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프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20년 가까이 응원해왔던 나의 타이거즈가 올해는 쉰다. 나를 야구인으로 이끈 이종범·양현종·이용규·안치홍·나지완을 볼 기회가 없다. 롯데·두산·삼성·SK가 노는 가을 야구에 기아의 자리는 없다.
주변의 기아·LG·넥센·한화 팬들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누굴 응원하는지 지켜봤다. 크게 세 부류로 갈렸다. 평소 약자에 대한 배려를 중시하던 부류는 무조건 약자를 응원했다. 정규 시즌 4위 롯데와 3위 두산 경기에서는 롯데를, 2연패 뒤 3연승으로 롯데를 꺾고 올라온 두산이 플레이오프에서 삼성과 붙자 이번엔 두산을 응원했다. 삼성이 맛있는 술까지 만들었다면 삼성 팬이 늘었을지도 모르겠다. 서울 ○○동 두산아파트에 사는 한 친구는, 몇 년 전에 곰이 우승하자 아파트에 술을 돌린 적이 있었다면서 그해의 영광이 재림하길 기원했다.
절대 강자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부류는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으로 갔다. 그들은 ‘절대반지’를 낀 것 같은 SK를 누가 꺾어줄 것인가를 자신의 DNA 앞에 세웠다. SK 때문에 속앓이를 많이 했던 LG 팬 최성진 기자는 “삼성이 맘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대SK 경쟁력은 두산보다 앞설 것”이라며 삼성을 응원했다.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이미 내 편이 없는 잔치판에 강한 놈 혹은 이긴 놈이 우리 편이라는 이들도 있었다.
나의 가을 야구도 서글프기는 마찬가지다. 같은 언론사 야구팀이어서 어느 때보다도 경쟁심에 불을 당겼던 국민일보 ‘쿠키스’와의 2차전에서 한겨레 야구팀 ‘야구하니’는 또 대패하고 말았다. 야구도 ‘짬밥’이 중요해서 우리와 창단 시기와 엇비슷해 실력도 어금버금하려니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8월 말 1차전 대패 뒤, 벼르고 벼른 9월25일 복수전에서 다시 큰 점수 차로 지고 말았다.
역시 초반 대량 실점이 패인. 축구도 시작 5분과 휘슬 불기 전 5분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 우리는 1회초에 10점 이상 내줬다. 이날의 필승 카드는 황태하. 평소 강한 어깨로 3루수를 보면서 간혹 마무리 투수로 기용됐던 황 선수는 이날 처음 선발로 출전했다. 그런데 긴장한 탓인지 평소 상대 타자를 주눅 들게 만들던 강속구를 던지지 못했다. 마운드를 이어받아 이날 처음 투수로 등판한 김수헌이 몇 점을 더 내주고서야 1회를 끝낼 수 있었다.
두 자릿수 실점을 하더라도 평소 야구하니의 타력이면 웬만큼 따라붙을 수 있었을 텐데 상대팀 ‘쿠키스’의 투수는 초등학교 선수 출신이었다. 야구하니 상위 타선을 꼭꼭 틀어막았다. 야구하니도 2회부터는 제 페이스를 찾았다. 난 이날 7번 타자로 2회말 첫 타석에 섰다. 초구,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휘둘렀는데 바깥쪽으로 휘어 나갔다. 두 번째 공은 치기 좋은 직구였다. 헛스윙. ‘그거 한 번만 더 던져봐라’ 하면서 벼르고 있는데…. 어? 최소 시속 100km는 넘을 것 같은 강속구가 옆구리로 날아왔다. 퍽!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등뼈 옆 근육에 맞았다. 맹세코 일부러 맞지는 않았다. 몸을 던져 만루 찬스를 만들었는데 다음 선수의 삼진아웃으로 공수 교대. 프로야구에서 자주 보던 역전 드라마를 ‘야구하니’는 이날 쓰지 못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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