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밤이 끝나간다. 아름다운 경기에 매혹돼 가끔 새벽잠을 설친 뒤 맞는 무지근한 아침도 이젠 없게 된다. 그러나 마음속에 무지근한 무언가가 남는다. 축구의 스펙터클에 대한 미련 또는 축구에 가려졌던 현실을 선명히 조우하는 낯선 분개 같은 것.
축구에는 규칙이란 게 버젓이 있지만, 급할 땐 반칙도 다반사다. 차두리가 중계방송 해설에서 했던 말처럼, 심판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그렇게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하며 살아가는 게 또한 우리 일상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건 아닌데, 하는 경우가 있다. 반칙이 너무나 결정적인 순간.
우루과이의 수아레스가 가나 월드컵 대표팀을 돌려세울 때의 그 순간 같은 것. 규칙은 본능에 패하고, 어떻게든 그 순간을 넘겨야 한다는 절박함과 의지가 절제할 수 없는 근육의 팽창으로 표현되는 순간이다. 그 새벽, 축구는 문득 아름다움을 잃었다. 그렇게 우리 일상을 규율하는 규칙이 무너지고, 정돈돼 보이던 것들이 추하게 일그러진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이 현실에서도 있다. 국익을 위한 자원 외교에 전념하던 모습의 정권 실세 인물이 온갖 국정 농단과 인사 전횡의 배경으로 자리잡는 순간. 전국 생방송으로 우리 군함이 침몰한 사건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설명했으나 어이없게도 하나둘 그 과학적 설명이 깨져나가는 순간. 그리고 앞뒤 안 맞는 변명으로 그 모멸의 순간을 벗어나려는 본능적인 방어의 몸짓.
쭉 뻗은 반칙의 손끝에 결정적 슛이 막히고 승리는 그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규칙에 의해 페널티킥이 주어졌지만, 이는 다시 한번 운명의 신이 지배하는 순간.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월드컵 4강 진출이란 위업 달성을 눈앞에 둔- 어느해였던가,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커다란 나무에 어여쁘게 핀 붉은 꽃이 이방인의 눈길을 자꾸만 그러잡던 가난의 땅- 가나 수도 아크라의 시민들은 춤을 추며 응원했지만, 기안의 발끝을 떠난 공은 골대에 맞고 말았다. 수아레스는 주먹을 불끈 쥐고 기뻐했다. 축구에는 규칙이란 게 버젓이 있지만, 급할 땐 반칙이 승리를 부른다. 우리 일상에서도 그런 모습은 넉넉히 봐왔다. 궁지에 몰려도 상대방이 헛발질만 하면 정의는 골대 안을 지지한다. 그래서 이 게임도 축구처럼 정돈된 모습과 아름다움을 일순간 잃는 것.
그래도 그 문제적 순간들이 관중석의 환호성 속에 잊혀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 있었으니, 카메라의 눈이다. 아무리 반칙을 숨기려 하고 오심의 그늘에서 덕을 보려 해도 그 순간 카메라는 모든 장면을 잡아냈다. 우리는 두고두고 그 장면들을 되새김질하면서 축구의 정의를 무너뜨린 장본인을 기억할 것이다. 현실은 축구보다 조금 덜 경직됐고 조금 더 역동적이어서, 그런 장면의 반복 재생이 새로운 힘을 얻기도 한다. 승부를 되돌리기도 하고 심판을 갈아치우기도 한다. 그 또한 우리가 일상에서 익히 경험해온 것.
월드컵을 보며 언론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봤다. 축구보다 더 박진감 넘치고 야욕이 판치고 사악한 속임수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우리는 골 장면과 반칙 장면을 담은 슬로 비디오보다 더 선명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 경기가 끝날 때까지 결코 맥주에 취해선 안 된다는 결의 같은 것.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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