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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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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메 기죽어

등록 2010-09-09 16:54 수정 2020-05-03 04:26
플레이볼 사진 홈으로 들어오는 박성영선수, 배트 들고 있는 김용득선수. 사진 야구하니 제공

플레이볼 사진 홈으로 들어오는 박성영선수, 배트 들고 있는 김용득선수. 사진 야구하니 제공

직장인 야구에는 나름의 고충이 있다. 여러 직종의 사람이 모인 사회인 야구는 연습이나 게임이 있는 날 모였다가 흩어지지만, 직장인 야구는 팀원들을 회사에서 줄곧 본다. 이 때문에 직전 게임에서 맹활약한 선수는 기가 살고, 반대의 경우엔 주눅 든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그렇다.

9월3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광나루야구장에서 열린 원음방송과의 경기에서 내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세 차례 타석에 들어서 포볼로 출루해 다른 선수의 만루홈런으로 홈을 밟은 게 전부였다. 나머지는 파울만 여러 차례 치다가 삼진으로 물러났다. 825호 이 코너에서 “지리산의 정기가 실린 안타를 쏘아올리겠다”고 공언했는데 결과적으로 허언이 되고 말았다.

슬럼프라고 보기엔, 짜릿한 손맛을 본 기간이 너무 짧았다. 머지않아 운동신경이 부족하다거나 타격 감각이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지 모르겠다. 수비는 꾸준한 연습으로 실력이 월등히 나아지지만 타격은 타고난 감각, 즉 선천적 재능이 크게 좌우한다는 게 야구계의 정설이다. 물론 타격도 경험과 연습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수비 실력만큼 향상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우리 팀 ‘야구하니’의 이본영 선수의 맹활약을 감상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야구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됐을까? 처음 타석에 섰을 때는 자세가 엉거주춤했던 그가 선수 출신 코치의 가르침을 단 한 번 받았을 뿐인데 그럴듯한 폼이 나왔다. 1회말 첫 타석에서 만루홈런을 치더니(그때만 해도 ‘로또 당첨자’를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다음 타석에서 2루타, 그다음 타석에서 1루타를 때려냈다. 어? 이거 장난이 아니네. 3루타만 치면 프로야구에서도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사이클링히트가 아닌가.

마지막 타석에서 유격수 앞 땅볼로 대기록이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야구하니 최초의 만루홈런만으로도 그는 스타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만루홈런을 친 기아 타이거즈의 김상현 선수와 이미지가 비슷하다. 누가 기분이 더 나쁠지는 모르겠지만.

이본영 선수에 가려 빛을 잃었지만 최근 두 경기에서 전 타석 출루한(혹은 그런 것으로 기억되는) 박성영 선수와 투수면 투수, 포수면 포수, 좌익수면 좌익수 어느 자리에 가도 듬직한 김용득 선수의 성장세도 놀랍다. 박성영은 “태어나서 처음 야구를 한다”고 했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루하고 한 번 출루하면 3루까지 훔치는 발을 가지고 있어 부동의 1번타자다. 김용득은 포수 자리에서 도루를 잡기 위해 2루로 공을 던지면 베이스를 훌쩍 넘어가고, 외야수를 할 때는 홈까지 직선으로 던지는 강한 어깨를 가졌다. 박성영과 김용득은, 금요일에 축구하고 토요일엔 야구하고 일요일을 농구로 마무리하는 만능 스포츠맨이어서 ‘초짜’로 시작했음에도 팀의 주력이 됐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므로 야구하니의 첫 승은 멀지 않았다. 문제는 나를 포함해 몇몇이 그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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