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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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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어] 우리는 너네ㅎr그 놀긔 ㅅ1러!

등록 2003-10-08 15:00 수정 2020-05-02 19:23

[유현산 기자의 학교!]

청소년들은 왜 외계어를 쓰는가… ‘우리만의’ 한글이 보여주는 상상력

공동취재 김민지 | 청소년 기획위원

청소년에게 인터넷이 없다면? 동영상 포르노를 보지 않을 것이다. 컴퓨터 게임에 중독돼 아침부터 벌건 눈으로 교실에 앉아 있지도 않을 것이다. 어린 영혼을 갉아먹는 온갖 인터넷 폭력물, 음란물이여 안녕! ‘~했어염’이니 ‘안냐세여’니 하는 통신언어와 각종 이모티콘으로 어른들을 당황하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주체성을 표현할 수단을 잃어버릴 것이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하위문화를 구성하거나 좀더 다양한 일탈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찾아낼 것이다. 어떤 것이 있을까? 이전 세대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어떤 것? ‘청소년에게 인터넷이 없다면’은 어쩌면 섬뜩한 가정일 수도 있다.

역동적으로 진화하는 언어

울희?h(우리가) 外ㄱ'IIㅇㄱ를 쓰등 먈등_。(외계어를 쓰든 말든) ㄴㄱㄴ-IIㄱr 흔 샹ØIㆅFⅲ(너네가 무슨 상관이야!!!) 울흐IㄱF(우리가) 外ㄱ'IIㅇㄱ ㅆㄱ人ㄱⅲ(외계어 써서) ㄴ1ㄴ-II 휑ㆅrㄱ-II 맹었-¿(너네 불행하게 만들었니?) 오Iㄱ'IIㅇㄱ듀 ㅎ1ㄱF 맹글ㅇㄱ낸(외계어도 우리가 만들어낸) 울ㅎ1희능(우리끼리는) 귤희ⅲ(한글이야!!!) 울희능, 너누-IIㅎr그 놀긔 ㅅ1러ⅲ(우리는 너네하고 놀기 싫어!!) 오1ㄱ'IIㅇㄱ 날음뒈르(외계어도 나름대로) ㄱЙ셩Ø1있흥,ⅲ(개성이 있다고!!!) 믈론 귤희 알음그I능 ㅎH.(물론 한글이 아름답기는 해) 글흐 율희한퉤능 한귤흰(그렇다고 우리한테는 한글인) 이 오1ㄱ'IIㅇㄱ를 욕ㅎr능 건흔(이 외계어를 욕하는 것은) ㄴF듀 용 못ㅎH,,(나도 용서 못해,,) 오1ㄱ'IIㅇㄱ능 졈졈 발젼훼 ㄱr그 ㅇ1ㄸr능결(외계어는 점점 발전해가고 있다는 걸) ㄴㄱㄴ-II능 ㅇr듀 몰흐ㄴ1-(너네는 아직도 모르니?)

위는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외계어를 쓰는 학생의 항변이다. 이 간단치 않은 퍼즐을 풀어보자. 첫 번째 열쇠는 분철이다. ‘우리가’를 ‘울흐IㄱF’로 ‘그렇다고’를 ‘글흐’로 ‘나름대로’를 ’날음뒈르’로 모아낸다. 연철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있다’가 소리나는 대로 표기되니, ‘ㅇ1ㄸr’가 된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자음과 모음을 떼어놓는 경향이다. ‘너네’의 자음과 모음의 거리를 떼어놓다보니 ‘ㄴㄱ(너)ㄴ-II(네)’가 된다. 한자, 영어, 일어, 숫자 등은 그 음을 차용하거나 모양을 본떠 모음으로 사용한다. 외계어는 ‘外ㄱ'IIㅇㄱ’로, ‘니네’는 ‘ㄴ1ㄴ-II’(숫자 1이 모음 ㅣ를 대신), ‘아직도’는 ‘ㅇr듀’(r이 모음 ㅏ를 대신)로 바뀐다. 이 밖에도 단모음의 이중모음화(가→ㄱF, 발전해→발젼훼), 종성에 ㅁ, ㅂ, ㅇ 쓰기(욕하는→욕ㅎr능, 쓰든 말든→쓰등 먈등)도 나타난다. 어렵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누구도 당신에게 이해를 강요하지 않을테니.

1~2년 전부터 청소년들이 자주 드나드는 채팅 사이트에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낸 이 정체불명의 언어는 지금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외계어는 대화의 양념 구실을 하는 통신언어와 질적으로 다르다. (‘안티 문희준’ 네티즌들이 그의 노래 를 패러디해서 욕처럼 쓰는 말), 즐(원래는 ‘즐겁게’라는 뜻이었으나 ‘신경 꺼’라는 욕도 됨. ‘’로 변형해 쓰기도 함)과 같은 단편적인 예만 상상해서는 안 된다. 오직 청소년들만이 외계어의 생산과 유통에 참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글의 문법체계를 극단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해서, 외부인들의 해석을 용납하지 않는다.

외계어는 역동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언어다. 사용자들은 기존 문장에 계속 특수문자를 첨가하고 문법을 변형한다. 한 사용자가 재미있는 외계어를 만들면 대화를 통해 널리 퍼진다. 때로는 외계어를 쓰는 학생들끼리도 의사소통이 안 될 때가 있다. “제가 너무 변형해서 상대방이 못 알아보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엔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고 알면 ‘그렇구나’ 하고 말아요”(고1 여학생). 외계어가 유기체처럼 다양하게 진화하다보니, ‘よøぎㅎビλĦㅎコ_¤’(안녕하세요)처럼 외국어를 섞어 쓰는 경우를 ‘W언어’라 명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사용자들은 외계어와 W언어를 구분하지 않는다.

가상공간에서 찾은 정체성

‘외계인’들이 모이는 인터넷 사이트들도 점점 늘고 있다. ‘특수문자만땅’(cafe.daum.net/NicknameWorld)이란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보면 외계어의 생산 시스템이 꽤 정교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회원 수가 1만1700여명이나 되는 이 카페에서는 외계어에 대한 각종 정보 외에 운영자가 ‘예쁜’ 외계어 서명(이메일 끝에 붙이는 말)과 아이디(ID)를 만들어주거나 회원이 만든 특수문자를 전시하기도 한다. 외계어와 관련된 질문도 받는다. “사랑해를 어떻게 꾸미죠?”라는 질문을 띄우면 회원들이 “ㅅ5 ㄹ 6 ㅎЙ”라는 답변을 단다. 호기심 많은 독자라면 카페에 잠시 들어가 조용히 구경만 하다 갈 일이다. 기자처럼 성급하게 인터뷰 신청을 하다간, ‘회원자격 박탈’이란 도장이 찍혀 그들의 낙원에서 영원히 추방당하기 쉽상이니.

외계어라는 이름 자체가 이 언어를 조롱하는 청소년들이 붙여준 것인만큼(그래서 일부는 외계어 대신 ‘특수문자’라는 이름을 선호한다), 외계어는 소수의 열광적 지지와 다수의 냉혹한 배척을 한몸에 받고 있다. 찬반 논란을 잠시 접어두고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도대체 왜 청소년들은 자판에 찍기도 힘든 외계어를 만들어내는가. “귀엽고 예쁘잖아요.” “같은 말투를 쓰니까 우리끼리 유대감 같은 게 있지.” “우리만의 개성 나타내고, 만드는 게 재밌고…” “반항심에서 그러는 거 같기도 하고…” 채팅을 통해 만난 외계어 애용자들의 말이다. 이들과의 대화 중에 자주 반복되는 ‘우리만의’란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만의 개성, 우리만의 한글, 우!리!만!의!

경기도 한 여고에 다니는 황아무개양은 중학교 때부터 외계어를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냥 막 나오는” 수준이다. 엉뚱하게도 이 학생과는 외계어보다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그는 스스로를 “저주받은 87년생”이라 불렀다. 87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6차와 7차 교육과정 사이에 끼어 우왕좌왕해야 했고, 주5일제 혜택도 못 받는다는 것이다. 정작 하고 싶은 공부는 음악이지만,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특별활동은 이름만 간신히 붙어있다. 그러니까 인터넷 채팅으로 익명의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숨을 돌린다. 너무 비관적이지 않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저희 학교에서 제일 낙관적인 아이예요.” 저학년 때 여학생과 이야기하다 외계어를 배우게 됐다는 대전의 한 중3 남학생은 외계어를 “튀지 않는데 튀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쓴다고 주장했다. 성적이 뛰어나서 인정받거나 ‘주먹’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알리는 아이들이 아닌, 개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이 학생은 지금은 “유치해서” 외계어를 쓰지 않는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민족중흥’이라는 국가의 대의와 ‘입신양명’이라는 가정의 대의를 붙들고 자진해서 경쟁의 대열로 뛰어드는 학생들이 있었다. 10여년 전에는 사회와 교육의 변혁을 외치다 쫓겨난 전교조 선생님을 돌려달라며 닫힌 교문을 붙들고 오열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지금은, 거리에 나서면 온갖 광고문구의 찬사를 받으며 상품의 주인이 되는 소비자본주의의 아이들이 있다. 계몽적인 설득이 먹히지 않는 이들은 선배들보다 훨씬 다양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모든 학생을 점수에 따라 일렬로 줄 세우는 교실의 패러다임이 변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어디서 자신의 존재를 찾을 것인가.

청소년이 인터넷에서 자신의 ‘가상적 주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이들은 서서히 인터넷의 헤게모니를 어른들로부터 빼앗아가고 있다. 청소년들은 가상공간에서 오로지 기발한 아이디(ID)로만 자신을 드러낸다. 요즘 뜨는 인터넷 문화의 대부분은 청소년들이 만들고 향유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우리만의” 언어를 찾아냈다.

세련된 외계어를 쓰는 청소년은 여학생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 이유에 대해 서울 광남중학교 이승헌(30) 교사는 “여학생들의 감수성이 뛰어나고 직접 말하는 것보다는 글 쓰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다른 이유는 없을까? 한 여학생은 “남자들은 굳이 외계어가 아니더라도 종속감을 가지거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거나 그런 게 많으니까”라고 말한다. 남학생들이 활동 범위(혹은 일탈 범위)가 넓은 만큼, 자신의 정체성을 외계어에서 찾는 학생이 더 적다는 뜻일 것이다.

외계어와 안티 외계어의 혈투?

최근에는 외계어를 사용하는 학생들의 연령층이 부쩍 내려갔다. 특수문자 사이트에 가보면 회원들이 대부분 초등학교 고학년이거나 중학생들이다. 외계어 사용층이 확대되면서, 더 이상 외계어가 “우리만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자, 고등학생들이 “유치하다”며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어떤 학생들은 예전에 외계어를 사용한 경험이 있으면서도 사용자들에게 “머리가 빈 것들” “무뇌충의 P양” 등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안티 외계어 사이트에는 이런 감정적인 대응이 아니라 통신언어의 역사부터 외계어의 한글파괴까지 놀라울 정도로 독창적이고 세련된 청소년의 비판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순수 한글’을 지지하는 이들의 강한 연대감을 보면, 이들은 ‘안티’를 통해 가상세계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외계어’와 ‘안티 외계어’라는 두 가상적 주체의 혈투?

통신언어를 둘러싼 논란은 이미 ‘귀여니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고등학생이 쓴 이 인터넷 소설이 올해 전국 서점을 강타하자 ‘안티 귀여니’ 사이트들도 늘어났다. 이들은 통신언어와 이모티콘으로 점철된 귀여니의 언어를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현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입 준비를 위해 한 해 쉬고 있는 이윤세(필명 귀여니)씨는 “똑똑한 친구들이 그룹을 만들어서 통신언어를 비판하고 공감대를 형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귀여니 소설의 문학성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인터넷에서의 언어에 대한 찬반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분명히, 외계어가 한글을 망친다고 혼자 뭇매를 맞을 이유는 없다. 외계어는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 소통되는 언어이기 때문에 일상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반면, 일반적인 통신언어는 중학교 국어교과서에서 다룬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청소년들의 맞춤법이 엉망이라면, 그것은 통신언어 전체의 문제이거나 과도한 조기 영어교육, 한글을 홀대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관련지어야 한다. 외계어 논란은 하나의 ‘징후’로 읽어야 한다. 외계어가 일시적 유행에 그칠지는 몰라도 청소년들이 인터넷을 통해서만 뿜어내는 상상력은 어쩔 수 없이 계속될 것이다. 지금도 ‘외계인’들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울희능, 너누-IIㅎr그 놀긔 ㅅ1러ⅲ(우리는 너네하고 놀기 싫어!!).

bretolt@hani.co.kr


이슬아(중경고 2학년) 보라(‘하자’작업장 학교) 최정원(독산고 2학년) 김민지(독산고 2학년) 오정민(독산고 2학년) 곽호창(광문고 2학년) 겸(탈학교생) 박지형(면목고 1학년) 이한솔(미래산업 과학고 2학년) 마그마(‘하자’작업장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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