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0년 가을부터 에 ‘김학민의 음식 이야기’를 연재했다. 매주 좋은 음식점 한 곳을 골라 독자의 지적 취향에 맞춰 설을 풀어내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재미있다는 독자의 반응 속에서 그럭저럭 2년여 동안 연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나는 영양소, 조리법 등 구태의연한 소개보다는 음식의 유래와 문화인류학적 또는 사회적 성격, 그리고 그에 얽힌 인간들의 이야기를 주로 기술했는데, 음식점 선정만은 위치, 인테리어, 서비스, 심지어 위생조차 무시하고 가장 ‘맛있는’ 집을 기준으로 하려 했다.
앞으로 이 연재에서도 좋은 술집을 찾아 소개하려 한다. 그러면 좋은 술집이란 무엇이뇨? 나는 ‘멋있는’ 집이라 정의한다. 멋있는 술집을 가리기 위해 우선 주인의 넉넉한 인심과 거기에 출몰하는 인간들의 따뜻한 정, 그리고 술집 공동체의 소통에 주목하고 싶다. 물론 단숨에 한 사발 들이켤 수 있는 잘 담근 막걸리가 있는 집, 맛깔스러운 안주가 척척 나오는 집도 당연히 멋있는 술집에서 빼놓을 수 없다. 서울 마포 ‘최대포집’처럼 짧지 않은 역사를 자랑하며 서민들의 애환이 묵은 김장 김치처럼 푹 녹아 있는 집도 멋있는 술집이다.
사연이야 어떻든
중요한 건/ 우리가 이렇게 마주함이다
기뻐서 한 잔/ 슬퍼서 한 잔
어금니 깨물고 살아온 날들/ 어느덧 이마엔 주름이 패고
세월은 아프지만/ 추억은 아름답구나
삶이란 기뻐도 눈물/ 슬퍼도 눈물
눈물 같은 잔을 비운다/ 잔은 비워도 술은 남는다.
(심재방, ‘금산집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소작농의 맏딸인 누이는 간신히 중학교를 마쳤다. 그러고는 열일곱의 나이로 장날 소 팔려가듯 봉제공장의 공순이로 내던져졌다. 누이는 봉제공장의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 가난과 멸시가 일상화된 현실과 맞서며 억척스레 청춘을 보냈다. 그리고 그 절망 속에서 누이는 사랑을 만났다. 결혼 뒤 누이는 자기가 다니는 인천의 한 교회 앞에서 꼬맹이들을 상대로 떡볶이 장사를 시작했다. 생리적 문제는 교회 화장실에서 해결하고, 또 화장실에서 허드레 물을 받아와 설거지를 했다.
어느 날 교회 관리담당 권사가 찾아와, 외부인들이 화장실을 더럽히기 때문에 예배 시간 이외에는 화장실을 폐쇄하겠다고 통고했다. 힘들지만 물은 집에서 매일 한 통씩 가져와 해결했다. 그러나 생리 현상은 좀 멀리 떨어진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밤, 소변을 보러 바삐 공중화장실에 가보니 웬일인지 출입문이 꽉 잠겨 있다. 포장마차로 다시 돌아왔지만 달리 해결책이 없었다. 그날 30대의 젊은 누이는 포장마차 뒤에서 빗물 반 눈물 반의 소변을 보았다.
“물도 마음껏 쓰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있었으면….” 누이의 이 사연이 인터넷에 올라와 네티즌들에게 애잔한 감동을 주었다. 영화배우 문성근, 의 작가 김운경 등 연예계 종사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금산산악회 멤버들과 몇몇 네티즌들이 십시일반하여 물도, 화장실도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누이에게 도움을 주었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저동초등학교 옆 카페 골목에 있는 ‘금산집’(주인 송영애, 031-913-5593)이 바로 그 집이다.
안주 마련에 바쁜 누이에게, 조금은 상투적인 질문을 던졌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그럼요. 사람이 좋아서, 좋은 사람이 많아서, 그리고 사랑과 정을 가슴에 담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지요. 그리고 진급했잖아요. 떡볶이 노점에서 술집 주모로….” 아하, 정이라! 나는 이날 금산집에서 우연히 만난 가톨릭대 김만흠 교수와 일산 풍물패 일행, 시인 심재방·김철향·성백선과 어울리다 보니 전라도 장성에서 올라온 막걸리와 톡 쏘는 홍어로 버무린 정에 취해 서울행 막차까지 놓쳐버렸다.
김학민 음식칼럼니스트 blog.naver.com/hakmi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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