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테두리에 희끗희끗 얼룩이 생겼다. 땀의 수분이 증발한 자리에 소금 결정이 남은 것이다. 첫 승을 할 때가 됐다는 신호다. 지난 6월 창단한 한겨레신문사 야구단인 ‘야구하니’는 11연패 끝에 마침내 첫 승을 거뒀다.
10월의 마지막 날, 상대는 ‘한량’이라는 이름의 팀이었다. 야구하니는, 상대팀이 연배가 좀 있으신데다 신생팀이어서 첫 승을 챙길 절호의 기회라는 정보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운동장에서 마주한 한량들은 이름과는 달리 건실해 보이는 30대가 주축이었다. 역정보였다.
져봤자 숫자 하나 늘어나는 건데, 뭘. 지난 시즌 타이거즈가 기록한 16연패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으니 맘껏 즐겨보자고. 야구하니는 서로를 격려했다.
1회초 한량의 공격. 늦게 합류해 선발 자리를 꿰찬 박주환의 호투와 탄탄한 수비로 삼자 범퇴로 끝냈다. ‘어? 깔끔한데? 이런 적 처음 아닌가? 느낌이 좋아.’ 하지만 1회말 야구하니의 공격도 4번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2회 들어 한량이 먼저 치고 나갔다. 2점을 내줬다. 예전 같으면 팀이 흔들렸을 텐데 야구하니는 포볼과 안타를 섞어 대량 득점을 했다.
바짝 신발끈을 조인 한량은 턱밑까지 따라붙었다. ‘이러다 뒤집히는 거 아냐?’ 방정맞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즈음, 야구하니의 멋진 수비로 끝을 냈다. 8-6. 첫 승은 날카로운 첫 키스와 같은 느낌이었다.
첫 승임은 분명한데 3회 경기에서의 승리를 온전한 승리로 봐야 하는지 논란이 일었다. 사회인·직장인 야구는 보통 2시간 룰을 적용한다. 야구를 즐기려는 이들은 많고 야구장은 적으니, 2시간으로 제한을 둬 6회나 7회를 한다. 그런데 이날은 구장 예약이 겹쳐 다른 팀과 절반씩 양보했다. 3회초 승리 확정이라는 이 어정쩡함이 첫 승의 기쁨을 묘하게 반감시켰다. 한량도 “끝까지 했다면 모르는 거 아닙니까. 다음에 설욕할 기회를 꼭 주세요”라며 절반의 패배만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야구하니의 전력은 여전히 강한 편은 아니지만, 경기 경험이 쌓이면서 실력이 늘고 팀워크도 다져지기 시작했다. 한량과의 경기 전날 가진, 야구하니의 OB와 YB의 피 튀기는 접전(1회초 대량 실점으로 YB의 패색이 짙었으나 ‘구라’와 ‘우기기’를 섞어 결국 역전했다. 어쨌든 5회말 끝내기 안타와 승리 세리머니는 멋졌다)도 첫 승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날 야구하니 연습경기에 나타난 행운의 여신 스포츠부문 정유경 기자의 시구 덕분이라고, 난 감히 생각한다. 야구하니에도 여성 팀원이 있지만 그들은 아직까지 연습이나 경기에 나온 적이 없다. 연습경기까지 포함해 열다섯 번째 경기 만에 TV에서나 보던 시구라는 것을 처음 봤으니 팀원들의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르지 않았겠나. 다만 이 행운의 약발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다음 주 출판계 야구팀 ‘부끄부끄’(book에서 따온 이름)와의 경기에서 연승을 노렸으나 그저 우리의 바람이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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