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안경환 위원장이 인권교육 시범학교 오산 성산초등학교에서 수업하던 날
▣ 오산=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일어나라, 인권 OTL ⑩]
지난 7월15일 오전 경기 오산의 성산초등학교 6학년1반 교실. 2교시 종이 울리자 올해 환갑을 맞은 한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안경을 낀 그가 입을 뗐다. “안녕하세요. 저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안경환이라고 합니다. 60년 전 우리나라 헌법이 만들어졌거든요. 세계인권선언이란 것도 만들어졌죠. 오늘은 그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세계인권선언’은 어떻게 탄생했나
해당 수업의 단원명은 ‘대한민국의 수립과 발전’이었고 ‘대한민국 헌법의 수립 배경과 과정, 의의를 알 수 있다’는 게 학습목표였다. 이날은 국가인권위원회 선정 인권교육 시범학교 사업을 올해부터 시작한 이 학교에 안 위원장이 ‘헌법학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헌법과 세계인권선언’이라는 이름의 특별수업을 진행하는 날. 일제에서 해방된 뒤 헌법이 수립되기까지 과정을 설명한 할아버지 위원장이 헌법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에 들어갔다.
“여러분, 나라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한 용감한 학생이 큰 소리로 외쳤다.
“대통령이오.”
순간 교실에는 웃음이 넘쳐났다. 아무래도 그 학생은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모르는가 보다.
“네, 우리나라의 주인은 국민이죠. 그리고 헌법에는 국민의 권리가 쓰여 있죠. 어떤 권리죠? 네, 자유롭게 말할 권리, 함부로 체포되지 않을 권리 등등이죠. 또 헌법에는 국가의 권력구조에 대한 규정도 있죠. 어느 쪽이 더 중요할까요?”
“기본권이오.”
“네, 그렇죠. 대통령이 왜 있습니까? 국민의 기본권을 잘 지켜주기 위해 있는 것이죠.”
“네∼.”
이어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전쟁의 참혹함과 생명의 소중함을 절감한 전세계가 머리를 맞댄 결과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탄생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자 이제, 질문 시간이다.
이다은양이 물었다. “중학교 가면 머리 모양을 우리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데, 그건 인권침해 아닌가요?”
안 위원장의 답이 뒤를 따랐다. “예전엔 똑같은 옷과 머리 모양이었지만 점점 개성을 존중하는 쪽으로 우리 사회가 가고 있죠. 하지만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부모님과 선생님, 학생이 함께 학칙을 만들어 ‘이렇게 하자’고 결정하는 게 좋겠죠?”
질문의 수위는 갈수록 높아졌다. “촛불집회에 간 학생을 경찰이 수업 중에 불러냈다는데 잘못된 것 아닌가요?” 강선미 학생이 야무지게 물었다.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라는 당연한 대답이 안 위원장 입에서 나왔다.
인권을 논하기엔 수업시간 40분은 짧았다. 양복 윗도리를 벗어젖히고 수업에 나선 안 위원장에게는 더 짧은 듯했다. 헌법학자이자 인권위원장으로서 하고 싶은 얘기가 오죽 많았을까. 더구나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4학년 딸을 둔 그는 ‘할아버지’도 아니었으니, 그야말로 자식 같은 아이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얘기는 한참 많이 남았을 시간이다.
학생들은 수업 뒤 “헌법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입을 모았다.
체벌 대신 ‘생각하는 의자’
이 학교는 올해부터 인권교육 시범학교에 선정되면서 이미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20명에 이르는 정규교사들은 굴 속에 들어가 마늘을 씹어먹는 ‘웅녀’처럼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체벌을 하지 않기로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대신 교실 한 귀퉁이에 ‘생각하는 의자’를 마련했다. 아이에게 훈육이 필요한 때 매 대신 그곳에 앉아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하고 있다. 인권교육을 맡고 있는 이 학교 3학년1반 담임 최정순 교사는 “선생님들이 체벌을 못하게 되니 감정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많이 괴로워하고 있다”면서도 “힘들지만 인권학교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사랑의 매도 없는 학교’ 프로젝트다.
이 학교는 이미 2006년부터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의 통합교육을 해왔고, 현재는 3명의 1급 장애 아동 집에 출장 수업을 갈 정도로 다른 초등학교에 비해 인권의 눈이 높다. 그럼에도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인권학교를 향해 매일 교사들이 진보를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인권교육을 향한 김광순 교장 선생님의 강력한 의지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장관급’ 할아버지 위원장은 1시간여 머물다 돌아갔다. 하지만 오산 성산초등학교는 ‘야야’ 대신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학교, 아낌없이 칭찬하는 학교, 차이를 존중하고 차별하지 않는 학교를 향해 계속 소걸음을 뚜벅뚜벅 내디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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