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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라 구제 안 된다니… 전세 피해자 국적부터 따지는 정부”

최광일씨 법률 지원 이어가는 박영아 변호사… “법령상 ‘국민’은 외려 보편성 강조하는 표현”
등록 2026-10-29 21:34수정 2026-11-03 10:51
2026년 10월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무실 근처에서 박영아 변호사가 중국 동포 최광일(가명)씨의 행정심판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26년 10월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무실 근처에서 박영아 변호사가 중국 동포 최광일(가명)씨의 행정심판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중국 동포 최광일(가명·40)씨는 2026년 3월30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엘에이치)를 상대로 “외국인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피해주택 매입 거부 처분을 무효로 해달라”며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9월1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최씨의 청구를 각하했다. 최씨의 법률대리인인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기각과 달리 각하는 아예 신청할 권리가 없고, 심판 청구 판단조차 되지 않았다는 뜻”이라며 답답한 심정을 내비쳤다.

2010년 공감에 합류한 박 변호사는 홀로 행정심판을 진행한다는 최씨의 사연을 듣고, 동료 변호사와 함께 무료 법률 지원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는 “외국인도 한국 법의 적용을 받고 살아가는데, 최씨가 국가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크게 느꼈다”며 참여한 계기를 설명했다. 10월2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사무실에서 박 변호사를 만나 이번 사건의 법적 쟁점을 짚어봤다.

 

“정부의 자의적 해석에서 비롯된 사건”

 

2024년 9월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약칭 전세사기피해자법) 개정으로 도입된 ‘피해주택 매입’은 엘에이치가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경매로 매입한 뒤 피해자에게 공공임대로 제공하는 제도다. 피해자가 살던 집에서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실질적인 구제책으로 꼽힌다.

전세사기피해자법 제25조 1항은 피해주택 매입 요청의 주체를 내국인으로 한정하지 않고 ‘전세사기 피해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피해주택 매입 요청은 주택의 매입 가능 여부를 검토하는 단계인 ‘사전협의’가 이뤄진 뒤에야 가능한데도, 최씨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사전협의 신청마저 거부당했다. 박 변호사는 “해당 주택이 대상인지를 검토한 게 아니라, 사람에 대한 판단을 한 것”이라며 “사전협의 신청권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엘에이치는 4월30일 제출한 행정심판 답변서에서 최씨에게 신청권이 없는 근거로 “주택도시기금을 재원으로 하는 피해주택 매입 사업의 지원 대상을 ‘국민’으로 한정해 외국인인 청구인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관련 법령의 규정과 입법 취지에 따라 적법·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주택도시기금법 제1조가 법의 목적을 “국민의 주거복지 증진과 삶의 질 향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매입 지원 대상에서 외국인은 제외된다고 명시했으니 지원 대상 범위를 우리가 임의로 변경할 재량권이 없다”고도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이는 법이 지향하는 일반적인 방향을 제시한 목적 규정일 뿐, 기금 용도를 정한 규정이 아니다”라며 “우리나라 여러 법령에서 ‘국민’이란 표현을 쓰는 것은 보편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나 엘에이치는 결국 주택도시기금이 ‘국민의 주거 안정을 위한 국민의 돈’이라는 이유로 외국인 전세사기 피해자의 주택 매입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논리에도 반론이 제기된다.

기금의 재원인 국민주택채권은 주택을 매수하거나 소유권 이전 등기를 신청할 때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하는데, 외국인 역시 부동산 거래나 개발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국민주택채권을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한다. 기금 조성의 또 다른 기반인 주택청약저축 또한 외국인의 가입을 허용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기금 조성에 필요한 의무는 외국인에게 동일하게 부여하면서 정작 기금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은 주택도시기금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만병통치약처럼 쓰이는 ‘상호주의’

 

헌법 제11조는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평등권을 규정한다. 그러나 엘에이치는 외국인의 피해주택 매입 신청 거부를 “합리적 이유가 있는 구별”이라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최씨는 법이 정한 동일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피해자로 결정됐고, 주거 불안 상태에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비교집단에 해당한다”며 “피해주택 매입에 대해서만 기금 목적을 이유로 외국인을 배제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고, 차별을 정당화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가 외국인에게 제공하는 다른 지원책에는 이미 주택도시기금이 쓰이고 있다. 전세사기피해자법 제26조 2항은 경매·공매 지원 서비스에 필요한 비용 일부를 주택도시기금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엘에이치는 “전세사기피해자법의 적용 대상에 외국인이 포함되는 것은 맞지만, 국가 예산이나 기금이 투입되는 일부 사회보장적 성격의 정책까지 외국인에게 모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회보장기본법 제8조에 따르면 국내 거주 외국인에게 사회보장제도를 적용할 때는 상호주의를 따르는 것이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박 변호사는 “상호주의 원칙이 만병통치약처럼 쓰이고 있다”며 “취약계층의 기본 권리를 배제하는 근거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상호주의는 외교·경제·통상 등 국가 간 관계에서 상대국이 자국에 혜택을 주거나 제약을 가한 만큼 자국도 똑같이 대우한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인권 전문가들은 이 원칙을 사회보장 영역에 적용하는 데 줄곧 비판을 제기해왔다. 2025년 유엔(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의 사회보장제도 전반에서 외국인에 대해 상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사회보장기본법이 국제인권법상 차별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폐기하도록 권고했다. 박 변호사는 “상호주의 원칙은 국가 간 협상에서 협상력을 확보하는 데 유용할 수 있지만, 한국에 정주하는 외국인에게 적용할 때는 한국의 상황도 함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층 10명 중 1명은 이주배경인구

 

10월26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이주배경인구 통계’를 보면 국내 20·30대 10명 중 1명은 이주배경인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주배경인구에는 외국인과 귀화·인지자, 본인이나 부모 중 한 명이 외국인 또는 귀화자인 ‘이민자 2세’, 북한이탈주민과 그 자녀 등이 포함된다. 국내 인구에서 외국인과 이주민의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으나, 이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단지 ‘외국인이니까 안 된다’로 끝내버리면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며 “제도 자체가 포용적이지 못하면 그 안에서 끊임없이 구분하고 배제할 대상을 새로 찾아낸다”고 말했다.

최씨의 행정심판은 각하로 끝났지만, 11월30일까지 행정소송 제기가 가능하다. 박 변호사도 다시 한번 의지를 다졌다. “국적에 따른 차별이 너무나 당연시되고 있어요. 행정기관의 자의적 차별에 대해 작게나마 균열을 내고 틈을 만든다는 점에서 법원의 명확한 판단을 받아보고 싶어요.”

공주경 기자 wnrud123@hani.co.kr

 

2026년 10월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무실 근처에서 박영아 변호사가 사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26년 10월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무실 근처에서 박영아 변호사가 사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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