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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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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인사팀 외장 하드서 발견된 고용부 문건 ‘빨간펜’

삼성의 조력자들 ③ 고용노동부
2013년 불법파견 수시감독 종료 직전 결론을 바꾸기 위한 ‘획기적인’ 밀월 나눠
등록 2020-03-03 11:27 수정 2020-09-16 16:01

표지이야기


판도라 상자가 열리다

2014년 6월11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의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2014년 6월11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의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8월 말까지 (고용노동부 수시근로감독을) 연장한다고 합니다. 감독 기간 연장은 확정일자가 아닌 잠정적으로 8월 말까지 하고 (중략) 앞으로도 팩트 위주로 조사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된 것 같습니다.”

2013년 7월23일 최아무개 삼성전자서비스 전무가 자신의 상사인 박아무개 대표이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이날은 정상적으로면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여부에 대한 고용부 수시감독 기간이 종료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수시감독이 끝나기도 전 고용부 고위 공무원들이 수시감독 검토회의 개최 필요성 등을 주장하며 전례 없는 실장 주재 회의가 소집됐다. 삼성 쪽에 실시간 유출된 이 회의 결과 실제 감독 기간은 8월 말까지 연장됐고, 9월16일 ‘불법파견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감독 결과가 발표됐다. 고용부 발표 뒤 공세적인 대응 전략에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고사화”됐다.

이는 <한겨레21>이 입수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재판기록 2만여 쪽과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활동결과보고서, 정아무개 고용부 차관과 권아무개 서울지방노동청장(서울청장)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사건 판결문, 공소장 변경신청서 등을 종합해 재구성한 내용이다. 이들 문건에 고용부가 삼성전자서비스에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면죄부’를 주면서 실제 협력업체 수리기사 직접고용이 얼마나 늦춰졌는지가 드러난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재판부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고용부 고위 공무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번 기사는 무죄판결을 받은 고용부 고위 공무원들의 전례 없던 정책적 판단이 삼성 노조 와해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다뤘다.

‘예상’ 문제 유형 중 대표 사례

고용부의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인정 여부는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원칙’을 가르는 분수령이었다. 고용부의 불법파견 인정시 발생할 직접고용 의무 때문이었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할 경우 노조원들까지 고용하게 돼, 삼성그룹이 유지해온 ‘무노조 경영원칙’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문제가 다른 협력업체로 퍼지지 않으려면 삼성전자서비스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고용부 수시감독이 결론 나야 했다.

이미 2013년 4월 부산 지역 협력업체 수리기사 두 사람이 임금체불로 사장과 갈등을 빚던 중 업체 폐업으로 불법파견 의혹이 공개적으로 불거진 무렵이었다. 6월17일 은수미 민주당 의원이 고용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한 다음날, 삼성전자서비스 본사에는 종합상황실이 설치됐다. 전사적인 비상대응체계가 가동됐다. 삼성전자 본사는 노무사 출신의 인사·법무 인력을 삼성전자서비스에 지원했다. 인사팀은 고용부 본부의 주요 국장과 지방청장 등을 접촉했고, 대외 네트워크를 가동해 고용부의 내부 동향 등 첩보를 입수했다.

협력업체 직원의 직접고용 요구는 삼성전자서비스가 2011년 복수노조 도입에 대비해 예상 문제점을 분석한 유형 중 대표적인 사례였다. 삼성전자서비스의 위기관리 시나리오는 “경찰·고용부, 본사/그룹(노사 및 홍보)과 연계 대응” “사후관리로 고용부·외부 노무사·변호사 자문을 받아 위장도급 요소를 해소하거나 최소화”였다. 특히 위기대응 전략의 하나로, 2012년 삼성전자는 인사 담당 임원들에게 “반드시” 고용부 등 외부 협조 체계를 구축해 유지하라고 당부했다.

2010∼2012년 고용부 공무원을 관리하며 정보를 얻던 황아무개 삼성전자 상무는 전사적 총력 방침에 따라 2013년 6월 고용부 본부의 수시감독 주무부서장에게 삼성 쪽 입장을 정리한 전자우편을 보냈다. 고용부 고위 공무원 출신 황 상무가 후배 격인 주무부서장에게 보낸 내용은 이랬다. “(전략) 짝퉁 을이라고 비판받는 협력업체는 (중략) 파견과는 무관한 업무라는 생각이 드는데 첨부 자료를 참고해줬으면 합니다. (중략) 사건 마무리되면 소주 한잔 합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세미나실에서 노동법학계 교수들로 구성된 간담회를 연 황 상무는 약 보름 뒤 ‘삼성전자서비스 위탁관계 설명자료’란 제목의 두 번째 전자우편을 보냈다. 마지막 인사말은 같았다. “사건 마무리되면 편하게 한잔 합시다.”

별다른 성과가 없자 황 상무는 고용부 본부 수시감독 주무부서장의 직속 상관을 식당에서 만나기도 했다. 그는 수시감독 주무부서장의 상관에게 “근로감독관들이 불법파견의 징표만을 찾는다”는 불만을 나타내며 감독 방향을 삼성 쪽에 유리하게 바꿔보려고 했다. 하지만 황 상무의 시도에도 수시감독 방향이나 근로감독관의 감독 의지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수시감독총괄팀은 “원청에서 최초 작업 지시부터 최종 평가에 이르기까지 하청 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지휘, 명령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음”이라며 잠정적으로 불법파견 결론을 내린 보고서를 작성했다.

2014년 5월20일 경상남도 밀양시 공설화장시설에서 염호석씨 주검을 놓고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과 경찰이 물리적 충돌을 빚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페이스북 갈무리

2014년 5월20일 경상남도 밀양시 공설화장시설에서 염호석씨 주검을 놓고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과 경찰이 물리적 충돌을 빚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페이스북 갈무리

유례없는, 전례 없는 검토회의

정상적으로 7월23일 수시감독이 종료된다면 불법파견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다. 삼성전자 역시 “고용부가 당시 이슈를 불법파견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감지”했다. 불법파견으로 결과를 발표하려던 “고용부 측 움직임을 차단”해야 했다. 삼성전자는 청와대·총리실·기획재정부 등 경제 부처, 언론 등을 이용한 전방위적인 로비로 고용부를 압박하는 전략을 쓰기 시작했다. 특히 청와대와 행정부 등을 상대로 “불법파견 결정시 국내 서비스 산업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논리로 고용부를 “우회 압박”했다.

전방위적인 로비 등으로 압박을 받은 정 고용부 차관은 “이렇게 중요한 근로감독은 실장이 적극적으로 챙겨야 한다. 실장 주재로 지방청장 회의를 소집해 결과를 검토하고 향후 조처 방향을 정리하라”며 고용부 본부의 노동정책실장에게 수시감독 검토회의 개최를 지시했다. 전례 없는 조처였다. 수시감독을 총괄하는 지방청장이 회의 개최를 건의하거나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고용부 본부 주관으로 사업장 근로감독의 후속 조처를 논하는 회의가 열렸다. 당시 고용부 본부에 수시감독 결과가 정식 보고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고용부 차관이나 선임 지방청장이라도 일선 근로감독관이 사법경찰관으로서 수행하는 수사 영역에 개입해서는 안 됐다. 권아무개 서울청장은 황 삼성전자 상무와 행정고시 동기였고, 고용부 재직 시절 같은 부(과)에서도 일한 막역한 사이였다. 정기적으로 탁구를 치던 두 사람은 수시감독 기간에도 만났다. 권 서울청장은 수시감독을 직접 주관한 지방청장 등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다. “지난달 근로 감독한 종합유선방송 씨엔엠 수리 서비스 자료입니다. 삼성전자서비스와 완전히 똑같은 형태입니다. 물론 불법파견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중략) 파편적 논리로 불법파견 단정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권 서울청장은 상급자인 노동정책실장에게 전화해 “삼성전자서비스를 불법파견으로 볼 경우 유사 업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본부에서 회의를 개최해 조정해줄 필요성이 있다”며 회의 개최까지 건의했다. “바람이 빵빵하게 들어가 (불법파견 요소를) 잡아나가”던 수사는 바람이 빠졌다. “고위 공무원들의 입김”이 내려오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권역별로 불법파견 여부에 대한 결론 기재를 보류한 수사감독결과보고서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직접적인 지휘·명령의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내용을 뺀 채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결론만 적힌 수시감독결과보고서가 검토회의에 올라갔다.

7월23일 공식적인 참석 대상자도 아닌 권 서울청장은 검토회의에 참가해 “감독관별로 감독에 대한 접근 방식이 상이할 수는 있으나 결과를 예단하고 감독에 임하는 것은 여러 오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엄정한 사실 조사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때까지 진행한 근로감독을 ‘예단’으로 치부했다. “일선 근로감독관들이 발언하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이들 근로감독관들은 불법파견으로 결론 내고 후속 조처를 논의하는 자리로 알고 참석했다. 전례 없는 회의의 결론은 감독 기간 연장 등이 불가피하다였다.

고용부, 삼성에 ‘획기적인’ 대국민 개선안 요구

고용부는 삼성과 함께 출구전략까지 모색하는 전례 없는 “행정지도”를 계속했다.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결과를 발표하면 야당(박근혜 정부 당시)과 노동계의 반발이 뻔했다. 고용부는 수시감독 기간이 연장된 지 불과 약 2주밖에 안 된 시점에 불법파견에 대한 판단이 아닌, 삼성에 획기적인 대국민 개선안을 요구해 “원만한 수습”을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고용부는 회사 쪽과 은밀하게 협상하며 스스로 근로감독 원칙을 무력화해갔다.

“고용부와 사전 공감대”를 이룬 삼성그룹은 이후 두 차례 이상 개선안을 주고받았다. 이미 8월 말∼9월 초 예정된 불법파견 점검 결과 발표시 “일부 파견적 요소가 있으나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적법하다”고 발표할 경우를 대비해 출구전략을 검토하던 무렵이었다. “고용부가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게 개선 방안을 사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삼성전자는 실제 고용부가 적법도급을 발표한 9월16일보다 약 보름 전 “수시감독이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9월4일 자 문건에는 발표 시점까지 못박았다.

삼성전자 인사팀의 외장 하드에선 권역별 감독 결과 보고서 문건이 나오기도 했다.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고용부 내부 문건이었다. 삼성전자는 9월9일 83쪽에 이르는 감독 결과 보고서에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밑줄을 긋고 내용을 편집했다. 삼성전자서비스에 유리한 부분은 파란색, 불리한 부분은 빨간색으로 구분했다. 9월16일 수시감독 결과를 발표하기도 전 고용부 내부 문건이 유출된 것이다. 검찰에서 관련자들 통화 내용을 분석하고 여러 차례 대질신문 등을 했지만 유출자가 누군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9월16일 고용부의 적법도급 발표날, 해외 출장 중이던 이아무개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에게 보고한 ‘CFO 부재중 업무보고’ 문건에는 “고용부가 전자서비스의 불법파견 논란에 대해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고 발표 방식은 대변인이 간략히 브리핑하는 수준’’이라고 적혀 있었다. 삼성전자는 발표문도 이미 써두었다. 내용은 이랬다. “고용부에서 지적한 사항을 겸허히 수용하고 (중략) 불필요한 오해나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삼성그룹의 태세는 고용부 발표 전후로 바뀌었다. 수시감독 기간에 숨죽이던 삼성그룹은 면죄부가 주어지자 태도를 공세적으로 돌렸다. 출구전략은 ‘노조 고사화’였다. 수시감독 결과를 미리 알고 있던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는 발표 직후 주동 인력에 불이익한 처분을 내리기 위한 표적 감사를 계획했다. 부정·부실 혐의자 199명의 기초 데이터를 확보했다. 실행은 고용부 발표 시점을 고려해 9월25일 이후 진행하기로 했다. 주동 인력 54명은 “엄중 조치 계획”이었다. 고용부 적법도급 발표 뒤 2014년 1월 600여 명이 탈퇴하며 노조는 반년여 만에 초창기 수준으로 축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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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고사화’ 그리고 잃어버린 6년

고용부 적법도급 발표 뒤 1년여 만인 2014년 10월, 은수미 민주당 의원은 “고용부의 부실 조사를 확인해야 한다”며 176건에 이르는 내부 자료를 공개했다. 협력업체 수리기사 1300여 명이 원청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 악영향을 끼칠 문건이 12개나 있었다. 하지만 2017년 1월 재판부는 협력업체 수리기사들의 근로자지위확인청구를 기각했다. 은 의원이 “부실 조사”라고 주장한 고용부 발표는 이 판결문에 수리기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근거로 인용됐다. 고용부가 불법파견을 인정해 시정 조처했다면 근로자 인정 판결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었지만 사실상 파견노동자였던 수리기사가 직접 고용될 수 있던 두 번째 골든타임마저 놓쳤다.

삼성전자서비스는 2018년 4월에야 협력업체 노동자 8천여 명을 직접 고용했다. 검찰의 노조 와해 사건 수사가 본격화되던 때였다. 이후 2019년 12월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첫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고용부는 수시감독 결과를 발표하면서 파견법 위반 소지가 있는 사항을 지적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그 전후로 일부 운영 형태를 변경했다. 그러나 이는 외견상 근로자파견 관계로 보이는 요소를 없애고자 한 조처일 뿐 삼성전자서비스의 지휘, 명령이 전제된 관계 등이 변경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 차관과 권 서울청장 항소심에도 영향을 줄 판결이었다. 1심에서 두 사람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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