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외국인 10가구 쫓겨나고 한국인 1가구만 구제된 그 빌라, 대체 왜?

‘피해주택 매입’ 등 핵심 대책에서 외국 국적은 애초 제외… 임차보증금 3분의 1 보장하는 최소보장제도 대상에서 빼
등록 2026-10-29 21:35수정 2026-11-02 09:06
외국인 전세사기 피해자 최광일(가명)씨가 2026년 10월26일 오후 경기도 안양의 한 공원에서 ‘외국인 피해자 전세사기피해주택 매입 거부처분 무효확인청구’를 읽어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외국인 전세사기 피해자 최광일(가명)씨가 2026년 10월26일 오후 경기도 안양의 한 공원에서 ‘외국인 피해자 전세사기피해주택 매입 거부처분 무효확인청구’를 읽어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우리도 한국 사람과 똑같은 과정으로 집을 구했는데, 왜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나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사는 중국 국적 동포 최광일(가명·40)씨는 2023년 9월 전세사기를 당했다. 이로부터 3년이 지났다. 그동안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약칭 전세사기피해자법)이 통과돼 2023년 6월 시행됐고, 네 번의 개정을 통해 새로운 피해 구제책이 차례로 도입됐다. 그러나 최씨의 사정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외국인도 전세사기피해자법에 따라 내국인과 똑같이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핵심적 피해 구제책에서는 배제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최씨는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그는 2026년 4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엘에이치)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한국을 향해 증명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2026년 10월26일 경기도 안양의 한 공원에서 최씨를 만났다.

 

아무리 외쳐봐도 똑같은 답변

 

중국에서 생활하던 최씨는 나이 든 부모를 돌보기 위해 2019년 겨울 한국에 왔다. 최씨의 부모는 1999년 한국에 들어와 건설 현장 일용직과 공장 조립라인에서 일하며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댔다. 최씨 가족은 4평 남짓한 원룸에서 살다가 부모가 모은 1억4천만원으로 전셋집을 마련했다. 20년 넘게 한국에서 원룸살이를 했던 부모에게도 처음 얻은 투룸은 기쁨이었다. 그러나 새집은 얼마 가지 않아 최씨 가족을 배신했다. 집주인이 임대차계약 체결 당일 최씨 가족이 계약한 주택에 고액의 근저당권을 설정했고, 채무를 갚지 못하자 2023년 9월 주택의 경매 절차가 개시된 것이다. 결국 최씨 가족은 차곡차곡 모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전세사기 피해자이자 ‘외국인’인 최씨는 도움을 청하는 것부터 큰 장벽이었다. 피해 사실을 인지한 뒤 안산시청과 대한법률구조공단 등 여러 기관을 찾아다니며 자문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외국인이라 이건 안 된다” “다른 곳에 가보라”는 말뿐이었다. 전세사기피해자법이 시행됐지만, 제정 당시 대출 연장 외에 뚜렷한 대책이 없어 외국인을 위한 구제책을 찾기도 어려웠다.

결국 최씨는 직접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그는 2024년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에 들어가 평일에 휴가를 내고 기자회견에 참여하는 등 활동을 이어갔다. 길거리에서 펼침막을 들고 외국인의 처지를 알리며 제도 개선을 요구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소용없다고 느낀 최씨는 2026년 대책위 활동을 그만뒀다.

전세사기피해자법은 총 네 번의 개정을 통해 긴급 주거지원, 피해주택 매입, 최소보장제 등 구제책을 마련했다. 2024년 9월 도입된 피해주택 매입 제도는 엘에이치가 피해자의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아 경매에서 피해주택을 매입한 뒤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가장 실질적인 주거지원책이다. 피해자는 해당 주택에 최장 20년을 거주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적은 끝까지 최씨의 발목을 붙잡았다. 최씨가 사는 건물에서 외국인 10가구와 한국인 1가구가 피해를 보았는데, 한국인 1가구만 피해주택 매입 신청이 승인됐다. 같은 건물에서 같은 전세사기를 당했는데 국적에 따라 구제 여부가 갈린 셈이다. 최씨도 피해주택 매입 사전협의를 신청했지만, 엘에이치로부터 “외국인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3월 국민신문고 민원에 대한 답변에서도 국토교통부는 주택도시기금법을 근거로 “피해주택 매입 재원인 주택도시기금은 국민의 주거 안정과 주거 수준 향상을 목적으로 하므로 외국인은 지원 대상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행정심판 청구했으나 ‘각하’

 

외국인 전세사기 피해자 최광일(가명)씨가 2026년 10월26일 오후 경기도 안양의 한 공원에서 ‘외국인 피해자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 거부처분 무효확인청구’를 읽어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외국인 전세사기 피해자 최광일(가명)씨가 2026년 10월26일 오후 경기도 안양의 한 공원에서 ‘외국인 피해자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 거부처분 무효확인청구’를 읽어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최씨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전세사기피해자법에 따라 2024년 3월 피해자로 공식 인정받았고, 법이 피해주택 매입을 요청할 수 있는 주체를 내국인으로 한정하지 않고 ‘전세사기 피해자’로 규정하고 있는데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신청조차 거부당한 것이다. 결국 최씨는 2026년 4월 집행기관인 엘에이치를 상대로 “외국인 피해자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 거부 처분을 무효로 해달라”는 취지의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서 받은 결과는 ‘각하’였다. 판단 이유는 국토부와 같았다.

최씨는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라고 했다. 그는 “법률구조공단에 행정심판 청구 상담을 받을 때부터 한국 국민이 아니라 절대 이기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그래도 한국은 민주사회니까, 가능할지도 모른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의미는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한국의 법이 (외국인을 보호하지 못하는)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으니까요.”

국토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가 2026년 9월까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한 결정 건수는 4만1559건이다. 이 가운데 내국인은 4만1003건(98.7%), 외국인은 556건(1.3%)이다.

98.7%와 1.3%의 격차만큼 내국인과 외국인 피해자 사이의 이해관계는 엇갈린다. 최씨는 “외국인들은 경매를 유예해달라는 요구가 컸지만, 대부분의 한국인 피해자는 경매가 빨리 진행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한국인 피해자들은 경매가 진행돼야 최소보장제나 피해주택 매입 제도 등 주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임차보증금의 3분의 1을 보장받을 수 있는 최소보장제는 외국인을 대상에서 아예 빼버렸다.

외국인 피해자들도 공인중개사를 통해 내국인과 같은 절차로 전세계약을 했다. 최씨 가족도 공인중개사가 2억원의 공제증서를 보여주며 “임대인의 재력이 탄탄하니 안심해도 된다”고 말해 계약을 결정했다. 최씨는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똑같이 일어난 전세사기 피해이고, 한국 경찰이 형사사건으로 인정한 일이다. 우리도 한국에서 세금을 내며 살아가는 만큼 지원받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2026년 1월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에서 ‘2026 국회의 최우선 처리 과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2026년 1월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에서 ‘2026 국회의 최우선 처리 과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긴급지원주택 입주자, 두 자릿수 머무는 이유

 

국토부는 한겨레21에 외국인 피해자가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로 긴급 주거지원(최장 6년), 한국주택금융공사(HF) 보금자리론을 통한 구매자금 대출지원, 경·공매 유예 중지 및 우선매수권 행사, 취득세·지방세 감면 및 조세채권 안분 지원(집주인의 누적 체납 세금을 피해주택별로 쪼개어 부과하는 제도) 등이 있다고 안내했다. 그러나 외국인 지원책 가운데 그나마 도움되는 제도로 여겨지는 긴급 주거지원조차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존 공공임대주택의 공실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다보니 피해자의 직장이나 생활권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주택이 배정되거나, 가구원 수에 비해 좁은 집에 입주하는 경우도 있어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실이 엘에이치에서 받은 ‘2023~2026년 월별 긴급(주거)지원주택 입주 건수 현황’을 보면, 외국인 긴급지원주택 입주자는 2023년 1명, 2024년 10명, 2025년 37명, 2026년 17명에 그쳤다.

내국인과 외국인을 막론하고, 피해자에게 가장 절실한 지원은 살던 집에 계속 머물며 당장 쫓겨날 걱정을 더는 것이다. 그래야 앞으로의 주거 계획을 세울 시간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은 피해주택 매입을 비롯해 디딤돌·버팀목 대출 등 직접적인 주거·금융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피해주택 매입이 재정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도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동규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엘에이치의 피해주택 매입은 주택 감정가보다 낮은 경매 낙찰가로 주택을 매입하고, 그 차액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국가나 주택도시기금에 실질적인 재정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창민 의원실이 국토부에서 받은 ‘내·외국인 전세사기 피해자의 지원제도 이용 현황’에서도 피해주택 매입이 1만1148건으로 가장 많은 지원 건수를 기록했다. 이어 조세채권 안분 8884건, 긴급복지 지원 6056건, 경·공매 대행 서비스 4700건 순이었다. 가장 수요가 많은 핵심 구제책에서 정작 외국인 피해자들만 소외된 셈이다.

전국 외국인 인구의 34.6%(71만3709명)가 거주하는 경기도는 외국인 전세사기 피해자도 엘에이치의 피해주택 매입 대상에 포함하고,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한 저리 전세자금 대출과 기존 전세대출을 갈아타는 대환대출을 이용할 수 있도록 금융지원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8월 국토교통부에 건의했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한 군데가 뚫리면 다 무너진다’는 두려움 때문에 (외국인 배제 조항을) 손을 못 대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라며 “주택임대차 시장에서 주거권을 침해받거나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들에게는 국적과 관계없이 국가 차원의 주거지원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매 앞뒀지만… “끝까지 해봐야죠”

 

외국인 피해자 다수가 경매 유예를 신청했지만 법원이 그대로 경매를 진행하면서 최씨가 사는 주택의 경매 결과는 11월3일 나올 예정이다. 건물이 낙찰되면 한국인 가구를 제외한 외국인 10가구는 모두 짐을 싸야 한다. 최씨는 11월30일까지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패소할 경우 감당해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아 소송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최씨는 “외국인 피해자 10가구 대부분이 60대 이상 고령자로, 사고로 장애를 입은 자녀를 둔 세대도 있다”며 “이대로 쫓겨나면 생계를 이어갈 방법조차 없다”고 말했다. “요즘 전세사기 문제에 사람들이 무관심하잖아요. 한국인 피해자 가운데서도 이미 포기한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죠.”

 

안산·안양(경기)=공주경 기자 wnrud123@hani.co.kr

한겨레 저널리즘을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