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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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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인권OTL] 라면 끓이기랑 야구는 백점이에요!

등록 2008-08-01 00:00 수정 2020-05-03 04:25

시험 점수 경쟁에 치인 아이들에게 ‘내가 잘하는 것’을 적어보게 하다

▣ 강현정 서울 창도초 교사·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일어나라, 인권 OTL ⑫]

“시험 범위 어디까지예요?” “이번엔 진짜 잘 봐야 해요. 올백 맞으면 휴대전화 사주신댔어요.”

얼마 전 아이들은 성취도 평가 시험을 봤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같은 문제로 치러지는 이 시험은 모두를 긴장하게 한다. 한 과목 시험을 보고 쉬는 시간에 “틀리면 어때? 이게 부족했구나 하고 더 공부하면 되지” 했더니 아이들은 “저 많이 틀리면 엄마한테 죽어요”라더니 이내 “점수 언제 나와요?” 묻는다.

“과목마다 잘하는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는데, 무엇을 왜 틀렸는지 알면 되지 점수만 아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 엄마한텐 안 통해요. 점수가 중요하대요. 엄마들끼리 비교한단 말이에요.” “저희 학원에서는 평균 점수가 15점 이상 오르면 5만원 상품권을 줘요.” “올백 맞으면 선물 사주신댔어요.”

다음날 채점된 시험지를 받아들자마자 아이들의 표정은 갈린다. 슬쩍 접어서 서랍에 넣는 아이들도 있고 서로 점수를 묻는가 하면 가르쳐주지도 않은 평균을 내고는 서로 비교하기도 한다. 이런 일제고사가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치러지고 있다.

게다가 0교시,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우열반이 다시 등장했다. 눈높이를 맞춘 수준별 수업이라는 미명 아래 인근 중학교는 우열반을 편성해 공개수업도 그대로 했단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우반에서는 참관 학부모와 학생 수가 거의 동수였으며, 열반에는 학부모가 한 명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공부 못하는 게 죄는 아닌데, 아이도 부모도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시험지 확인을 마치고 아이들과 잭 캔필드의 중 ‘동물학교’ 이야기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오리한테 달리기를 시키고 토끼한테 수영을 시키는 동물학교의 획일적인 교육과정 속에서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잘하는 뱀장어가 최우수 학생이 된다. 개인의 특성을 키워서 자신 있게 삶을 살아내도록 북돋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이 “전 잘하는 게 없어요”라거나 “전 못해요”라며 포기하는 것부터 배우게 하는 획일화된 교육을 하고 있진 않은가 싶다. 글을 함께 읽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을 적어보기로 했다.

‘노는 것, 책 읽는 것, 글씨 예쁘게 쓰기, 조립하기, 자전거 타기, 그림 그리기, 잠자기, 수영, 피구, 골판지 인형 만들기, 라면 끓이기, 뜨개질하기, 야구, 큰 소리로 특이하게 웃기, 노래 들으며 춤추기….’

시험에 쫓겨 잠시 ‘몇 점짜리 인간’이 되었던 아이들은 제각각의 장점을 돌아보는 데 열심이었고 뿌듯해했다. 우리의 교육도 ‘아이들이 매 순간 스스로의 장점을 찾고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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