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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구장, 무조건 달린다

등록 2010-07-14 15:47 수정 2020-05-03 04:26
꿈의 구장, 무조건 달린다

꿈의 구장, 무조건 달린다

야구를 시작한 지 반년이 넘었다. 처음 글러브를 끼고 캐치볼(서로 공을 주고받기)을 하던 날, 처음 타석에 들어섰을 때 가슴이 콩닥콩닥 뛰던 날을 잊을 수 없다. 그때에 비하면 스스로 놀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7월3일 경기에선 3타석 전회 출루(좌익수 앞 안타와 두 번의 볼 넷)해 세 번 홈을 밟았다. 1루에서 2루로, 2루에서 3루로 마구마구 달렸다. 우리 팀 ‘비비언스’가 큰 점수차로 져서 빛은 바랬지만 팀원들은 최고령 선수의 선전을 격려해줬다. 주전 경쟁에서 밀릴 걱정도 아주 조금 줄었다. 야구 초짜가 많은 한겨레신문사 야구단 ‘야구하니’에서는 ‘좀 하는’ 축에 든다. 새로 시작하는 건 그래서 좋다. 어쨌든 앞으로 나가니까, 땀 흘린 만큼 나아지니까.

처음엔 야구만 할 수 있다면 언제 어디라도 좋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40~50km 달려가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경기도 일산은 가까운 편, 파주·안산은 기본. ‘야구하니’가 처음 유니폼을 입고 경기하던 날엔 여주학생수련원까지 딱 100km를 자동차로 달려갔다. 어떻게 점점 멀어졌다. 그렇게 고생해서 간 것이 아까워 상대팀과 7회 정식 경기를 마친 뒤, 자장면을 배달해서 먹고 우리끼리 팀을 나눠 7회를 더 했다. 무려 14회. 우리끼리 그랬다. 미친 거 아냐?

여러 구장을 전전하다 보니 야구인들의 창발성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6월 초 경기를 했던 ‘노아스타즈’라는 팀은 허허벌판인 안산공과대학 운동장을 순식간에 야구장으로 만들었다. 먼저 축구 골대를 운동장 구석으로 옮겼다. 커다란 그물을 씌워 홈플레이트 완성. 파울과 페어를 구분짓는 1루와 3루 쪽 선은 소방 호스 두께의 두툼한 끈을 깔았다. 홈과 마운드, 각 베이스 사이의 거리는 줄자로 정확하게 쟀다. 이들은 그물과 베이스, 끈을 자동차에 싣고 다녔다. 적당한 공간만 확보되면 어디든지 야구장으로 만들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여주학생수련원을 홈구장으로 쓰는 ‘블루밍 파파스’는 아예 끈으로 연결된 베이스를 사용했다. 일종의 원터치 방식이다. 굳이 줄자로 실측하지 않더라도 베이스들을 팽팽하게 깔면 다이아몬드가 그려진다. 슬라이딩을 하면 베이스가 움직인다는 단점이 있다. 이 아담한 규모의 구장은 아름드리 나무가 구장 쪽으로 굵은 가지를 뻗치고 있어 너무 많은 홈런이 나오지 않게 적당히 막아줬다. 나무 옆에선 닭들이 하루 종일 울어 잊을 수 없는 구장 1순위에 올랐다.

야구 인생 6개월 만에 아주 소박한 소원이 생겼다. ‘인 서울’ 경기다. 토요일 느지막이 일어나 이동 거리가 많지 않은 곳에서 야구 좀 할 수 있었음 했다. 7월17일 처음으로 ‘인 서울’ 경기를 한다. 낮 12시 광나루 경기장에서. 상대팀은 원음방송 야구단 ‘블랙스톤스’다. 승패? 상관없다. 날씨? 상관없다. 손을 창밖으로 내밀어 손목이 꺾일 정도로 비가 쏟아지지만 않으면 무조건 간다. 야구인들에게 난지·목동·구의·신월 야구장과 더불어 ‘꿈의 구장’으로 손꼽히는 정식 야구장인데 누가 내 갈 길을 막으랴.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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