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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레커’ 정치인들의 전성시대

‘암살자(들)’ ‘닥터X’ 역사 논쟁에 경쟁적 참전… 정체성 주목받으려 극우 문화전쟁 나팔수 자처
등록 2026-10-29 21:25수정 2026-11-01 14:46
한국 정치의 장에서 문화전쟁 선봉에 서 있는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의원이라기보다는 사이버레커”(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로 불린다. 연합뉴스

한국 정치의 장에서 문화전쟁 선봉에 서 있는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의원이라기보다는 사이버레커”(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로 불린다. 연합뉴스


 

영화 ‘암살자(들)’에 이어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닥터엑스(X): 하얀 마피아의 시대’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전자는 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의 배후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고 비난받았고, 후자를 두고선 5·18 민주화운동을 의료 서사의 배경으로 가져온 것이 부적절했다며 방영 중단을 요구하는 국회 청원까지 등장했다.

 

단단해지는 극우 문화전쟁 네트워크

 

정치권에서도 소란이 계속됐다. ‘암살자(들)’을 “영화가 역사가 돼 대한민국을 왜곡한다”며 비판했던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은 ‘닥터X’를 향해 “드라마를 진영의 무기로 삼지 말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출신 하태경 보험연수원장은 개인 소셜미디어에 “수술 참관하러 왔는데 의사가 메스를 내려놓고 역사 강의를 시작했다”고 말을 얹었다. 여기저기서 ‘저요, 저요’ 하며 손들고 다급하게 뛰어오는 모양새다.

극우 문화전쟁이 한국에서 얼마나 노골화·대중화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극우 색채의 정치, 종교, 교육, 언론, 문화예술계, 유튜브 채널 등과 시민이 결합해 극우 문화전쟁 네트워크가 점점 단단해지는 중이다. 시민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모여 무언가 욕하기 시작하면, 구경하던 정치인이 배우 유해진을 향해 “북한상”(북한 사람의 생김새) 같은 말로 누구를 괴롭힐지 좌표를 찍고, 유튜버가 배우 집 앞으로 달려가 항의 집회를 조직해 돈을 번다. 극장에서는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올공, 2030 나라를 살리다’가 개봉한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제1 야당 대표의 얼굴이 거듭 등장한다.

물론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2026년 10월25일(현지시각)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현 대통령의 4선을 알렸던 브라질에서도 극우의 문화전쟁이 치열하다. 1970년대 군부독재 아래 의문사당했던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2024년 바우테르 살리스의 영화 ‘아임 스틸 히어’의 보이콧 운동이 격화하던 시절,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셋째 아들이자 당시 연방 하원의원이던 에두아르두 보우소나루는 영화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 독재”를 그렸다고 비아냥거리고, 감독을 “냉소적인 사이코패스”라 불렀다. 극우 개신교 복음주의자들과 손잡고 펼친 문화전쟁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된 본인의 아버지와 닮은꼴이었다.

 

뷰캐넌, 극우 문화전쟁 정치 구호 시초

 

새삼스럽진 않다. 지난 30여 년간 유럽, 미국, 남미, 아시아 등 세계 곳곳이 극우가 일으킨 문화전쟁에 휘말려왔으니까.

‘문화전쟁’이란 말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91년 미국의 종교사회학자 제임스 헌터가 출간한 동명의 책을 통해서였다. 그는 낙태, 동성애, 여성의 권리, 다문화주의 등을 두고 미국 내 ‘진보주의자’와 ‘정통주의자’가 갈등하는 양상을 포착하기 위해 이 말을 사용했다.(윤세병, ‘역사 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문화전쟁’’) 1980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후보가 반낙태와 프로라이프 운동(임신중지권 폐지 운동)을 공화당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 새기면서 복음주의 우파를 세속 정치의 장으로 조직해 들여온 지 10여 년 만이었다.

이 말을 대중적 정치 구호로 끌어올린 이는 1992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온 팻 뷰캐넌이었다. 반유대주의자, 인종주의자, 반페미니스트이던 그는 미국 1960·1970년대 신좌파 운동이 망쳐놓은 세계에서 기독교적 가치관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빼앗긴 도시, 문화, 나라”를 되찾기 위한 “미국의 영혼을 건 문화전쟁”을 선언했다. 뷰캐넌은 1990년대, 특히 강성 반페미니스트 백인 남성 유권자에게 그들을 대변할 ‘진짜 남자’로 받아들여졌다.

1990년대 당내 비주류로 비웃음을 사면서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에게 패했던 뷰캐넌은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 ‘트럼프의 원조’로 재평가받고 있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2025년 9월 ‘최후에 웃은 자는 팻 뷰캐넌이었다’(Pat Buchanan gets the last laugh)라는 기사에서 그가 지금 공화당의 주류 정서를 형성했다고 평가했다. 조지 부시로 대변됐던 미국의 정통 보수가 지난 30여 년간 어떻게 뷰캐넌으로 대변되는 문화전쟁파 극우에 보수의 헤게모니를 넘겨줬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헌터에게 문화전쟁은 두 진영의 충돌을 묘사하는 개념이었지만, 뷰캐넌에게는 상실감을 동원하는 선언이었다. ‘되찾자’는 말에는 ‘빼앗겼다’는 피해의식과 누가 ‘진짜 국민’인지 가르는 기준이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현실 정치와 연동된 문화전쟁은 대칭적인 가치 논쟁이라기보다 정치적 위기를 정체성의 선악 대결로 바꾸는 동원 전략에 가깝다. 현재 한국 정치의 장에서 문화전쟁 선봉에 서 있는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의원이라기보다는 사이버레커”(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그가 가치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목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치열한 전장은 역사 해석의 장이다. 과거를 누가 소유하느냐가 결국 공동체의 정체성을 누가 결정하느냐와 연결되는 탓이다. 지금 한국의 극우가 왜 그토록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지키기’에 몰두하는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영화 ‘암살자(들)’.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영화 ‘암살자(들)’.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 SBS 제공

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 SBS 제공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지키기에 몰두하는 이유

 

극우의 문화전쟁은 우파가 문화적 헤게모니를 잃었다는 공포를 동력으로 삼는다. 지배하고 군림할 땐 자신들의 세계관을 설득하기 위해 ‘전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사실 문화전쟁이 취하는 전략의 뿌리는 좌파 문화운동의 근간인 그람시주의다.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권력을 잡으려면 먼저 문화적 헤게모니를 쥐어야 한다고 봤다. 1970년대 프랑스의 신우파는 이 이론을 뒤집어 ‘우파 그람시주의’를 내세웠다. 좌파가 문화로 이겼다면, 우파도 문화로 권력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오늘날 문화전쟁은 그 전략이 대중화한 결과다.

한국은 어떨까? 2025년 월간조선에 보수가 문화전쟁에서 이기려면 ‘은근한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은 ‘보수 위기론’이 처음 제기된 때가 “노무현 정권 시절”이었다고 짚는다. 2007년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 흥행을 두고 “같은 해 제17대 대통령 선거와 맞물리며 선거 판도의 변수로 지목되자, 이후 문화시장의 ‘이념 성향 불균형’ 문제에 한층 민감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다. 정권 1년차인 2008년 8월 작성된 대외비 문건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은 ‘좌파’가 국민의식 개조 및 정권 유지를 위한 선전·선동 수단으로 문화를 조직적으로 활용한다며 ‘좌파 척결을 위한 전쟁보다는 건전한 우파의 구심점을 조직화’하자고 제안한다. “한국 영화계는 좌파”라며 영화계에 대한 전면적 공격이 시작된 것은 이런 문제의식과 맞물린다.

주요 대안으로는 △정부 기금을 우파 쪽으로만 배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좌파 집단 내 인적 청산은 소리 없이 실시하며 △예술위원회·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등 핵심 기관 내부에 많은 좌파 실무자를 청산한다 등이 제시된다. 2009년부터 실시된 문화계 블랙리스트 탄압은 이 문건에 기대고 있었다. 이후 영진위는 2009년부터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등 정부 지침에 따라 지원작을 결정하는 편법 심사가 이뤄졌다며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것에 사과했다.

정부 주도로 시작된 우파 문화전쟁은 2026년에 이르러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박근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두 차례 정권을 잃은 국민의힘은 이제 완벽하게 자신을 소수자 자리에 두고 장외 싸움을 시작했다. 이명박·박근혜 시절 블랙리스트가 지원금을 끊는 방식을 취했다면, 이제 정치인들이 ‘사이버레커’가 돼 유명 배우처럼 타격감 좋은 개인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주목을 두고 벌이는 싸움이기 때문에 평점과 ‘좋아요’처럼 온라인으로 드러나는 수치가 또 하나의 전장으로 부상한다. ‘암살자(들)’의 1점 관람평에 수만 건의 공감이 몰리고, 네이버가 별점 테러와 관련된 기계적 어뷰징(조회수 조작)을 확인했다. 노리는 것은 여론 자체라기보다는 ‘여론처럼 보이는 숫자’인 셈이고, 여기에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역할은 다변화된다. 이런 변화는 21세기 내내 극우 개신교와 남초(남성 중심) 커뮤니티를 거점으로 서서히 성장한 문화전쟁의 인식론과 방법론을 타고 완성됐다.

이 상황에서 공격받은 작품들은 오히려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암살자(들)’은 330만 관객을 넘겼고, ‘닥터X’는 문제의 회차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역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무플보다는 악플’이 돈이 되는 시대의 흥행 전략은 한국 사회에서 20년 넘은 이야기다. 극우는 딱히 영화의 흥행 실패를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애초 목적이 흥행 저지가 아니라 진영 결속이라면, 극우는 이미 승리했다.

 

진영 결속 목적이라면 이미 승리한 싸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선거 승패가 문화전쟁 승패를 결정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브라질에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룰라에게 졌지만, 보우소나루 가문은 2027년부터 상원의원 둘과 하원의원 둘을 의회에 들인다. 뷰캐넌은 1992년에 패배했지만, 30년 뒤 그의 세계관이 공화당과 미국의 보수를 지배한다. 문화전쟁은 선거가 끝난 뒤에도 교회와 커뮤니티, 유튜브와 극장 속에 인프라로 남아 다음 싸움을 이어간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올공, 2030 나라를 살리다’를 보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모여 “부정선거 재선거”를 외치며 울부짖는 청년들의 얼굴에서 ‘좌파’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계속 돌이켜보게 된다. “복음주의자들이 우리에게 반대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대화할 줄 모르는 것”이라는 룰라의 말을 되새겨본다. 극우가 짜놓은 판에서 싸우지 않는 법을 고안하고, 긴 호흡의 문화 인프라를 만들어가는 것. ‘전쟁’이 아니라 ‘삶을 돌보는 법’에 몰두하는 것. 결국은 근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손희정 시사덕후·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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