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의리 없다. 월드컵 국가대표 엔트리 발표 이후 감독 홍명보는 그야말로 난타를 당하고 있다. 나 또한 그의 엔트리에 수긍하기 어려운 이름들이 있지만, 엔트‘으리’라는 패러디로 시작해 인맥축구·파벌축구라는 손쉬운 비난으로 언론과 네티즌들에게 홍명보가 조롱당하는 상황엔 분노가 인다.
축구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이미 우리는 히딩크를 통해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이를 체감한 바 있다. 그 어떤 명장도 조기축구팀을 이끌고 월드컵 16강을 해낼 수는 없지만 한국 정도의 팀이라면 세공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준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경험치도 있다. 누군가를 감독으로 선임한다는 것은 축구장에 정장을 입힌 얼굴마담을 뽑는 것이 아니다. 그의 전술과 그의 철학을 선임하는 일이고, 그 전술과 철학을 구현할 선수에 대한 선발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국가대표 감독 홍명보’의 시대는 한국 축구가 품고 있던 회심의 카드였지만 아무래도 그는 너무 급하게 등판된 감이 있다(일본은 차케로니가 4년째 만들어온 팀이다). 수차례 고사했던 홍명보에게 월드컵 1년 전에야 한국 축구를 떠넘긴 우리였다. 우리가 호출해온 감독 홍명보와, 그가 가진 권리에 대한 예우를 지켜야 한다.
홍명보는 비난받지 않을 엔트리의 종류에 대해서도, 박주호·이명주 등의 이름을 제외할 때 감수해야 할 비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비난을 피하는 방법이 아니라 스스로 후회하지 않을 이름들을 택했다. 스스로의 원칙을 어겼지만 최소한 스스로를 속이지는 않았다.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그가 구상한 팀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 박주영을 뽑았다. 그렇다. 그것이 감독이다. “사람들이 말했지. 걔들은 안 될 거라고. 하지만 봐!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여전히 너희는 내가 원한 그 사람들이야. 우린 함께였고, 여전히 강해.” 지난 런던 올림픽, 일본과의 3·4위전을 앞두고 홍명보가 선수들에게 던진 메시지다. 홍명보와 그의 아이들은 그 경기에서 역사에 남을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사상 최초의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기쁨을 선물한 홍명보에 대한 의리를 지킬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물론 모든 비난은 결국 평가전에서의 졸전 탓이다. 홍명보의 국가대표팀은 개막 직전까지 월드컵 수준의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브라질로 들어갔다. 그래도 감독 홍명보가 흔들리지 않길 바란다. 누가 뭐라 해도 당신은 우리 세대의 자존심이었다. 국가대표 감독 홍명보의 팀은 어차피 한국 축구가 한 번은 거쳐가야 할 과정이었다.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였다면, 당신과 함께한 우리 세대의 추억에 막을 내릴 각오도 되어 있다. 저 지긋지긋한 기자들과 네티즌들의 조롱은 우리가 대응할 테니, 브라질에서의 전투는 당신에게 맡긴다. 자국 팬에게 철저히 외면받은 이 의리 없는 전쟁에서, 칼을 품고 준비해왔던 모든 것을 쏟아내기 바란다. 이것이 홍명보로부터 수많은 선물을 받으며 성장한 우리 세대가 당신에게 보내는 ‘의리’다.
김준 사직아재·칼럼니스트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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