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개막됐습니다. 지난 두 번의 WBC는 한국 야구에 수많은 추억과 역사적인 순간을 남겼습니다. 한국 투수들은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3구 3진으로 잡아냈고, 대회 초대 홈런왕은 메이저리그의 거포들이 아니라 한국의 이승엽이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한국 리그의 작은 선수들이 펼치는 역동적인 플레이에 세계 언론은 “도대체 이들은 어디서 나타난 괴물들이냐”며 경악했습니다. 미국의 파워와 일본의 세기를 혼합하고 어디에도 없는 ‘육상부’의 다리까지 장착한 한국 야구는 WBC가 발견한 가장 파괴적인 캐릭터였습니다.
저에게 지난 두 번의 WBC 중 최고의 경기는 한국과 일본이 맞붙은 제2회 대회 결승전입니다. 저도 그리 낭만적인 스포츠팬은 아닌지라 패한 경기에 대해서는 아예 기억을 하지 않지만, 그 결승전에서 일본에 패한 한국팀의 경기는 모든 것을 불태우며 최후까지 저항하다 쓰러진, 아름다운 패배가 무엇인지를 4시간 동안 보여준 장엄한 드라마였습니다.
대회 기간에 네 번을 맞붙어 2승2패를 기록 중이던 한국과 일본은 기어이 결승전에서 최종 승부를 가리게 됐습니다. 경기는 시종일관 일본의 페이스였습니다. 경기 초반, 일본은 선취점을 올리고 수차례의 찬스를 맞았습니다. 흐름상 모든 한국 팬들은 ‘오늘은 어렵다’고 생각했고 ‘여기까지 온 것도 장하다’는 말로 자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한 것은 팬들뿐이었습니다. 선수들은 수많은 위기를 기적처럼 막으며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난공불락 같던 일본의 선발 이와쿠마 히사시를 상대로 추신수의 동점 홈런이 작렬했습니다(이와쿠마는 리그에서 1년 내내 200이닝 가까이를 던지는 동안 단 세 개의 홈런만 내준 투수였습니다). 그것 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 뒤 일본은 추가로 2점을 얻었고, 한국팀은 정말 여기서 진다고 해도 모두 박수 쳐줄 만큼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수들에게 필요한 건 박수가 아니라 승리였습니다. 8회에 1점을 따라간 한국은 마무리로 올라온 일본의 슈퍼스타 다르빗슈 유를 상대로 9회말 투아웃에서 만화 같은 동점타를 때려내며 기어이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이범호의 이 동점 적시타는 제가 야구를 보며 체험한 최고 수준의 전율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결국 연장에서 스즈키 이치로에게 적시타를 맞고 패했지만, 이치로를 거르지 않고 정면 승부를 택한 임창용의 선택조차 아름다웠습니다. 제3회 WBC의 한국 대표팀이 역대 최약체라는 걱정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강팀으로 불린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한국 야구팬들은 한국 야구에 대해 긍지를 가져도 좋습니다. 누가 뭐라든 한국 야구는 여전히 거인들을 상대로 정면 승부를 할 것이며, 다시 8회가 되면 우리의 심장은 뛰기 시작할 것입니다. 벌써부터 3회 WBC가 가져다줄 추억이 기대됩니다.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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