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문학상 본심을 심사하고 나서 32편 생생한 문학적 보고서를 읽었다는 보람과 피로가 밀려왔다. 일부를 보았던 예심작의 느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본심작 32편, 예심작 300여 편이 선택한 인물, 소재, 주제, 분위기, 결론은 현장성에 바탕해 ‘어쨌든 결국’ 지금 여기의 사회를 말하고 있었다. 도드라진 주제는 청년 실업, 노인 문제, 질병과 우울증, 성소수자 차별, 전염병 위기 등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300여 명 필자가 손바닥으로 움켜쥐고 손가락으로 풀어낸 세계는 어두웠다. ‘아, 세상이 이렇게 어두워졌구나. 지금 우리가 이토록 어렵구나.’ 잠시 쉬어서 머리를 식혀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대부분 지친 인물들은 전통적 방식으로 저항하진 않았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격렬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삶의 끝자락에서 피어오르는 유머와 희망이 예년보다 옅어져 있었다.
응모작들은 누군가를 비난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기보다 ‘그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나’ 이해하려 애썼다. 처연하고 비루한 우리들을 이해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문학의 본질에 충실한 작품이 많았다. 수준도 고르게 높았다. 예년보다 훨씬 많은 32편의 본심작을 추릴 만큼 버리기 아까운 작품이 많았다.
고르게 좋은 작품들다만 아쉬운 점은, 심사위원 모두가 이론의 여지 없이 최고로 뽑을 작품은 눈에 띄지 않았다. 심사위원 3명은 각자 다섯 작품을 추천했는데, ‘치킨런’이 공통분모로 뽑혔고 ‘자작나무 숲의 온도’도 대체로 언급됐다.
이항로씨의 대상 수상작 ‘치킨런’은 문학적 완성도가 높았다. 다른 작품에 견줘 문장이 단단했고, 흐름도 재빨랐다. 몇 개의 장면을 전환하듯이 풀어간 이 작품은 살아 있는 가족을 선택하기 위해 살아 있는 노모를 버려야 하는 중장년 남성을 쫓아간다. 예전 같으면 평생 직장이었을 곳에서 밀려나 치킨 배달을 하는 그의 하루는 ‘20분 제한’에 쫓기는 ‘치킨런’이고, 그의 인생도 현재의 가족과 키워준 어머니 사이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치킨런’이다. 멀리는 대책 없이 고령사회로 달려가는 우리 사회도 위험한 ‘치킨런’의 상태다. 이렇게 다층적 구조에 아르바이트 청년과 교감, 외면하는 형제자매 같은 설득력 있는 인물들이 더해진다. 실직과 질병 그리고 배달 같은 소재가 다소 전형적이란 평가도 있었지만, 작품의 흡입력을 심사위원 모두 높이 샀다.
김혜인씨의 가작 ‘자작나무 숲의 온도’는 소재부터 눈에 띄었다. 기후관측을 공부하는 유학생 주인공이 시베리아에서 북한 출신 건설인부 석이 아저씨를 만나는 설정은, 지금껏 한국 문학에서 보기 어려웠던 이야기다. 머나먼 곳에서 머나먼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만나서 만드는 온기는 칼바람 같은 정치와 체제의 위협을 이기지 못한다. 이 작품은 한 개인이 어쩌지 못하는 슬픔을 눈보라 쌓인 광막한 시베리아의 풍경처럼 쓸쓸하게 그려낸다. 유학생과 아저씨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지 불명확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현실의 설정과 환상적 이미지를 적절하게 결합한 작품으로 평가됐다.
또 다른 가작 박호연씨의 ‘산청으로 가는 길’은 새로운 연애담으로 읽힌다. 연애는 일대일 배타적 관계라 믿었던 여성이 가벼워서 좋았던 만남을 통해 ‘폴리아모리’(Polyamory·다자연애)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담겼다. 폴리아모리를 주장하는 대학강사의 논리가 ‘바람둥이의 가면’을 넘어서는 설득력을 얻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여성 화자의 선택이 더욱 치열했다면 더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폴리아모리를 모티브로 삼았지만, ‘산청으로 가는 길’은 평범한 한 사람이 대안적인 세계를 만나서 매력을 느끼고, 동행하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유머와 희망이 살아나기를당선작과 우열을 가리기 힘든 본심작도 있었다. 불법 광고물을 수거해 생계를 잇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당신의 박제품’은 현장성을 치열하게 담은 작품으로 평가됐다. 우리가 아는 대립 구조 너머의 이야기는 새로웠다. 그러나 문장과 구조의 완성도가 아쉽다는 지적이 나왔다. 감염병 재난 상황을 통해 사회적 낙인과 감시의 문제를 극화한 ‘포지티브’도 주목을 끌었다. 읽기에 따라서 후천성면역결핍증(HIV), 민주주의 문제까지 은유한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이야기 구조가 새롭지 않다는 반론이 나왔다. 이 밖에 ‘여학생 팬티 도난 사건’ ‘그냥, 궁금하지 않아서’도 수상작 후보로 거론됐다.
촛불과 함께 뜨거웠던 제8회 손바닥문학상 공모가 끝났다. 올해는 유난히 죽음의 그림자가 작품마다 어른거렸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무언가의 끝에 왔음을 암시하는 징후로 읽혔다. 촛불 이후 유머를 잃지 않고 희망이 살아나는 손바닥문학상을 기대할 수 있을까. 2017년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지금과 비슷한 날씨였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났다는 전화를 들은 게. 불길 속에서 피어오르던 꽃상여와 그날 내렸던 눈송이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눈빛과 내 손 위에 얹힌 당신의 손을, 아직 잊지 못합니다.
막내아들 부부의 다툼이 있던 그해 명절. 다른 식구 차에 실려온 막내손주를 보고서 당신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알 순 없습니다. 그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과정이라도 되는 양 스윽 건너다보았습니다. 그러곤 친척들 몰래 쥐어준 몇만원. 그냥, 그게 생각날 때마다,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당신과 저의 다른 이름인 부모님.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 끝까지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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