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인터뷰 특강- 거짓말 ①
<font color="darkblue"> 정혜신과 함께한 ‘사람에 대한 거짓말’ “모든 인간은 완벽하게 불완전한 존재입니다”</font>
▣ 김종옥 7·8기 독자편집위원
날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3월13일, 서울은 영하 9.9도를 기록했다. 그러나 안다. 그게 빤한 거짓말이라는 거, 겨울은 갔다는 것. 더구나 한국 야구 역사 101년 만의 쾌거라는 대미국전을 짜릿하게 감상한 터, 생떼 쓰는 날씨 정도는 외눈 하나 꿈쩍 않고 지나칠 수 있다.
거기다 하나 더, 1년 만에 그 흐뭇한 강연장으로 다시 모인다는 설렘에 체감온도는 이미 몇 도쯤 상승하고 있었다. 올해로 세 번째이니 벌써 중독의 기미를 보이는 청중도 있다. 수백 석의 좌석이 꽉 차고도 모자랐으니, 이 시대가 얼마나 교양에 목말라 있는지 보여주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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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특강은 청중의 계층이 다양하다는 특징이 있다. 질의응답 시간에도 자기 입장이 그대로 녹아나는 다양한 색깔과 수준의 질문이 쏟아진다. 그것만으로도 흥밋거리지만, 층차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같이 킬킬거리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는 것은 여간 각별한 재미가 아니다.
페르소나, 그리고 나르시시즘
사회는 연극인 오지혜씨가 맡았다. 무대에서, 글에서 보이는 그의 개성만큼이나 부드러우면서도 발랄하고, 우아하면서도 칼칼한 입담꾼이다. 특강 주제도 예년에 비해서 꽤 가볍다. ‘거짓말’이다. 물론 이는 지난해 온 나라 사람들을 가위눌리게 했던 ‘황모 거짓말 사건’이 촉발한 주제일 테지만, 이번 특강에서는 거짓말에 대한 다양한 각도의 탐조등을 밝힐 채비가 단단히 되어 있는 품새가 느껴진다.
첫 번째 강연자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가 나선 것은 아마 의도된 것이리라. 그는 조곤조곤하고 다정다감한 태도로 상대를 여지없이 무장해제시켜버리는 술사(術士)요, 재간꾼이다. 윽박지르거나 노골적으로 유혹하지 않고도 내 엉킨 속을 죄 뒤집어 털어놓게 만드는 정신과 의사의 완벽한 페르소나(그가 하는 페르소나와 페르조나의 중간 발음만큼이나 미묘한 아름다움을 갖는)를 보이는 이가 그이다.
사회자 오지혜씨와 정혜신씨는 마치 햇볕 좋은 오후, 카페에 앉아 편안한 대화를 하듯 정신분석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테면 이런 대화들이다.
오: 유명인들의 원거리 분석을 많이 하셨는데, 읽는 우리들이야 무척 재미있지만, 혹시 당사자들한테 항의 들은 적은?
정: 주변에서 그런 걱정을 많이 하시는데, 생각보다 그런 일이 없었어요. 심지어는 비판적인 내용에 고맙다고 하는 전화까지도 받았지요.
오: 그 사람, 정치인이었죠? (이 대목에서 웃음 출렁) 비판적으로 분석했던 사람이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것으로 드러날까봐 걱정되지는 않으세요?
오: 그보다는 긍정적으로 썼던 사람이 뭔 일 저지를까봐 더 걱정되지요. (웃음 증폭)
이윽고 그는 “사람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람의 참과 거짓을 어떻게 구별해낼까에 대해 말해보려고 해요”라고 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할 때 그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라면 우리는 사전적 의미에서 ‘사람에 대한 거짓말’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 인간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보는 설명도 많다. 이것들이 유용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이것이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은 실제로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형별 분류 안에 사람을 집어넣고 알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형형색색의 다양한 실체를 놓치는 어리석은 짓이다. 모든 인간이 개별적인 동시에 독립적인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성찰이 무너지는 순간 그 집단이나 개인이 하는 말들은 모두 거짓이 되는 것이다.
= 사람은 다양한 역할 성격(페르소나)을 갖고 산다. 누구나 다양한 페르소나에 충실하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따라 얼굴이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때로 역할 성격을 그 사람의 참모습, 전체 모습과 혼동한다. 인간은 그가 갖는 다양한 페르소나, 그것 전체이다. 그것을 통째로 통찰하지 않으면 서로 거짓을 보고 있는 셈이다. 특정 인물에 대한 우상화나 지나친 폄하 현상은 그래서 일어난다. 관계와 전체의 맥락 속에서 사람을 바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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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유명인의 페르소나에 압도당한 예, 대표적 거짓말쟁이인 성격장애의 예 등을 들며 인간을 부분적으로, 일방으로 이해하는 것이 어리석고 폭력일 수 있다는 얘기를 힘주어 한 뒤, “사람은 모호해요. 그걸 인정하고, 그걸 다 수용하려고 열어놓아야 사람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지요. 모든 인간은 완벽하게 불완전한 존재입니다”라고 하면서 강연을 마쳤다.
인문학적 개별 성찰을 잃지 말라
이어지는 질의응답 시간은 사회자를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했다. 때로는 상담료를 청구해야 할 내용에서, 내 다양한 페르소나 중 어느 것이 대표일까, 자기 인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질문 시간의 전반부는 성격장애에 관한 것들이었는데, 워낙 나르시시즘에 관한 내용이 흥미를 끌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성격장애자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싸인 여성(불행히 나 역시도!), 그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느냐는 초조감을 드러낸 남성에 이르기까지 성격장애에 관해서 재미있는 질문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그들에게 오카다 다카시의 <나만 모르는 내 성격> 일독을 권한다. 성격장애에 관한 상세한 설명이 있다) 강연의 마지막 질의응답은 다음과 같았다.
청중1(중년남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분):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 역할 성격에 거짓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데….
정: 부모가 되면 부모의 역할에 몰입함으로써 개별적 존재감, 개별적 관계를 자꾸 잃어갑니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공허해지고 무기력감에 빠지게 되지요.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늘 ‘의도적인 견제’를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인간의 개별성에 대한 성찰, 달리 말하면 인문학적 개별 성찰을 잃지 말라는 말입니다.
청중2(주부라고 소개): 자기 인식을 어떻게 해나갈지.
정: 인간의 자기 인식에 대한 욕구는, 식욕이나 성욕 같은 기본적 욕구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안다는 것은 항상 남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므로, 그 관계를 살피고 밟아나가는 여정 속에서 자기가 드러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가 자기 귀에 들려야 남에게 자기 목소리가 전달된다고 느끼지요. 그것처럼 자기 인식이 참 중요해요.
특강이 끝나고 백양로를 내려오는 긴 길 내내, 상냥한 미소와 함께 “자기 인식이 참 중요해요”라고 했던 말이 연인의 담배 연기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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