정훈
등록 2014-07-19 15:18 수정 2020-05-03 04:27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이것은 한 청년에 관한 개인적인 추억 이야기다. 5년 전 나는 지금은 사라진 도시 경남 마산에서 살고 있었다. 그때 근무하던 회사로부터 마산 지점으로 전근 통보를 받은 것이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곧 창원시로 통폐합될 예정인, 행정구역으로서의 역사를 끝내고 있는, 친구 하나 없는 소멸의 도시에서 나는 우울한 30대를 보내고 있었다. 당시 같이 전근 온 선배와 가깝게 지냈는데, 업무 중 머리를 식힌답시고 인근의 양덕초등학교에 가서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신세한탄을 하는 것은 우리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늘 우리 눈에 띄던 한 청년이 있었다. 양덕초등학교엔 야구부가 있었는데, 아이들 사이에서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듯한 청년 하나가 자주 목격됐다. 신세한탄하던 우리에게 그 청년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뭐하는 애지? 체육교사라기엔 너무 어려 보이지 않나? 야구부 코치인가? 쟤 인생도 진짜 답 없어 보이지 않냐?” 그 청년은 묵묵히 아이들과 야구를 하거나 혼자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그렇다. 이것은 롯데 자이언츠 2루수 정훈의 이야기다. 그를 TV에서 처음 봤을 때, 그가 마산에서 초등학교 코치로 일한 적이 있다는 중계 멘트를 들었을 때,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둘은 동시에 소리쳤다. “걔 맞지?!”

사실 이 글은 너무 늦게 쓰였다. 언젠가는 쓰리라 아껴두던 사이 청년은 너무 유명해져버렸다. 스무 살에 방출돼 야구를 포기하고 현역 포병으로 입대했다가 초등학교 코치로 용돈을 벌던, 그리고 다시 몸을 만들어 신고선수로 돌아와 인생의 마지막 승부를 던져 롯데 자이언츠의 2루라는 직장을 얻은 그의 스토리도 너무 유명해져버렸다.

선배도 나도, 지금은 다시 서울로 돌아와 일하고 있다. 얼마 전 서울 잠실야구장에 롯데 자이언츠 경기를 보러 간 우리는, 2루를 지키고 있는 저 작고 독한 청년 정훈만 경기 내내 지켜보며 그의 응원가를 목놓아 불렀다. 그날 정훈은 13연속 출루라는 프로야구 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그 우울했던 도시의 모래바람 날리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우연히 마주치며 서로의 팔자를 걱정하던 세 남자가, 잠실의 잘 다듬어진 야구장과 쾌적한 관중석에서 감동적인 상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물론 정훈은 우리를 모른다).

롯데의 2루는 팬들에게 엄격한 포지션이다. 자이언츠의 혼이었던 박정태, 중흥기를 이끌었던 캡틴 조성환이 오랜 시간 온몸을 부수며 지켜온 자리이자, 비운의 거포 임수혁이 쓰러진 베이스다. 최적의 드라마와 뜨거운 심장을 가진 조용한 청년 정훈에게, 롯데팬들은 이의 없이 향후 10년의 2루를 맡겼다.

‘마산시’는 없어졌지만, 정훈과 나와 선배의 힘들었던 과거도 지나갔지만, 5년 전 마산에서 우연히 마주친 세 남자의 인생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는 게 힘들 때마다, 나는 5년 전의 마산을 떠올린다. 소멸해가는 도시의 조그만 초등학교에서 혼자 운동장을 달리며 묵묵히 인생의 승부를 준비하던 작은 청년을 떠올린다. 내 인생의 힌트는 대부분 야구에서 얻는다.

김준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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