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건강검진이 기대된다. 11월 초다. 연말마다 건강검진을 했다. 최근 3년간 건강검진 결과가 매번 전년보다 좋았다. 그런데 올해는 거의 매주 주말, 주변에서 가정생활을 걱정할 정도로 야구를 해댔다. 체중이 줄었다. 권장 기준에 거의 근접했다. 근육은 늘었다. 전엔 등산과 축구 등 주로 하체 위주의 운동이었다. 야구 덕분에 상체도 좋아졌다.
얼마 전 회사 근처 효창운동장에서 축구 시합이 있었다. 저녁이었고 비가 와서 선수들밖에 없었다. 운동장 한켠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10년 이상 같이 공을 찬 회사 동료들이 몸이 달라졌다고 했다. 근육의 굴곡이 잘 드러나는 조명 아래에서 배에 힘을 잔뜩 주고 있어서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는데 ‘인민 복근’이라는 새 별명을 얻었다.
내 몸이 ‘아저씨화’하던 무렵부터 남자의 몸도 감상 대상이 됐다. 남자 연예인들이 앞뒤 맥락 없이 웃통을 벗고 식스팩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때도 버텼다. 거기에 지혜를 채워넣으라고 비웃으며 내 열등감을 상쇄했다. 무(武)보다 문(文)을 강조해온 가풍의 영향도 있었다.
그런데 야구를 하면서 힘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허벅지가 날씬한 여인네들 허리보다 두꺼운 롯데의 이대호처럼 몸을 만들 수 없다, 그러면 상체 근육을 키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마흔이 넘어 운동을 하지 않으면 있던 근육도 흘러내린다. 팔굽혀펴기 횟수를 조금씩 늘렸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에 나눠 100개씩 했다. 술을 덜 먹고 집에 들어가는 날엔 스윙 100번, 게임에서 안타가 없는 날엔 두 배로 늘렸다. 그러다 보니 닭 가슴살을 먹지 않아도 돈 들여 만든 몸을 조금씩 닮아갔다. 의 몸짱 신윤동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게 다 야구 덕분이다. 고맙다 야구야.
시답지 않게 몸 얘기로 ‘구라’를 푼 이유는 2주 동안 야구를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야구하니 모꼬지와 다음날 YB-OB(상위 네 명의 나이를 합하면 200살이고 20대가 없어서 대략 마흔 언저리에서 갈린다)의 대결이 성사됐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젊은이’(엄격히 따지면 젊은이라고 부르기 거시기하지만)들을 무참히 박살냈는지 자랑을 늘어놓았을 텐데 아쉽게도 게임을 하지 못했다. 전날 과음 탓? 아니다. 사정은 복잡하나 줄여서 얘기하면 ‘미스커뮤니케이션’ 정도 되시겠다. 우리가 예약해놓은 야구장을, 예약 사실을 몰랐던 구장 관계자가 다른 분들께 대여해버렸다.
다음날 아침, 술이 덜 깬 채로, 전지훈련에 버금가는 우리의 원대한 계획에 초를 치신 분들을 구경하러 갔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기관’의 분들과 또 다른 ‘기관’의 분들이 경기를 하고 있었다. “저치들이 먼저 예약한 우리를 밀어낸 거야?” 흥분하려는 순간, 우리 팀-구장-저쪽 팀 사이의 불통에 의한 해프닝임이 밝혀졌다. 즉, 사전에 조정했더라면 아무 잡음이 없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야구를 하면서도 또 배운다. 역시 공정사회를 만들려면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김보협 기자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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