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활동가 4인이 말하는 청소년 문제… 학교가 삶의 결정권을 학생에게 돌려줘야
사회 · 정리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한다하는 청소년 활동가들을 불러 모아 멍석을 깔아줬다. 사람만이 희망인지는 알 수 없으나 청소년이 희망임은 분명하다. 청소년은 때로는 놀이로, 때로는 저항으로 낡은 시대의 종말을 알리게 마련이다. 이 지옥도 같은 교육 현장에서 ‘행동하는 청소년’들은 어떤 희망을 이야기할까. 청소년이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볼까. 그것이 궁금했다.
인도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의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 모습의 이슬기(18)양은 ‘다함께’(www.alltogether.or.kr)라는 반전평화단체의 청소년 활동가다. 이준행(18)군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청소년 포털 사이트 ‘아이두넷’(www.idoo.net)의 창립자이며 탁월한 논객이다. 최광종(18)군은 대한민국고등학교총학생회(대고총·www.khssa.org)의 창립 멤버이자 주축이며, 정선혜(15)양은 교육운동단체 ‘희망’(www.1318virus.net)에서 청소년 매체를 만들고 있다.
<font size="2" color="darkblue"><u>내 이야기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u></font>
사회: 일단 각자의 활동을 소개해주세요.
이슬기: 제가 활동하는 단체인 ‘다함께’는 2001년 8월 출범해서 반전·반신자유주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단체예요. 2003년 3월에 청소년 회원으로 가입했어요. 반전운동을 청소년들에게 알리는 일을 열심히 해요.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하기도 했고요.
이준행: ‘아이두넷’이라는 곳에서 웹마스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이두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는, 현재로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청소년 포털 사이트예요. 1999년 12월에 만들어져 디자인, 프로그램, 사이트 운영 모두 청소년들이 직접 하는데, 현재 회원 수가 3만명 정도예요.
최광종: 저는 대한민국고등학교총학생회(대고총) 제1기 부총학생회장을 지냈고요, 지금은 2기가 출범했습니다. 우리 단체는 말 그대로 전국 학생회장 중심의 단체예요. 우리 단체의 가장 큰 목표는 학생회를 살리고 학생들이 진정 원하는 학생회 모습을 만들고 도와주는 것이예요. 그것 말고도 동아리 문화행사 등을 주관합니다.
정선혜: 저는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희망은 청소년이나 교육문제를 중심으로 활동하지만 반전 등 여러 사회 문제에도 청소년 참여를 위해 활동합니다. 저는 언론매체 사업부에 있으면서 ‘1318 바이러스’라는 매체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사회: 활동을 해오면서 부딪힌 힘든 문제는 어떤 것들인가요.
이슬기: 크게 세 가지예요. 처음에 학생인권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단체에 대한 정보 같은 걸 얻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둘째는 학교와의 충돌이에요. 예전에 학교 축제 때 효순·미선을 추모하는 전시회를 하겠다고 하니, 학교에서 계획서를 써오라는 거예요. 전시하고 싶은 물건을 쓰라고 해서 국화꽃 30단, 검은 커튼 등을 썼더니(웃음) 학교에서 난리가 났어요. 서류를 보면서 지역 유지가 오고 누가 오는데 말이 되냐고. 학생회실에서 거의 사기꾼 취급 당하면서 이 xx들 뭐하자는 거냐고 야단맞고. 결국 전시회 제목을 ‘다시 보는 한미관계’로 바꿨죠(웃음). 셋째는 친구들과의 부닥침이죠. 순수하게 청소년 운동을 하는 것뿐이라고 말해도 “넌 빨간색이야”라는 소리가 나오죠.
정선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는데, 찾기 힘들었죠. 저희 집은 어머님이 시민단체 활동가 출신이시고 오빠도 ‘한국전쟁전후 양민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자원활동가라서 분위기가 괜찮지만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 중에는 집에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어떤 언니는 집이 엄해서 문자 오면 그걸 다 검열하기도 해요. 얼마 전 학생의 날 행사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우리 사회에서 바꿔야 할 점 등을 설문조사하고 배지도 만들었어요. 애들은 좋아하는데, 학생부장 선생님이 이런 건 집에 가서 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배지를 배포하다 뺨 맞고 학생회실로 소 잡혀가듯 끌려간 학생들도 굉장히 많았어요. 이게 학생들의 현실이죠.
<font size="2" color="darkblue"><u>가정과 학교당국의 압력을 넘어</u></font>
최광종: 우린 오프라인 활동에 주력하는 단체라 그런지 사업하거나 진행할 때 현금이 필요해서 협조 요청 등에 많은 고생을 했어요. 협조 공문을 들고 가면 칭찬하는 분도 계시지만 어떤 분들은 지금 고3인데 뭐하는 짓이냐고 고함을 지르기도 해요. 저희 학교는 선생님들은 활동을 찬성하시는데, 막상 학생들이 소파개정 서명 같은 걸 받으러 가면 공부하기 바쁜데 뭐하는 짓이냐는 반응이 많아 힘들기도 했죠.
이준행: 개인적·제도적·시장적 문제가 있어요. 개인적 문제는 부모님의 반대죠. 쓰레기 치우는 차 앞으로 데려가서 서울대 못 가면 쓰레기 치우는 아저씨처럼 된다고 꾸짖기도 하시고(웃음). 제도적 문제는 교육당국과의 충돌이죠. 두발제한 반대서명 하니까 서울시 교육청 교육과학연구원 원장님이 교권 차원에서 학생들의 발언을 막아야 한다고 하셨죠. 서울시 교육청이 서명을 주도한 학생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제가 걸렸고 학교에 통보가 갔나 봐요. 학교에서 활동을 중단하지 않으면 자른다고 협박했어요. 그땐 아이들이 학교에서 머리 잘리면 바로 저한테 왔죠(웃음). 그 다음해 4월에 서울시 교감협의회가 인터넷상에서 교권을 침해하는 모든 내용을 처벌하자고 결의했죠. 학교에서 교육청의 지시라며 ‘아이두’ 운영을 중단하라고도 했고. 그래서 고2 때 학교를 그만뒀어요. 그 이후로 아이두넷의 모든 활동들을 교육당국이 감시해요. 나중에는 네이스 폐지 서명 운동을 하니까 교육부에서 전기 끊으라는 전화까지 서버 사무실 담당직원에게 했더군요. 언젠가 게시판에 ‘이런 학생들 빨갱이다’ ‘전교조에 홀렸다’는 글이 떠 있어서 IP를 추적해보니 교육부였어요. 시장적으로는 인터넷 업체들의 압력이 있어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아이두에 싣고 즐겨 찾으니까 인터넷 업체에 위협적으로 다가왔나봐요. 우리 소스를 가져가는 사이트가 굉장히 많아요. 애들끼리 학교 시간까지 뺏기면서 만든 건데, 그런 식으로 가져가면 의욕이 떨어집니다. 나중에는 아이두를 흡수하려는 업체들까지 나타났어요. 자기네가 같은 사이트를 만들면 아이두가 고사하니, 그냥 넘기라고 하는 곳도 있었죠. 아이들끼리 만든 콘텐츠의 저작권을 보호할 수단이 전혀 없어요. 또 우리를 비난한 언론을 언론중재위에 제소하려고 해도 미성년자는 못하게 돼 있어요.
사회: 현재 청소년들의 활동 방향에 문제점은 없나요? 있다면 어떤 개선이 필요할까요? 우선 학생회의 위상부터 애기해보죠.
이슬기: 제가 우리 학교 학생회에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학생회가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데 단지 말을 전달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어요. 더군다나 우리 학교 학생회는 중재 역할만 하겠다며 너희 얘기는 너희가 하라는 식이죠. 우리는 학생회 학생들과 부딪치기도 했어요. .
최광종: 학생회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어요. 사실 처음에는 학교당국에서 민주시민의 준비 과정으로 학생회를 만든 거예요. 대변인이 되어야지 왜 중재자가 되느냐고 지적하셨지만, 우리 대고총은 중재자가 맞다고 봐요. 학생의 입장만을 대변한다면 학생회는 절대 학교당국을 이길 수 없어요.
이준행: 학생회의 중재 역할이란 것은 학생회 성격이 왜곡돼서 나왔어요. 학생회가 아니라 학교 운영위원회가 사실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이죠.
<font size="2" color="darkblue"><u>단체들의 네트워크, 어떻게 할까</u></font>
사회: 학생회의 역할은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논의해야 할 것 같네요. 그 외에 다른 문제들은 없을까요.
이슬기: 학생들이 아직 능동적이지 못한 것도 문제죠. 활동하는 친구들이 소수이다 보니까.
정선혜: 학생들이 움직이지 않는 건 외적인 문제와 연관될 수밖에 없어요. 교육체제가 학생들을 고립시키고 자꾸 암기만 강조하는 상황에서는 어렵죠.
이준행: 하도 많이 얘기하다 보니 진부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그래도 교육체제가 가장 핵심적인 문제죠. 1983년 전교조 결성을 계기로 생긴 전고협이 93년까지는 활발히 활동했어요. 당시 전대협은 때려도 전고협은 때리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조직력이 강했죠. 93년 갑자기 활동이 부진해진 시점이 수능이 생긴 시점과 똑같아요. 또 98년 10월에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이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 가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수능을 쉽게 출제하는 정책을 내놓자, 체벌이나 야간자율학습이 많이 없어졌어요. 그때 학생들 자치활동도 많이 생겼죠. 그러다가 2001년 갑자기 수능 난이도가 올라가자, 그전까지 지하철 역사 등에서 밴드 활동하는 친구들이 전부 사라졌죠. 학교에서 삶의 결정권을 주느냐 뺏느냐가 청소년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죠.
이슬기: 각 단체들의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잘 이루어지지 않아요. 네트워크가 형성돼 좀더 조직적으로 활동한다면 사회·교육 문제에 좀더 효과적으로 우리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청소년들은 각자의 단체를 운영하기 상당히 버거워요. 네트워크가 있으면 훨씬 수월하죠.
정선혜: 8·15 통일축전 때 각 단체 사람들과 얘기해보니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은 같구나, 왜 연결이 안 된 걸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최광종: 여러 청소년단체들이 있는데 서로 성격이 비슷한 단체들이 모입니다. 하지만 협의체는 특별한 목표를 두지 말아야 해요. 대고총은 여러 단체들이 참여해서 협의체를 진행하고 있어요.
이준행: 청소년 활동도 계속 제도권으로 집어넣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전두환 대통령 때 아람단, 보람단 등 급조해서 장충체육관에서 청소년 축제 열고 충성 맹세하는 방식이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어요. 아이두도 지도교사 없으니 처벌하겠다는 말을 들었죠. 문화관광부가 청소년단체 인증제를 한다고 하던데요. 궁극적으로 그냥 아이들끼리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놔두는 게 가장 좋을 겁니다. 또한 스웨덴은 청소년국을 따로 두고, 일본은 아예 총리실 안에다가 청소년 전담 부서를 두고 있죠. 그 국가의 미래상을 제시하면서 청소년 정책을 다루는 시스템이에요. 우리나라는 청소년 정책이 부서별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요.
<font size="2" color="darkblue"><u>‘학교!’의 문을 닫으며 </u></font>
사회: 끝을 맺을 때가 됐군요. 각자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얘기하는 것으로 정리하죠.
이슬기: 앞으로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운동을 할 겁니다. 어른이라서 청소년 단체에 못 들어오는 게 아니라 청소년 활동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해요. 청소년 문제뿐 아니라 반전, 이주노동자, 노동자 투쟁에도 함께 참여하면서 최종적으로 이 체제에 맞서는 것이 근본적인 운동의 방향이라 생각해요.
최광종: 대고총 활동을 마친 시점에서 2기 자문단 형식으로 도와주고 싶어요. 저는 당분간 온라인 위주로 활동을 준비하고 있고, 청소년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문제까지 공유하고 개선 방향까지 제시하려고 합니다.
정선혜: 아직 참여가 미비한 청소년들이 같이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나가고 이런 것들이 있다는 걸 알리는 활동도 열심히 할 겁니다. 궁극적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우리가 더 행복해지려고 하는 거니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함께하면 되겠죠.
이준행: 올해부터는 아이두를 다른 시각으로 키워가려고 해요. 아이들끼리 자발적으로 만들어서 생각을 표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니까 언론매체·시민단체·교사들과 연계하려고 합니다.
‘학교!’ 기획을 진행하며 깜짝 놀랐던 이유는 지금 청소년들이 ‘우리 시절’과 달라서가 아니라 너무나 똑같아서이다. 지금은 영화 에 나오는 복날 개 잡듯 하는 구타도 많이 줄었들었고, 콩나물시루 교실도 사라졌으며, 애국조회를 받다 쓰러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변한 것은 없다. 교육현장의 패러다임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열일곱, 열여덟의 가장 똑똑한 ‘청춘’들에게 “살기 힘들다”는 하소연을 들을 때면 숨이 턱턱 막혔다. 보충수업 동의서에 강제로 도장을 받아오게 하는 학교에서, 단속이 뜨면 등화관제를 실시하는 학원에서, 아이들은 협잡을 먼저 배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세대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권위에 자발적으로 굴복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는 소통에도 잘 훈련돼 있다. 이들은 ‘학교로 가는 길’만이 행복을 보장한다는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유학이라는 도피와 탈학교라는 저항의 물결은 점점 더 거세어질 것이다. 이들이 획일주의 교육의 조종을 울리는 때는 언제쯤일까. 우리는 그때를 준비해야 한다. 행동하는 청소년들에게서 발견한 희망을 마지막으로 ‘학교!’의 문을 닫는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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