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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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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인정 투쟁, 준비됐나요?



엑스포·올림픽·월드컵 거대한 행사와 함께 가는 인정 욕망…
스스로 주인임을 자각할 때 문제 실마리 풀릴 것
등록 2010-06-11 21:11 수정 2020-05-03 04:26
케이프타운의 월드컵 경기장. ‘그린 포인트’로 불리는 이 경기장은 월드컵을 위해 새로 지어졌다.

케이프타운의 월드컵 경기장. ‘그린 포인트’로 불리는 이 경기장은 월드컵을 위해 새로 지어졌다.

“우리가 준비됐다고 생각해요?” 지난 5월21일 아침, 방송사 스튜디오로 나를 불러낸 제이크 모코마가 대뜸 물었다. 그는 남아공 공영 라디오 방송 〈SAFM〉의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월드컵 관련 특강을 위해 요하네스버그대학에 방문한 나에게 학생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남아공과 아프리카 사이

“우리가 이 행사를 무사히 치를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정말 걱정이에요.”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흑인 학생 넬슨 모로폰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프리카 전체가 거대한 식민지였다. 그들은 이참에 유럽의 ‘모국’을 향해 뭔가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들에게 트집 잡힐 일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한다.

남아공 사람들이 조바심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아프리카 바깥에서 그들을 향해 날아오는 삐딱한 시선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월드컵은 지구적 차원의 인정(認定·Recognition)을 향한 지구적 차원의 거대 행사(Mega Event)다. 국제박람회(엑스포)·올림픽·월드컵 등이 대표적이다. 그 이면에는 국가 차원의 인정 욕망이 반드시 작동한다.

출발은 국제박람회였다. 1851년 런던 박람회 이후 16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 탄생에는 ‘민족국가’의 인정 투쟁이 있었다. 1937년 파리 박람회가 대표적이다. 당시 가장 인기 있던 두 전시관은 나치 독일과 신생 소비에트연방의 것이었다. 자유주의국가의 상징인 에펠탑이 두 전체주의 전시관의 한가운데 자리했다. 프랑스·독일·소련은 각각의 방식으로 새로운 국가적 정체성을 지구적 차원에서 인정받기 열망했다.

1896년부터 시작된 올림픽은 민족국가의 근대화 성과를 알리는 행사로 변화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나치즘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는 히틀러의 시공간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유대인·흑인 선수 등에 대한 주최국의 차별에 항의했을 뿐, 국가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자체는 문제 삼지 않았다.

1930년 우루과이에서 처음 열린 월드컵은 그 뒤늦은 탄생에도 불구하고 지구적 거대 행사의 최고 지위를 향해 급성장했다. 축구라는 단일 종목이 갖는 집중성, 전세계적 대중성 그리고 노골적인 국가 간 경쟁을 토대로 삼았다. 이미 2회 월드컵부터 그 성격이 분명해졌다.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 주도 아래 열렸다. 이탈리아 대표팀은 우승하지 못할 경우 실제로 처형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에 시달렸고, 연장전 끝에 가까스로 우승했다. 결승전은 라디오를 통해 이탈리아 전역에 중계됐다. 약 1만5천m에 이르는 월드컵 뉴스 필름이 제작돼 극장에서 상영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유럽 국가’도 국제박람회-올림픽-월드컵으로 이어지는 거대 행사의 패키지를 열망했다.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과 1970년 오사카 국제박람회를 통해 전범국가의 이미지를 지우며 다시 세계체제에 진입했다. 한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93년 대전 국제박람회를 통해 군사독재의 저개발국 이미지를 넘어서려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두 나라의 지구적 인정을 마무리하는 행사가 됐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국제박람회 개최로 지구적 인정의 단계를 통과하고 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월드컵 유치뿐이다.

비유럽 국가의 ‘패키지 열망’

2008 베이징 올림픽, 2010 남아공 월드컵, 2010 상하이 국제박람회, 2014 브라질 월드컵, 2016 리오 올림픽으로 이어지는 지구적 거대 행사의 시계열은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남아메리카 국가의 지구적 인정 열망을 보여준다. 그 한가운데 2010 남아공 월드컵이 있다. ‘새로운 남아공’에 대한 지구적 인정 프로젝트의 첫 단계다. 이미 남아공 정부는 올림픽 유치에 도전할 뜻까지 내비치고 있다.

월드컵은 국제박람회를 가뿐히 능가하고, 어느 면에선 올림픽까지 넘어서는 지구적 거대 행사가 됐다. 월드컵을 주관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은 208개 회원국을 거느린 국제조직이다. 유엔보다 회원국 수가 많다. 이번 월드컵이 열리는 한 달여 동안, 연인원 500억여 명의 지구인이 1만8천여 개 방송 채널을 통해 거대 행사를 체험할 것이다.

월드컵의 가장 큰 특징은 ‘미디어화’다. 지구적 인정을 받으려면 더 많은 지구인에게 ‘보여줘야’ 한다. 텔레비전은 월드컵의 지구적 규모를 실현시켰다. 진화의 속도는 가공할 만하다. 1962년 칠레 월드컵을 보고 싶은 유럽인은 경기 촬영 필름이 유럽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8년 뒤인 1970년 멕시코 월드컵 결승전은 위성으로 전 유럽에 생중계됐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은 166개국에서 약 1만 시간 정도의 중계방송이 전파를 탔다. 2002년엔 213개국에서 약 4만1천 시간, 2006년엔 214개국에서 7만3천 시간이 방송됐다.

공중파 텔레비전을 통한 중계는 24시간 케이블 텔레비전으로, 그리고 인터넷이 결합된 디지털 모바일 중계방송으로 급속히 확장됐다. 2002년과 2006년 월드컵에선 포털 사이트 야후(Yahoo)가 월드컵 공식 웹사이트의 권리를 인정받았다. 세계 축구팬은 이 웹사이트를 통해서만 월드컵 동영상에 접근할 수 있었다. 중계권을 차지한 각국 방송사조차 자기네 홈페이지에서 월드컵 인터넷 동영상을 사용할 수 없는 시기가 온 것이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3D가 도입됐다. 미국의 스포츠전문채널 〈ESPN〉은 이번 월드컵의 64개 전 경기를 3D로 중계할 예정이다.

3D 도입, 미디어화의 정점

그러나 지구적 거대 행사는 지구적 인정을 열망하는 ‘국가’가 주도권을 쥐는 것이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FIFA, 국제박람회위원회(BIE) 등이 행사 주최의 당사자다. 경제적 이익도 그들에게 돌아간다. 월드컵을 통해 남아공이 지구적 인정을 목표로 한다면, FIFA는 재정적 이득을 노린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FIFA는 2억2200만유로(약 3330억원)를 투자해 14억 유로(약 2조1천억원)의 이득을 남겼다. 이번 월드컵에서 이익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남아공이 얻는 경제적 이익은 불투명하다. 남아공 정부는 경기장·도로 건설 등을 위해 46억달러(약 5조2천억원)를 투자했지만, 돌아올 이익의 대부분은 관광객 증가, 일자리 창출 등 미래에 발생할 ‘장담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극심한 빈부 격차를 겪고 있는 남아공 국민이 지구적 인정의 값어치를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

그것이 라디오 방송에서, 요하네스버그대학의 강의실에서 “우리가 월드컵을 과연 잘 치를 수 있을지” 남아공 사람들이 질문했던 배경이기도 하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월드컵은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닌 ‘당신들’을 위한 축제다.” 축제는 손님과 더불어 주인이 함께 즐길 때 빛이 난다. 남아공 사람들 스스로 지구적 거대 행사의 주인임을 당당히 자각하는 데서 문제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곁에 앉은 남아공 친구는 벌써부터 손톱을 물어뜯고 있다. 남아공의 축구 평가전이 잠시 뒤 열린다. 그와 함께 나는 한국의 ‘붉은 악마’ 티셔츠에 영국 리버풀 클럽의 스카프를 두르고 남아공의 응원나팔 ‘부부젤라’를 불며 경기장에 달려갈 것이다. 미디어 스팩터클을 원하는 방송 카메라가 어쩌면 나를 줌인할지 모른다.

요하네스버그(남아프리카공화국)=강재호 미국 뉴스쿨 사회학 교수·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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