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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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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가 빚어낸 27.43m의 미학

NC의 첫 승이 날아가버린 날
등록 2013-04-17 10:53 수정 2020-05-03 04:27
KBS N 화면 갈무리

KBS N 화면 갈무리

4월3일 롯데 자이언츠와 NC 다이노스의 경기. 2-2 동점 상태인 9회말, 원아웃에 주자를 3루에 두고 NC 다이노스가 공격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김경문 감독은 마무리를 위해 스무 살의 박헌욱을 대주자로 내세웠습니다. 이제 희생플라이 하나면 NC는 1군 입성 두 번째 경기 만에 창단 첫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3루에서 홈까지의 거리 27.43m. 그토록 바라던 첫 승이, 그것도 9회말 역전 끝내기의 드라마로 눈앞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타자 이현곤의 잘 맞은 타구가 외야 깊숙이 날아갔습니다. 딱 하는 순간 관중은 함성을 질렀고, 중계진은 역사적인 끝내기 멘트를 준비 중이었으며, NC 선수들은 손을 들고 벤치에서 뛰어나왔고, 상대팀인 롯데 선수들도 경기가 끝났음을 직감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3루 주자 박헌욱은 구단 역사에 영원히 남을 장면의 주인공이 되어 홈으로 달렸습니다.

그러나 이 경기장에 아직 승부를 포기하지 않은 2명의 선수가 있었습니다. 롯데 좌익수 김문호는 까마득한 외야에서 모든 힘을 쏟아 홈으로 공을 뿌렸습니다. 김문호의 직사포는 아름다웠지만, 그래도 3루 주자를 잡기엔 물리적인 거리가 있었습니다. 박헌욱이 3루에서 승리의 꿈을 안고 달려온 27.42m. 그러나 롯데 포수 용덕한의 발이 마지막 0.01m를 버티고 있었습니다. 용덕한의 발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필사적으로 박헌욱의 발을 블로킹했고 모두가 세이프라고 생각한 그때 심판은 아웃을 선언했습니다. 승부는 연장으로 넘어갔고, 롯데는 바로 점수를 뽑아냈습니다. NC의 승리는 기약 없이 유예됐습니다.

연장전 내내 TV 카메라가 비추고 있던 것은 홈에서 아웃된 대주자 박헌욱의 표정이었습니다. 그저 순박하게 홈까지 빨리 뛰기만 하다가 아웃된 박헌욱의 눈엔 숨길 수 없는 눈물이 맺혔고, 팀이 연장에서 역전타를 맞는 순간 벤치에 앉아 있던 대주자 박헌욱의 어깨는 마침내 가늘게 떨렸습니다.

27.43m 앞에 다가왔던 승리를 날려버리고 눈물을 흘리던 신생팀의 스무 살 대주자는 평생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슈퍼스타가 넘쳐나는 야구장에서, 이 평범하고 이름 없는 3명의 야구선수가 4월3일 밤의 어느 순간 5초 동안 펼친 27.43m의 승부는 우리가 야구를 처음 좋아하게 만들었던 그 애틋한 감동을 다시 불러일으켰습니다. 경기 이후,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NC는 7번의 경기에서 아직도 승리를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첫 승은 한없이 유예되고 있지만, 일찍 경험한 승리의 달콤함보다는 프로의 벽 앞에서 흘려본 눈물이 NC라는 팀이 만들어갈 역사의 동력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사직아재·칼럼니스트*NC는 4월11일 LG를 4-2로 꺾고 8경기 만에 창단 첫 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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