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옛 동호회 친구들을 만나 맥주 한잔을 했다. 친구들은 그사이에 ‘야빠’(야구 마니아)가 되어서 나타났다. 나는 평소 궁금해하던 걸 물어봤다. “요즘 국내 프로야구가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 거지? 메이저리그는 관심 밖이잖아.” 대답은 명쾌했다. “그거야 씹어먹고 뜯어먹을 수 있어서지 말입니다.” 그렇구나. ‘미스 앤 나이스’에 그 해답이 있었구나.
국내 프로야구가 완벽한 중흥기에 접어들어 꾸준히 관중몰이를 하고 있다. 축구 월드컵의 16강 진출과 불규칙한 호우 때문에 주춤하고는 있지만, 역대 두 번째로 올스타전 이전에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나는 프로야구 르네상스의 진정한 주인공은 선수들보다는 ‘야빠’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들은 선수들에게 기발한 별명을 갖다붙이고 온갖 패러디 만화를 실어나르고 마니아만이 이해할 수 있는 유머를 만들어낸다. 한번 빠지면 도저히 그 재미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한다.
케이블 스포츠 채널도 이런 팬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심야 시간의 하이라이트 편성이다. 지난해 KBS N의 이 ‘여신 김석류’ 신드롬을 만들어내더니, 올해는 MBC ESPN의 가 맞불을 놓고 있다. 경기 결과는 인터넷 문자 중계나 트위터로 얼마든지 알 수 있다. 이제는 경기의 세세한 디테일을 어떻게 재해석해서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다.
의 ‘미스 앤 나이스’가 바로 그 증거다. 과거 프로야구 하이라이트의 ‘진기명기’ 같은 코너인데, 기발한 편집과 재치 넘치는 멘트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무거운 덩치로 의외의 날랜 수비를 보여주는 이대호의 경기를 놀리듯이 보여주더니, 같은 3루수인 김동주의 플레이를 비교해 보여준다. “저 날렵해요. 대호보다 빨라요. 맛있는 거 사주세요.” 과거라면 인신공격이라며 불쾌해했을지 몰라도, 요즘의 선수나 팬들은 이렇게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함께 즐기는 것 같다.
박한이가 타석에 들어가 타격을 준비하는 과정을 길게 보여주는데 아는 사람은 멘트가 시작되기도 전에 배꼽을 잡는다. 그리고 기발한 멘트와 자막에 제대로 터지는 웃음. “안녕하세요. 저는 인터벌이 참 길기로 유명한 박한이라고 해요. 이렇게 한번 긋고, 헬멧 냄새도 한번 맡고, 땅에 영역 표시도 하는데….”
‘미스 앤 나이스’에서는 메이저리그급의 명품 수비보다도 초등학생이나 할 만한 실책을 연거푸 하는 유격수가 더 큰 재미가 된다. 시원한 삼진 장면보다 라이너 타구를 투수가 발로 차서 유격수에게 토스한 뒤 잡아내는 아웃카운트 하나가 더 주목받는다. 진정한 야구팬들에게는 전광판에 찍힌 점수나 안타 개수가 아니라 경기의 사소한 디테일 하나하나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놀려먹는 재미만 한 게 어디 있겠나?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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