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예술>, 심보선, 민음사
전세계에서 월드컵이라는 큰 대회에 8번 넘게 연속 출전한 나라는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그리고 스페인뿐이다.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축구 강국이다. 그 대단한 ‘축구종가’ 영국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역시나 최종예선 과정이다. 3차 예선을 몇 경기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갑자기 국가대표팀 감독이 경질되는 ‘사건’이 벌어졌고, 축구계에서는 좀처럼 사용하는 일이 없던 ‘릴리프’라는 단어가 하루가 멀다 하고 지면에 오르내렸다. 구원투수, 가 아닌 구원감독의 등장. 최강희 감독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큰 캐릭터의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다.
사실 그는 1년6개월 가까이 국가를 대표하는 팀의 감독을 맡으면서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박주영을 쓰면 박주영을 쓴다고 욕먹었고, 이동국을 쓰면 이동국을 쓴다고 욕먹었고, 손흥민은 안 쓰면 손흥민을 안 쓴다고 욕먹었다. 초창기 몇 번인가는 도무지 왜 그렇게 웃지 않느냐고 욕하는 사람도 본 적 있다. 국가대표팀 감독, 특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무엇을 해도 욕먹는다. 최강희 감독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목표와, 자신의 신념과 상관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말’과 ‘말’ 사이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았다.
정점은 6월 초 레바논 원정경기에서 간신히 1대1로 비기고 돌아왔을 때다. 대표팀이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국가대표팀 훈련장은 적막에 가까운 침묵에 휩싸였다. 월드컵 본선행 불씨가 꺼질지 모르는 상항에서 초유의 ‘내분설’까지 대표팀을 덮쳤다. ‘이청용과 기성용이 싸웠다더라.’ ‘항명’이나 ‘파벌’ 같은 단어를 지극히도 두려워하는 세계에서, 한 조직을 이끄는 리더라면, 그 상황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조차 최강희 감독은 흔들리지 않고자, 적어도 동요하지 않는 표정을 열심히 지으며 한 가지 약속만을 말했다. “반드시 한국 대표팀을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겠다.” 처음부터 그것이 목표였고, 그 과정에서 나온 부족한 점은 모두 선수들이 아닌 감독 나 자신의 책임이다, 하지만 반드시 한국 대표팀을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겠다, 는 말.
같은 말을 여러 번 들으면 질린다. ‘말의 향연’은 결국 정도가 지나치면 껍데기뿐인 수사들의 허울 그 자체가 된다. ‘최강희’라는 이름 석 자를 두고 지난 1년6개월 동안 무수한 말의 향연이 있었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은 언제나, 어떠한 욕을 먹어도 “다른 말들은 필요 없습니다. 월드컵에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 목표를 반드시 이루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말만을 반복했다. 언제나 똑같은 표정으로, 언제나 똑같은 말만을 반복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수많은 말 중에서 최강희 감독의 말만이 진짜 ‘향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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