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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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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출 이야기- 성장을 위한 여행

등록 2003-11-05 00:00 수정 2020-05-02 04:23

나의 가출 경험을 글로 쓰려니 딱히 떠오르는 문장이 없다. 정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내가 행했던 가출이란 그다지 특별하지도 비일상적이지도 않는 ‘청소년적’일상의 연장일 뿐이었다. 가출이라 하면 보통 10대 폭력조직, 섹스, 마약으로 점철된 일탈적 행동을 떠올리겠지만, 나의 경우는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만 다를 뿐 일종의 성장을 위한 여행과 같았다. 첫 가출을 한 초등학교 시절은 부모님과의 마찰로 인한 일시적 데모였지만, 고등학교 자퇴 이후 잦은 가출의 이유는 자퇴생이란 이름표를 통해 나를 바라본 집과 사회의 차별적 시선에 대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만과 불안 때문이었다.
10대, 자퇴생, 동성애자란 정체성으로 세상을 살아가던 내게 사회란 폭력이 일상화된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고작 18년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지루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러한 상황을 벗어날 방법은 얼마 없었다. 토할 것 같은 현실에다 냅다 토해버리든지 혹은 잠시 꾹 참고 있든지. 난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취하지 못했고 ‘도망치기’를 선택했을 뿐이다. 삶이 무엇인지, 사람이 무엇인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찾고 싶던 내게 가출이란 선택은 어쩌면 당연했는지 모른다.
자퇴 뒤 첫 가출은 아르바이트를 하다 한달도 채 채우지 못하고 욕만 바가지로 먹고 쫓겨난 뒤 느낀 비참한 좌절감이 동기였다. 전라도로 떠났던 당시의 가출은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진정시키고, 현실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안정시킬 수 있었다. 이후 한달 정도 가출을 했는데, 그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정상적’이지 못한 성 정체성, 주류에 편입할 수 없는 생각 등등. 하지만 그러한 고민들이 가출을 함으로써 잊혀질 순 없었다. 되레 가출 기간 내내 내적 갈등은 점점 커졌고 사회와 나의 관계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가출 기간에는 그런 사념들을 순전히 혼자 떠안아야 했으므로 집에 있을 때보다 더욱 진지하게 삶을 고민했다.
당시의 가출들이 지금의 내가 있기에 꽤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믿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말로 표현하기란 힘들다. 아마도 10대인 내가 일찍 부산인 집을 떠나 서울로 가출이 아닌 독립할 수 있었던 것은 수없이 감행한 가출이 남긴 가장 큰 영향일 것이다. 진로나 성 정체성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가출 기간에 나를 괴롭혔던 고민의 흔적이라 믿는다. 그리고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자신이 자유인이라도 된 것만 같은 착각이 좀더 날 자유로이 풀어주고픈 욕구를 해소할 수 있었던 통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 청소년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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