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비장했던 한-일전’으로 기억될 런던올림픽 축구 동메달 결정전은 한국엔 향후 30년 동안 웃으며 돌아볼 추억을, 일본 축구엔 아직도 그들 앞을 막아서고 있는 한국이라는 거대한 벽에 대한 좌절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한 일본 팬은 “스페인 안 이겨도 되니 한국을 이기란 말이다!”라고 절규했습니다.) 홍명보가 만들어낸 ‘런던올림픽 한국 축구대표팀’은 ‘팀 스포츠’가 줄 수 있는 감동의 최대치를 뽑아주었습니다. 최전방 공격수부터 최후방 수비수까지 10명의 선수가 불과 20m의 거리를 90분 내내 유지하며 20m의 감옥 안에 상대를 감금시켜버린 그 위대한 팀플레이는 모든 경기에서 상대팀을 질식시켰습니다. 비록 패했지만 아직 체력과 의지가 남아 있던 전반 20분까지 브라질을 두들겨패던 한국 선수들의 모습은 전율이었습니다.
동메달 결정전을 앞두고 홍명보는 지구상의 어떤 축구감독도 해본 적 없는 고민에 빠집니다. “메달을 따더라도 1초라도 뛴 선수에게만 병역 혜택이 주어진다”라는, ‘팀’의 정의를 도저히 알지 못하는 병무청의 유권해석으로 인해 그때까지 한 게임도 출전하지 못했던 수비수 김기희가 눈에 밟혔습니다.
‘팀 홍명보’는 위대했습니다. 전반전 박주영의 쇼타임으로 앞서나갔지만,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한 명의 동료를 구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을까요. 한국 선수들은 수비에 몰두하지 않고 쉼없이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후반전에 터진 구자철의 추가골로 그들은 마지막 동료였던 김기희의 손을 잡아줍니다. 승리가 확실시되던 종료 4분 전, 선수 교체 라인에 홍명보 감독은 예의 진지한 얼굴로 낯선 얼굴의 후보 선수와 서 있습니다. 마침내 등장한 신비의 벤치워머 김기희의 모습에 흐뭇한 웃음을 띤 사람은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당연히 병역 혜택을 함께 누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실눈을 뜨고 보자면 엄연한 ‘꼼수’입니다. 그러나 전설의 스위퍼 홍명보는 바보 같은 병역법을 드리블하며 마지막 숨겨놓은 한 명의 주인공까지 공개한 뒤 드라마를 마무리지었습니다.
“그라운드에 들어가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감독님의 말씀을 선수들에게 외쳤다. 내 축구 인생 최고의 4분이었다”라고 그 당시를 회고하는 김기희의 모습에서 ‘선수 스스로 좀 민망해하진 않을까’ 싶었던 제가 오히려 더 민망합니다. 김기희는 벤치와 훈련장에서 팀을 위해 흘려온 자신의 땀을 믿기에, 그 4분이 남몰래 흘려온 땀에 대한 당연한 보상임을 잘 알고 있는 당당한 벤치워머였습니다.
MB라 불리는 자가 혼자 살겠다며 망쳐버린 나라의 국민으로서, 또 다른 MB(명보)라는 자가 타국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마지막 동료의 손을 잡아주며 함께 걸어가는 모습은 가슴을 뜨겁게 만듭니다. 부상당한 선수들의 대책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감독 홍명보가 답했습니다. “우리의 에이스는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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