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드에서 홀로 싸우는 투수를 믿고 기다려줄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이 질문에 정답이 있을 리 없다. 승리를 향한 믿음의 한계는 어디까지여야 할까. 700만 관중 ‘대박’을 터뜨린 2012 시즌 프로야구도 어느덧 정규시즌을 마감하고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있다. 이번 시즌 더그아웃에서 감독들을 만날 때마다 종종 화제가 됐던 이슈 중 하나는 투수 기용과 교체 시기의 문제였다. 박찬호나 김병현과 같은 해외파 선수들의 복귀도 있었고, 시즌 중반까지 종잡을 수 없는 치열한 순위 싸움이 계속된 데는 무엇보다 한국 야구의 투수 전력이 하향 평준화됐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시즌 중 더그아웃에서 만난 한 투수 출신 감독이 “요새는 한계투구 수를 신경 쓰는데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던지기 전부터 한계가 있다는 건가?”라는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다. 또 다른 투수 출신 감독은 “우리 때에는 선발·구원을 합쳐 200경기 넘게 던지기도 했는데 요새 투수들은 한 경기에서도 한계투구 수를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2012 시즌 선발투수가 완봉승을 거둔 경기는 570경기 중 단 10경기에 불과하다(10월3일 기준). 9회까지 완투를 한 경기도 570경기 중 31경기에 그쳐 전체의 5% 수준이다. 8개 구단 선발투수들의 평균 투구 수는 85~95개이고, 대부분 5~6이닝 정도만을 소화한다. 막강한 불펜 전력으로 승리를 가져가는 SK 마운드에는 이번 시즌 완봉은 물론 완투를 한 투수가 10월3일까지 1명도 없었다. 결국 요즘의 ‘선발’이라는 단어엔 ‘오늘은 너를 믿는다’는 약속과 동시에 ‘나의 믿음에는 한계가 있다’는 역설도 이미 포함돼 있는 셈이다.
그런데 시즌 막판, KIA의 선발투수 4명이 연속으로 완투승을 거두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후 5번째 등판한 외국인 투수 앤서니가 연승에 실패해 기록은 중단됐지만 그다음 경기에서도 KIA는 선발투수 서재응이 자신의 생애 두 번째 완봉승으로 승리를 가져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믿음의 연속. 사실 ‘4강 싸움과 다소 멀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조금은 부담 없이 믿을 수 있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선동열 감독이 투수 출신이니 선발에 승부수를 거는 그의 마음가짐이 달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시즌이 시작되면 감독들은 또 승패에 초조해질 것이고, 선발을 믿는 일은 혼자만의 뚝심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9이닝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당연해 보이는 시대가 됐다. 승리를 위해 믿고 기다리는 시간은 얼마여야 할까. 자신이 믿고 올린 누군가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 여기며 참고 기다리는 일, 동시에 그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 당신은, 승리를 위해 얼마나 기다릴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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