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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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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등록 2004-09-03 00:00 수정 2020-05-03 04:23

▣ 배경록/ 한겨레21 편집장 peace@hani.co.kr

늦여름 무더위만큼이나 뜨거웠던 아테네 올림픽 열기도 폐막과 함께 식어가고, 때마침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가을의 문턱에 성큼 들어선 느낌이다. 무엇이든지 하기 좋은 계절이다. 올가을에는 하고 싶은 무엇인가에, 아니면 바쁜 일상 때문에 밀어두었던 무엇인가에 한번 푹 빠져보기를 독자 여러분께 권하고 싶었다. 은 그 무엇인가에 대한 소재를 제공해보려 했으나 그 몫은 독자 여러분께 맡기기로 했다. 다만 독서라는 다소 진부한(?) 소재로 7명의 필자가 권하는 책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의 열정을 자극해보기로 했다. 가을도 결코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 만드시기를….

새 학기가 시작되고 입시철도 얼마 남지 않다 보니, 8월26일 발표된 2008학년도 대학입시 개선안에 대해 말들이 많다. 잊을 만하면 여지없이 발표돼 학생과 학부모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애물단지가 대입 개선안이다. 너무 자주 바뀌다 보니 자녀를 여럿 두거나 터울이 긴 학부모들은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이번 개선안의 요체는 사교육의 부작용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사교육의 진원지를 서울 강남과 특목고로 겨냥하고 칼을 댄 것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의미 있는 조처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수능을 무력화하면서 내신에 의한 선발 방식을 택한 것도 새로운 시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내신 강화에 따라 사교육 시장이 내신 중심으로 재편되고 대학들이 내신을 비공식적으로 반영할 가능성도 점쳐져 이번 개선안에도 벌써부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특히 대학들이 당장 내년 입시부터 본고사나 다름없는 심층면접과 논술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어 많은 학부모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서울 강남과 특목고라는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워 학부모의 허리와 학생들의 어깨만 휘청거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너무 자주 바뀌는 것도 문제지만 개선안에 늘 부작용이 뒤따르다 보니 그 취지가 무색해진다. 이번 개선안 성패의 관건은 내신의 변별력과 신뢰 여부로 모아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풀리기’라는 비아냥을 듣는 학교 시험과 별개로, 전국 동시 모의고사 같은 공인된 시험을 치러 함께 내신에 반영하거나 학생부를 좀더 내실 있게 작성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그래야 대학들이 본고사 수준의 심층면접을 치르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고, 사교육 잠재우기라는 애초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대입제도가 너무 자주 바뀌어 혼란을 주는 것과는 반대로 우리나라 헌법은 1987년 이후 17년 동안 바뀌지 않아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동안 정치적으로는 정권만 4차례 바뀌었고 ‘3김’ 시대가 끝이 났으며, 사회문화적으로는 시민운동과 인터넷이 꽃을 피웠다. 최근에는 남북 화해협력 시대가 열리는가 했더니 주변국과의 역사왜곡 논쟁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나라 안팎이 이처럼 급류를 타고 있는 지금, 우리의 헌법은 늘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고 우리 삶의 변화를 거부하는 헌법이라면 이제 개헌 논의를 시작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치가 아닌 법치 사회를 열어가려면 제도는 예측을 가능케 해주어야 하고 헌법은 예측을 반영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계절을 음미하듯 마음의 여유를 갖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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