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토론을 봐도 후보를 알 수 없다

정책·소통능력 검증 취약한 현행 선거토론 방식과 대안
등록 2017-03-29 18:04 수정 2020-05-03 07:17

“결국 답을 또 못 들었습니다.” 지난 3월14일 더불어민주당 경선 토론에서 이재명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복지 확대 관련 질의를 하다 제한시간이 종료되자 아쉬움을 피력했다. 이재명 후보가 연속 던진 두 가지 질문에 문재인 후보는 시간상 하나밖에 답하지 못했다.
민주당 경선 TV토론은 매회 90여 분 동안 진행됐다. 3월14~21일 네 차례의 TV토론은 대개 비슷한 형식을 띠고 있다. 지칭 용어는 약간씩 다르지만 ‘모두발언→주제토론→주도권토론→마무리발언’ 순서다. 네 후보가 동등하게 발언 기회와 발언 시간을 갖는 구조이니, 한 후보에게 허락된 발언 시간은 약 20분이다. 그 안에 각 후보들은 주어진 주제에 대한 견해를 말하고, 상대에게 질문하고, 자신에 대한 공격을 방어해야 하며, 자신만의 강점을 피력해야 한다.
질문을 했는데 답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다. 다른 후보에게 질문할 시간을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는 것도 적지 않다. 사회자는 ‘공정성’을 확보해야 하므로 발언 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토론의 맥이 끊기기도 한다. 3월21일 MBC 에서는 발언 가능 시간 4초를 남기고 다음 순서로 넘어간 사회자와 이에 문제를 제기한 이재명 후보 사이에 작은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선거토론은 시뮬레이션
시간 부족은 토론 내용의 부실로도 이어진다. 후보자들은 정해진 시간 내에 자기 의견을 효율적으로 전달해야 하기에 사전 준비해 연습한 내용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네 차례 TV토론에서 다룬 쟁점과 그에 대해 오갔던 공방의 내용과 깊이는 대체로 유사하다.
선거토론의 목적은 후보자 자질 검증과 정책 비교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당선자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시점은 미래이다. 따라서 우리는 후보의 과거 행적과 삶, 현재의 말과 행동, 내놓은 정책을 살펴봄으로써 미래 그 후보의 ‘대통령직’ 수행 능력을 유추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명운이 달린 일이므로 그 의사결정 과정은 철저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한다. 선거토론은 그 논리적 판단을 위한 근거 자료를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선거토론 방식은 후보자의 직무수행 능력 판단의 핵심이 되는 정책 및 소통능력 검증에 취약하다.
국가 정책은 그 추진에서 막대한 인적·물적 투자가 요구되기 때문에 철저한 검증을 통해 수립, 시행돼야 한다. 따라서 정책을 추진하려는 사람은 그 정책이 우리 사회의 어떠한 ‘심각하고 지속적인’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제시됐는지 구성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정당화해야 할 의무를 진다.
또 정책이 심각하고 지속적인 문제를 적확히 해결할 수 있는지, 우리가 가진 인적·물적 토대에서 실현 가능한 방안인지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정책을 추진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장애 요인을 예상하고 그것의 대비책도 세워둬야 한다. 이러한 대규모 투자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3월14일 토론에선 후보들에게 핵심 키워드를 설정하도록 했다. 문재인 후보는 ‘일자리’, 안희정 후보는 ‘소통과 통합’, 최성 후보는 ‘안보’, 이재명 후보는 ‘기본소득제도’를 선택했다. 각 후보의 핵심 정책이다. 그러나 이날 토론에서도, 이후 진행된 세 차례 토론에서도 이 핵심 정책들에 대한 논의는 정책 검증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논리 지형도를 완성할 만큼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정복합도시건설’ 정책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대국민 메시지 논리 지형 분석의 일부이다. 두 정책 모두 현재까지 사회·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면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제시된 부분은 두 전 대통령의 임기 말, 정책 추진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수행된 대통령 연설에 대한 분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책 추진의 정당성과 해결 방안을 논리 구조를 갖춰 전달하려 한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책 추진으로 얻는 이익을 중심으로 설득하려 했다. 국민을 대하고 소통하는 방식에서 양쪽의 차이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같은 정책 분석을 거쳐야 국민은 해당 정책과 이를 추진하려는 후보에 대한 합리적 판단 근거를 갖게 된다. 선거토론에서 정책 검증은 이 논리 구조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도록 진행돼야 한다. 각 요소에 대해 서로 질문하고 자신의 문제의식과 추진 계획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토론은 청중을 설득하는 게임

선거토론에서 후보들이 주고받는 공격과 방어의 최종 목적지는 시청자인 유권자이다. 이 관점에서 선거토론의 검증 기능을 강화하고 흥미를 높이기 위해 기존 토론 형식을 다변화해야 한다. 각 후보자에게 충분한 발언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 문제인 만큼, 정견 발표 같은 개인 발언을 과감히 줄이고 상호 토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양자 토론을 기획해 심층 검증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한 회의 토론에서 다루는 주제 수도 줄일 필요가 있다. 토론회별로 중점적으로 다룰 주제와 검증 분야를 배분하는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1차 토론에선 정치 현안, 2차 토론에선 외교와 안보, 3차 토론에선 경제와 복지 정책같이 회차별로 대주제를 구분해 다루는 것이다. 이러면 논의 반복도 피하고 더 심층적인 논의와 정책 검증이 가능해진다.

후보자 간 의제와 유권자인 시청자가 갖는 의제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시청자 참여 기회도 열어놓는 것이 필요하다. 시민포럼 방식을 도입해 유권자인 청중과 함께 호흡하며 즉흥 질의응답을 진행하는 방법이다. 이는 후보자의 위기 상황 대처 능력을 유추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토론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토론을 시청하며 실시간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교류하는 공론장을 마련하면 참여와 흥미를 높일 수 있다.

이 세 방식을 조합해 토론회별로 토론 형식과 참가자에 변화를 줄 수 있다. 미국 대선 토론의 경우 1차 토론은 양자 토론, 2차 토론은 타운홀 방식의 시민포럼형 토론, 3차 토론은 다시 양자 토론으로 실행됐다. 뉴스에선 토론 중 트위터를 통해 수집된 시청자 의견을 실시간 자막으로 전달했다. 정당 대표 후보자 간 토론이라면 다양한 이해관계로 방식 합의가 어렵겠지만, 정당 내 경선 토론에서는 유연하게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그것은 경직된 우리 토론 문화를 바꾸는 시작이 될 것이다.
김은정 휴먼커뮤니케이션학 박사·경희대 소통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