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한국과 일본의 결승전. 2-0으로 뒤지던 한국은 8회말 김재박의 활약으로 동점을 만든다. 계속된 2사 1·3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동국대 4학년 한대화는 볼카운트 2-3에서 들어온 몸 쪽 직구를 끌어당겨 잠실구장 왼쪽 폴대 상단을 때리는 영화 같은 스리런 홈런을 만든다. 한국의 첫 세계선수권 우승이자, 한국 야구 ‘스리런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그리고 ‘약속의 8회’도).
1984년 롯데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7차전. 절대적 열세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최동원의 영혼으로 시리즈를 7차전까지 끌고 온 롯데는 4-3으로 뒤지던 8회초 1사 1·3루의 기회를 잡는다. 타석엔 17타수 1안타를 기록 중인 유두열. 유두열은 당시 ‘KBO(한국야구위원회)의 랜디 존슨’이었던 재일동포 투수 김일융의 몸 쪽 직구를 (그의 회상에 의하면) ‘눈 감고 휘둘러’ 잠실구장 왼쪽 펜스 상단에 꽂았다. 이 스리런으로 롯데는 첫 우승을 했고 롯데 팬은 30년째 지속되는 전율을 얻었다.
1999년 롯데와 삼성의 플레이오프 5차전. 시리즈 전적 1승3패였던 롯데는 9회말까지 3-5로 뒤지며 벼랑 끝까지 몰렸다. 9회말 마지막 공격 1사 1·2루. 롯데엔 펠릭스 호세가 있었다. 그리고 호세는 말도 안 되는 역전 끝내기 스리런으로 경기를 6-5로 뒤집어 버린다(상대 투수는 임창용이었다). 기사회생한 롯데는 (전설이 된) 7차전까지 3연승을 달리며 삼성을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이 시리즈는 KBO 30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드라마로 남았다.
2002년 삼성과 LG의 한국시리즈 6차전. 창단 뒤 한국시리즈에 7번 진출해 모두 실패한 삼성은 3승2패로 앞서 있었으나 9회까지 9-6으로 뒤지자 7차전을(그리고 계속되는 저주를) 걱정하며 초조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9회말 1사 1·2루의 찬스에서 (언제나 자신만의 드라마를 위한 부진을 축적해놓는 듯한) 이승엽이 들어섰다. 이상훈의 슬라이더가 20타수 2안타의 이승엽에게 걸렸고 공은 대구구장 오른쪽 펜스를 넘기는 동점 스리런으로 연결되었다. 이어 나온 마해영의 역전 끝내기 홈런으로 삼성은 8번의 도전 끝에 한국시리즈 우승에 최상의 모습으로 가닿았다.
2010년 롯데와 두산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 1-1 동점이던 연장 10회초 롯데의 공격. 1사 2루에서 두산은 조성환을 거르고 이대호를 선택했다. 당일 부진한 타격에 발이 느린 이대호를 상대로 병살을 노리자는 의도였지만 그해 이대호는 타격 7관왕의 선수다. 구겨진 자존심을 미소 속에 감추며 타석에 선 이대호는 정재훈의 낮은 슬라이더를 퍼올려 잠실구장 왼쪽 펜스에 꽂히는 스리런을 날렸다.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존재 증명을 해낸 7관왕은 느리게, 아주 느리게 그라운드를 돌았다.
2013년 넥센과 두산의 준플레이오프 5차전. 첫 포스트시즌에서 2승2패로 분투 중이던 넥센은 마지막 경기의 9회말 2아웃까지 3-0으로 끌려갔다. 넥센에 남은 유일한 경우의 수는 스리런이었고, 타석에 들어선 박병호(사진)는 더스틴 니퍼트의 높은 직구를 때려 목동 구장 가운데 전광판을 때리는, 모두가 꿈만 꾸던 단 하나의 기적을 재현해냈다. 다른 스리런과 달리 박병호의 팀은 패했지만, 박병호가 때려낸 9회말 2아웃 동점 스리런은 훗날 2013년의 프로야구를 회상할 때 떠오를 ‘올해의 가장 위대한 순간’이었다. 한국 야구의 스리런 드라마는 진행 중이다.
김준 칼럼니스트·사직아재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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