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야구에는 나름의 고충이 있다. 여러 직종의 사람이 모인 사회인 야구는 연습이나 게임이 있는 날 모였다가 흩어지지만, 직장인 야구는 팀원들을 회사에서 줄곧 본다. 이 때문에 직전 게임에서 맹활약한 선수는 기가 살고, 반대의 경우엔 주눅 든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그렇다.
9월3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광나루야구장에서 열린 원음방송과의 경기에서 내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세 차례 타석에 들어서 포볼로 출루해 다른 선수의 만루홈런으로 홈을 밟은 게 전부였다. 나머지는 파울만 여러 차례 치다가 삼진으로 물러났다. 825호 이 코너에서 “지리산의 정기가 실린 안타를 쏘아올리겠다”고 공언했는데 결과적으로 허언이 되고 말았다.
슬럼프라고 보기엔, 짜릿한 손맛을 본 기간이 너무 짧았다. 머지않아 운동신경이 부족하다거나 타격 감각이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지 모르겠다. 수비는 꾸준한 연습으로 실력이 월등히 나아지지만 타격은 타고난 감각, 즉 선천적 재능이 크게 좌우한다는 게 야구계의 정설이다. 물론 타격도 경험과 연습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수비 실력만큼 향상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우리 팀 ‘야구하니’의 이본영 선수의 맹활약을 감상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야구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됐을까? 처음 타석에 섰을 때는 자세가 엉거주춤했던 그가 선수 출신 코치의 가르침을 단 한 번 받았을 뿐인데 그럴듯한 폼이 나왔다. 1회말 첫 타석에서 만루홈런을 치더니(그때만 해도 ‘로또 당첨자’를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다음 타석에서 2루타, 그다음 타석에서 1루타를 때려냈다. 어? 이거 장난이 아니네. 3루타만 치면 프로야구에서도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사이클링히트가 아닌가.
마지막 타석에서 유격수 앞 땅볼로 대기록이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야구하니 최초의 만루홈런만으로도 그는 스타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만루홈런을 친 기아 타이거즈의 김상현 선수와 이미지가 비슷하다. 누가 기분이 더 나쁠지는 모르겠지만.
이본영 선수에 가려 빛을 잃었지만 최근 두 경기에서 전 타석 출루한(혹은 그런 것으로 기억되는) 박성영 선수와 투수면 투수, 포수면 포수, 좌익수면 좌익수 어느 자리에 가도 듬직한 김용득 선수의 성장세도 놀랍다. 박성영은 “태어나서 처음 야구를 한다”고 했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루하고 한 번 출루하면 3루까지 훔치는 발을 가지고 있어 부동의 1번타자다. 김용득은 포수 자리에서 도루를 잡기 위해 2루로 공을 던지면 베이스를 훌쩍 넘어가고, 외야수를 할 때는 홈까지 직선으로 던지는 강한 어깨를 가졌다. 박성영과 김용득은, 금요일에 축구하고 토요일엔 야구하고 일요일을 농구로 마무리하는 만능 스포츠맨이어서 ‘초짜’로 시작했음에도 팀의 주력이 됐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므로 야구하니의 첫 승은 멀지 않았다. 문제는 나를 포함해 몇몇이 그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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