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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머리에도 마음에도

탈모 기사를 명 받은 ‘탈모 기자’가 탈모인들과 전문가 만나며 득모를 꿈꾸다
등록 2008-11-28 16:45 수정 2020-05-03 04:25
<font size="3"><font color="#006699">빠지는 머리, 가만두지 않겠다</font></font><font color="#006699"> 탈모의 역사는 길고도 슬프다. 탈모에 대한 편견은 성경에도 나오고, 줄리어스 시저도 탈모를 무서워했다. 케이 세그레이브가 쓴 에 바탕하면, 성경 열왕기하 2장에 선지자 엘리야가 신의 부름을 받아 살아서 천상으로 올라간 뒤, 그의 후예 엘리사가 베델 땅으로 올라가는데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놀렸다. 조롱의 내용은 “대머리여 올라가라”. ‘열받은’ 엘리사가 저주하니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 아이들에게 복수했다고 한다.
<호스티지>

<호스티지>



탈모증에 시달렸던 줄리어스 시저는 머리카락이 빠지는 만큼 자신의 권력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각종 양모제 바르기, 마사지 받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가장 오래된 대머리 치료법은 기원전 1500년께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Ebers 파피루스〉에 등장한다. 사자와 하마, 악어, 고양이, 뱀의 지방 혼합물을 머리 없는 자리에 바르거나 두더지 가시를 태워 기름에 침전시킨 것과 손톱조각, 꿀, 석고, 황토 등을 혼합한 걸 ‘적절한 주문’을 외우며 역시 머리 빠진 부위에 바르는 방법이다. 로마제국 초기에는 대머리 남성들이 닭똥을 머리에 짓이겨 바르고 다니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닭똥이 치료제로 여겨졌던 것이다.
빠지는 머리에 ‘탈모인’의 자세는 오늘날도 진지하고 절박하다. 검은콩을 챙겨 먹거나 두피관리를 받거나 발모제를 바르거나 탈모약을 먹거나 심지어 자신의 뒷머리를 떼어 빠진 자리에 옮겨심기도 한다.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탈모인들의 얘기를 기자가 뛰어든 세상 형식으로 담았다.</font>

탈모 관련 기사를 ‘명’ 받았다. 왜냐고? 편집장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았다. 기자들 가운데 머리가 가장 많이 빠졌다는 억울한 이유를. 사무실을 둘러보니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콕 찍혔으니 써야만 했다. 아니다. 솔직히 에라, 잘됐다 싶었다. 이번 기회에 현실을 직시하자. 벌써 ‘너 머리 빠진다’ 소리를 들은 지 예닐곱 해가 지났건만, 날마다 거울을 보지만, 도통 나는 자신을 모르고 있었다.

셀카 찍다가 훤한 속알머리에 놀라

얼마 전부터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놀면서 셀프카메라를 찍어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짱 각도 사진을 찍다가 갑자기 정수리가 궁금했다. 내친김에 정수리에 대고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본 사진은… 정말로 훤했다. 솔직히 놀랐다. 남들은 보지만 나는 보지 못했던, 애써 외면했던 훤한 속알머리가 프레임에 가득했다. 편집장의 주문에도 두어 주를 굴하지 않다가 마지못한 척하면서 기사를 쓰겠다고 한 이유다. 일종의 자기 치유, 지금껏 나는 탈모의 탈자만 나와도 짐짓 눈길을 돌렸다.

흔히 ‘속알머리’로 불리는 정수리 탈모는 본인이 상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다. ○자형 탈모가 진행 중인 사람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흔히 ‘속알머리’로 불리는 정수리 탈모는 본인이 상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다. ○자형 탈모가 진행 중인 사람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나의 취재원이자 나의 동지들을 찾아나섰다. 이름도 적나라한 ‘대다모’(daedamo.com·대머리는 다 모여라)에 접속했다. 탈모의 원인부터 탈모 유형, 탈모 관리까지 다양한 정보가 있었다. 아, 진작에 현실을 직시하고 정보를 찾았어도 이렇게 앞머리, 윗머리 훤한 오늘날은 막을 수 있었을 터인데, 땅을 치지 않아도 후회는 넘쳤다. 대다모 메뉴를 클릭하다 결정적 한 문장을 보아버렸다. ‘모발 이식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짧은 글귀였다. 그리고 ‘탈모 치료 전후 사진’ ‘모발 이식’ 메뉴에 올라온 사진들을 집중 클릭했다. 어머나, 세상에! 머나먼 캐나다·인도까지 모발 이식 원정 수술을 떠나는 ‘탈모인’들이 있었다. 작금의 고단한 현실이 모두 탈모에서 비롯됐다는 듯이, 갑자기 예닐곱 해의 무신경은 급기야 모발 이식 클리닉 방문 고민으로 돌변해버렸다. 역시 극단과 극단은 통하는 법이다.

탈모 기사로 고민을 하고 있자니, 한 여자 후배가 다가와 “취재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는데…”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의 고백 겸 제보는, 예전 자신의 남자친구 얘기였다. 1년을 사귀었던 남자가 어느 날 불콰하게 취해서 할 말이 있다며 집 앞으로 찾아왔다. 그는 “이것 때문에 헤어져도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고백인즉 사실 앞머리를 심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그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고 후배는 전했다. 언제나 짧은 머리에 젤을 발라 바짝 세우고 다녔던 이유도 알았다. 모발 이식 전 항상 탈모를 가리려 앞머리를 내리고 다녔던 그의 소원인 헤어스타일이었던 것이다. 왜 그토록 빳빳하게 세우고 다녔는지 그제야 이해가 됐고, 그의 등을 토닥여 보냈다. 나중에 그가 모발 이식을 하고 성격도 바뀌어 친구들이 놀랐다는 얘기도 들었다. 후배의 말을 들으니, 망설임이 사라졌다. 곧 회사 문을 박차고 나섰다.

서울 중구의 한 모발 클리닉 문을 두드렸다. 자신도 탈모인 장년의 의사가 무려 30여 분에 걸쳐 친절한 상담을 해주었다. 사실 머리카락을 몇 모나 심어야 하는지, 가격이 얼마인지가 궁금했지만, 그것을 듣기까지 끈기를 가지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먼저 의사는 나에게 탈모의 7단계 중에 4기라는 진단을 내렸다. 앞이마 M자형 탈모와 정수리 O자형 탈모가 동시에 진행되는 전형적인 남성 탈모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아니, 가장 약한 1단계도, 최소한 3단계도 아니고 4단계라니 살짝 충격이었다.

4천 모에 500만원 “내년 봄에나…”

이것저것 설명한 의사는 두피 관리를 해도 앞이마는 복원이 어렵다며 모발 이식 수술을 권했다. 수술은 4시간. 뒷머리의 모근을 일부 절개해 모근을 한올한올, 아니 한근한근 분리한 뒤 앞이마, 정수리에 식모기로 옮겨심는 과정도 설명했다. 뒷머리에서 모종을 떠서 앞머리, 정수리로 모심듯이 옮겨심는 과정을 상상하면 된다. 의사는 “이걸로 심는다”며 식모기를 보여주었는데, 그것의 뾰족한 바늘이 머리를 콕콕 찌른다는 생각에 잠시 움찔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알고 있었던 사실이니 재방송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어진 결정적 심판의 한마디, 앞머리와 정수리 양쪽에 심으면 4천 모에 500만원, 앞머리만 심으면 2500모에 300만원(나중에 인터넷 검색 등을 해보니 병원마다, 시술 방법에 따라 가격이 달랐다)이라고 했다. 옮겨심은 상처에 딱지가 앉는 데 3~4일은 걸린단다. 그리고 옮겨심은 머리카락이 일단 빠졌다가 다시 3cm가량 자라는 데 6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적어도 일주일 휴가는 내야 가능한 시술이다. 언제 할 거냐는 의사의 말에, 내년 봄에나… 하면서 얼버무리고 병원을 나섰다. 의사의 마지막 한마디, “수술 자국을 가리려면 앞머리를 길러두시고요. 탈모약은 오늘부터라도 당장 먹어야 합니다”.

‘약발’ 받은 사람이 주변에 있었다. 에 함께 근무했던 김아무개 선배 기자. 그가 탈모약을 먹는다는 소식에 바로 찾아갔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지나치며 보아온 선배인데, 새삼 그의 머리를 보니, 아니! 풍성했다. 비록 앞머리와 정수리의 빈틈을 숨기지는 못하나, 서너 해 전에 로 왔을 당시에 보았던 그의 머리보다 지금이 오히려 숱이 많았다. 그로 말하자면, 중·고교 시절부터 머리숱이 없는 아버지를 보며 탈모의 공포에 떨었고, 형제들끼리 서로 쟤 말고 나만은 유전의 예외가 되기를 빌었다는 사람이 아닌가. 1993년 이후로 이미 탈모가 시작돼 머리를 길러본 적이 없다는, 파마가 유행일 때 파마를 못하고 탈색이 유행일 때 탈색을 못해본 것이 청춘의 한이라는, 유구한 탈모의 역사를 가진 선배였다. 그런데 그의 머리 상태가 오히려 나보다 나아 보였다. 예전엔 정말로 몰랐다. 그도 나처럼, 머리 빠지는 것을 팔자라고 생각하고 오랫동안 수수방관해왔단다. 아주 예전에 누군가 그에게 탈모 방지약 한 통을 주었지만 그것도 먹지 않았단다. 그러던 어느 주말에 지인이 주었던 탈모약 효능에 적힌 문구를 보고 마음을 바꿨단다. 마흔이 넘으면 약효가 떨어지거나 없어진다는 문구가 이제 마흔줄을 바라보는 그에게 최후의 시간을 통보하고 있었다. 마침 ‘먹어라, 자신감이 달라진다’고 부추기는 친구도 있었다. 그리하여 두어 해, 탈모약을 먹으면서 그의 머리는 최소한 줄어들진 않았다. 친구 말대로 사람을 만나는 데 거리낌도 없어졌다고 했다. 오호통재라. 선배는 왜 혼자서 약발을 받았나요!

일부는 모발 이식을 결심하고(왼쪽), 대다수는 자신에 맞는 가발을 찾는다. 탈모 고민의 해결법도 점점 발전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한겨레21> 류우종 기자(왼쪽부터)

일부는 모발 이식을 결심하고(왼쪽), 대다수는 자신에 맞는 가발을 찾는다. 탈모 고민의 해결법도 점점 발전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한겨레21> 류우종 기자(왼쪽부터)

성능 좋은 가발, 취업을 도왔나니

약발이 무서운 사람도 있었다. 서른두 살의 백성준(가명)씨. 그는 서른을 넘기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앞머리가 빠지더니 정수리에도 어느새 탈모가 시작됐다. 탈모와 관련된 인터넷 커뮤니티를 뒤지며 정보를 수집했다. 약을 먹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직 미혼인 그는 탈모약을 먹으면 생긴다는 부작용이 두려웠다. 부작용은 성기능 장애 혹은 성욕 감퇴. 극히 일부에게 생기지만 두려웠다. 그는 미혼이다. 그래서 그는 “두피에 바르는 발모제인 ‘스칼프메드’를 6개월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데, 더 이상 머리가 빠지지 않고 가끔은 다시 나는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영업직인 그는 밤마다 술자리가 적잖지만, 발모제를 바르면서 되도록 술도 절제하고 아침저녁 하루에 두 번씩 머리도 빠뜨리지 않고 감는다. 그처럼 젊은 나이에 탈모로 고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환경이 오염되고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탈모로 고민하는 연령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그의 아버지가 40대부터 탈모를 겪었다면, 그는 30대부터 탈모에 시달리고 있다.

선택지엔 가발이라는 방법도 있다. 부산에 사는 김정훈(37·가명)씨는 10년째 가발을 쓰고 있다. 그동안 가발이 많이 좋아지고, 그가 관리를 철저히 하는 덕분에 사람들은 그가 ‘커밍아웃’하지 않으면 가발을 썼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그는 굳이 가발을 썼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덕분에 가끔은 탈모로 고민하는 직장 동료가 상담을 해올 정도다. 그의 고민은 일찍이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됐다. 특히 군대에서 머리가 심하게 빠졌다. 그는 “복학해서 학교 앞 오뎅집에 가니 아주머니가 ‘오랜만이네’ 하시더니 머리를 보면서 ‘그동안 병원에 있어서 안 왔구나’ 하시더라”고 전했다. 대학 시절 한때 그는 머리를 2mm 길이로 밀고 다녔다. 생김새는 당연히 한국인 같지만, 머리를 밀고 다니니 그를 한국인으로 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가끔씩 카페 같은 곳에서 아가씨들이 내가 친구를 기다리다 만나서 얘기를 시작하면 ‘한국 사람이네’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외국에선 탈모가 시작되면 아예 밀어버리고 대머리로 다니는 사람이 많지만, 한국에서 탈모인이 삭발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가발은 그의 취업을 도왔다. 김씨는 1998년 2월 대학을 졸업했지만, 1년 반이 넘도록 좀처럼 취업이 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탈모 탓이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주변의 권유를 받아들여 가발을 쓰고 면접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달 만에 취업했다. 그는 “나중에 생각하니 예전에 면접관들이 자꾸 탈모에 대해 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돌이켰다. 그 뒤로 그는 계속 가발을 써왔다. 하지만 이제는 마흔이 넘으면 가발을 벗을 생각이다. 그 나이가 되면 탈모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가발을 쓰려면 귀찮은 점도 적잖다. 아무리 가발의 성능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아침마다 10분씩 가발을 쓰는 데 공을 들여야 하고, 주말에 가발을 씻고 관리하는 시간도 적잖다. 여전히 가발을 쓰고 운동하기도, 공중목욕탕에 가기도 어렵다.


최후의 외모 식민지, 어쨌든 득모하길

머리를 미느냐, 머리를 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탈모 취재를 하면서 머리에 떠오른 고민이다. 일단 머리를 심는 문제는 미루어두었다. 아무래도 최소한 6개월 이상 약물요법과 두피관리를 해보고 난 뒤에 최후의 수단으로 모발 이식을 해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일단은 아침마다 머리카락에 좋다는 검은콩 분말을 우유에 타서 들이켜고, 빨리 약을 구해서 먹고, 두피를 관리할 생각이다. 그러고 나서… 어느 날 갑자기 모발 클리닉을 찾아서 이식을 감행할지 모른다. 아니면… 당장 내일 머리를 밀어 버릴지도 모른다. 탈모 증세를 겪는 후배의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무슨 문제냐’는 말처럼, 탈모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니. 탈모는 최후의 외모 식민지 가운데 하나다. 성경에도 머리가 빠진 선지자를 아이들이 놀리는 얘기가 나올 만큼 편견의 뿌리도 깊다. 과연 대머리가 아름답다고 말할 만한 세상은 올까. 지금은 아니니, ‘가장 좋은 치료제는 무신경’이라는 말로 위로를 삼자. 그렇게 끝까지 무심하거나 아니면 빨리 대응하거나. 어쨌든 “득모하세요!”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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