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9일,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 한국과 중국의 결승전 전반 37분.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에서 침투한 한국의 스트라이커는 수비수 4명을 쓰러뜨리고 골키퍼까지 무너뜨리며 슈퍼골을 성공시켰다. 한국이 일찍이 가져보지 못한 개인기와 결정력을 지닌 최전방 스트라이커. 매 경기 평균 2골을 폭격하고 나가는 대회마다 득점왕을 휩쓸어오던 소년. 20살 박주영의 등장은 그 어떤 스타보다 파괴적이었다.
고종수의 천재성과 안정환의 결정력까지 갖춘, ‘문전에서 수비를 제칠 수 있는’ 20살의 스트라이커가 불러일으킨 신드롬은 대단했다. 프로 데뷔와 동시에 K리그를 폭격하고 프랑스로 날아가 3년간 AS 모나코를 박주영의 원맨팀으로 이끌던 그는 2011년 8월 프리미어리그 아스널로 향한다. ‘아스널의 스트라이커’라는, 하루 종일 골목과 시장을 누비며 드리블을 하던 대구 소년의 마지막 꿈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때까지 세상은 박주영을 중심으로 세팅된 듯 보였다. 그리고 그 시간 이후 벌어진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1990년대 한국 축구 부동의 원톱 스트라이커였던 황선홍은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지옥을 경험했다. 예선 1차전에서 우승 후보 스페인과 비긴 한국은 반드시 볼리비아와의 2차전을 이겨야 했다. 경기는 한국의 일방적인 우세 속에 펼쳐졌으나 결국 0-0으로 비겼고, 한국은 다음 독일전에서 패하며 탈락했다. 볼리비아와의 경기에서 황선홍은 몇 차례 결정적인 기회를 날리며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2002년 한국 월드컵에서 첫 승을 견인하는 결승골을 터뜨리고 사상 첫 월드컵 4강을 견인한 뒤에야 황선홍은 “1994년에 들어먹은 욕이 한이 되었다”며 8년 만에 웃음을 지었다.
27살부터 29살까지. 체력의 하강곡선과 경험의 상승곡선이 교차하는 축구선수로서 최전성기의 나이에, 그 천재 박주영은 아스널의 벤치에 앉아 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이다. 아스널에서의 주전 경쟁에서 밀렸지만(정확히는 경쟁 기회 자체를 얻지 못했지만) 그래도 아스널에 남아 마지막까지 도전해보겠다는 의지는 ‘높은 주급을 받으며 놀고먹으려는 의지박약함’이라는 수준 이하의 ‘악플’로 조롱받고 있다. 지금 박주영의 기사에 들러붙는 악플들은 선수를 거의 정신적으로 살해하는 수준이다.
타국에서 외면당하고 모국에서 조롱받는 천재 스트라이커. 그러나 2006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우즈베키스탄전 종료 직전의 결승골도, 2010년 사상 첫 원정 16강을 확정지은 나이지리아전의 프리킥 골도, 2012년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을 확정지은 일본전 결승골도 모두 박주영의 발끝에서 나왔다. 악플로 조롱하기엔 한국 축구는 박주영에게 빚진 것이 많다.
아마 지금 지구에서 가장 외로울 사나이. 그리고 아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벤치워머. 지금 이 모든 시련을 묵묵히 이겨내길 바란다. 그리고 올겨울을 슬기롭게 넘기며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월드컵에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당신의 기량으로 악플들에 복수하길 빈다. 황선홍처럼.
김준 사직아재·칼럼니스트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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