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에 없는 더블헤더를 뛰었다. 이전 경기가 우천 등으로 연기됐을 때 다음날 하루에 두 경기를 몰아서 하는 것이 더블헤더다.
시간이 겹치거나 장소가 달랐으면 한 팀을 골랐을 텐데 하필 그날 경기도 파주 탄현중학교에서 두 경기가 열렸다. 오전 10시 ‘비비언스’ 유니폼을 입고 한 경기 뛰고, 오후 4시 ‘야구하니’로 다시 뛰었다. 중간에 ‘읍내’(실제 행정구역은 다르겠지만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 있어 반가웠다)에 나가 자장면을 먹으면서 ‘내가 드디어 미쳤구나’ 싶었다.
오전 경기 성적이 신통치 않았으면 미련 없이 짐을 쌌을 것이다. 그런데 역대 최고의 경기였고 난 ‘오늘의 플레이어’로 꼽혔다. 내가 쏜 자장면을 먹으면서 3명이 결정한 것이니 동의하지 않는 비비언스 선수들이 있을 수 있다. 상관없다. 야구 인생 9개월 중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으니까.
1회말 비비언스는 상대팀에서 무려 8점을 뽑아냈다. 타순이 한 바퀴 돌았다. 2이닝씩 이어 던진 든든한 마운드 덕분에 리드를 이어갔다. 그런데 6회초 대량 실점을 하면서 역전당했다. 원아웃 만루 위기, 점수를 더 내주면 무너질 상황이었다.
땅! 빗맞았지만 2루수(사회인 야구는 여러 포지션을 소화해야 하지만 난 아직 2루수일 뿐이다) 키를 넘기는(기아 타이거즈의 김선빈 선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동향이기도 하지만 나와 비슷한 아담한 사이즈임에도 잘해서다) 안타성 타구였다. 외야 쪽으로 달리면서 고개를 돌려 공에 집중했다. 손을 쭉 뻗었다. 글러브 끝에 공이 걸쳤다. 난 당연히 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태극권 폼이었다는 평을 들었다. 2루 커버를 들어와 있던 유격수에게 공을 던져 아웃. 첫 더블플레이였다. 결국 비비언스는 7회말 끝내기 안타로 3승을 챙겼다.
사회인 야구에서 경기가 끝나고 두 팀이 인사를 나눌 때 이긴 팀 감독은 대체로 이런 말을 한다. “다친 분들 없지요? 점수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재미있게 운동하러 나오신 거니까. 오늘 ○○팀이 1점 차로 이겼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실제 점수와는 상관없이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는 승자의 겸양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 저런 ‘멘트’를 날려보나 했다. 그런데 짜릿하게 이기는 날도 생겼다.
오후의 야구하니 경기 결과는? 묻지 마시라. 롯데의 ‘홍대갈 트리오’ 같은, 기아의 ‘CK포’ 같은 선수들이 즐비한 팀을 만나 1점 차로 아깝게 졌다. 상대편의 일방적인 독주로 뙤약볕 밑 수비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지러웠다. 방망이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법이 풀린 탓인지 피로 탓인지 나름 주전급인 내 성적도 부진해 교체를 자청했다. 경기 시작 전 룰을 설명하던 심판은 “여기서 홈런 한 개 구경했다”고 했다. 이날 2호 홈런이 나왔다. 물론 맞은 쪽이다. 그 다음주에도 야구하니는 1점 차로 아깝게 또 졌다. 야구하니야, 괜찮아. 우리도 이기는 날이 곧 올 거야. 아자아자, 파이팅!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