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니 체력이 급격히 달린다. 버스 한 정거장 정도 거리를 걷고도 기진맥진해서 어딘가에 눕고 싶어진다. 어린 시절부터 건장한 몸과 안 어울리게 심한 빈혈 같은 걸 달고 살았는데, 운동해서 튼튼해질 생각은 안 하고 기운 없다는 핑계로 단 걸 잔뜩 먹어댔다. 어른이 된 지금도 다를 것 하나 없다. 빈혈에 저혈압이 추가되고 단것에 맥주가 추가돼 어지러운 상황만 더 많이 만들어낼 뿐. 늦잠으로 시작해 캔맥주로 끝나는 일상이 계속되면서 쓰려던 시나리오는 아이디어 단계에서 지지부진. 결국 작가가 되려면 체력부터 길러야 한다며 운동 권하는 엄마와 남친의 등쌀에 못 이겨 운동을 바로 시작했다, 고 하면 거짓말이고 유명한 작가들은 그렇다면 어떤 운동을 한단 말인가, 맥주를 홀짝이며 하나씩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하나, 알베르 카뮈는 어린 시절 축구를 했다. 새 운동화를 얻기 위해 1등이 아니라 2등을 하려고 달렸던 영화 처럼 그도 운동화가 귀할 만큼 가난했다. 그의 할머니는 매일 밤 신발 밑창이 얼마나 닳았는지 검사했다고 한다. 많이 움직이면 그만큼 신발이 빨리 닳으니, 카뮈는 움직임이 적은 골키퍼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골키퍼를 하며 ‘공이 이쪽으로 와줬으면 하고 바라는 쪽으로는 절대 오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둘, 한국의 시인들도 축구를 한다. 1991년 함민복, 박정대 등 젊은 시인들이 모여 시간 나는 대로 축구를 하다가 1999년 겨울 ‘글발’로 이름을 정하고 팀을 체계적으로 재정비했다. 글발은 세계 유일의 시인 축구단으로, 문학 논쟁은 피하고 술버릇이 나쁜 시인은 회원으로 받지 않으며 출신과 계파를 따지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한 달에 한 번 모여 축구를 한다. 2011년에도 친선경기 스케줄이 인터넷에 올라올 정도이니 아마추어 팀치고는 꾸준한 편이다.
셋, 널리 알려진 대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같이 달린다. 마라톤 대회에도 여러 번 나갔다. 달리는 행위와 쓰는 행위를 그는 같은 리듬으로 해나간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거리를 뛰어간다. (…)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고, 그의 책 에 쓰여 있다.
한국에서는 소설가 김연수가 매일 작업실 근처의 공원을 달린다는 이야기를 본 적 있다. 그 역시 하루키만큼이나 매일 읽고 쓴다는 것을 강조하는 작가다.
작가들이 하는 운동이 매력적인 이유는 운동을 통해 그들이 몸의 근육만큼이나 생각의 근육도 단련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그 매력에 홀려 당장 무거운 몸을 일으켜 운동하러 가려다가 맥주 한 캔을 더 집어들며, ‘내일은 꼭’이라고 다짐하는 판다였습니다.
P.S. 운동을 절대 하지 않아서 글을 잘 쓰는 사례가 있다면 magictrain03@naver.com으로 꼭 알려주시길.
김지현 시나리오작가 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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