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로 점검 현장.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누가 입찰을 따내든 일하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자기 회사가 따면 자기 회사에서 일하고, 남의 회사가 따도 하도급을 받아 일한다.” 업계 관계자 ㄷ씨
2024년 경북 안동에 있는 건설업체 ㅊ사의 대표 ㄱ(61)씨는 경북 일부 기차역 승강장의 손상된 구간을 메우는 관급공사를 따내기 위해 입찰에 나섰다. 당시 공사비는 7억원대로, 연매출 10억원대인 ㅊ사를 비롯한 지역 중소 건설업체들에 작지 않은 규모였다. 200개 넘는 업체가 입찰에 참여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제시한 입찰가가 높아 ㅊ사는 50위권 밖으로 밀려 탈락했다. 최종적으로 공사를 맡은 곳은 경북 경주의 한 소규모 건설업체였다.
그런데 공사가 시작되자 ㄱ씨가 다시 현장에 등장해 공사를 진두지휘했다. 건설공사대장(건설 관련 법에 따라 건설공사를 기록하는 장부)에는 ㄱ씨가 공사를 따낸 회사 소속으로 기록됐다. ㄱ씨가 낙찰업체의 ‘현장대리인’으로 선임된 것이다.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은 건설사업자가 시공관리와 기술상 관리를 위해 공사 현장에 건설기술인을 배치하도록 규정한다. 현장대리인은 통상 낙찰업체 소속으로 현장의 시공과 공정 등을 관리하는 핵심 인력이다. ㅊ사를 이끄는 ㄱ씨가 입찰경쟁을 벌이던 다른 회사의 공사를 이끌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입찰에서 떨어진 ㄱ씨의 ㅊ사가 사실상 해당 공사 현장을 주도했다는 공사 관계자들의 증언이 나왔다. ㅊ사 관계자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우리가 했다. 현장소장으로 갔다”고 말한 뒤 “ㅊ사 식구들을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ㅊ사 관계자가 공사 현장에 나온 모습을 봤다는 또 다른 관계자의 증언도 나왔다.
이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로부터 받은 자료와 한겨레21 취재팀이 입수한 철도시설 공사계약서·건설공사대장, 관계자 증언 등을 통해 확인한 내용이다.
입찰에서 탈락한 업체의 인물이 낙찰업체 소속으로 등록돼 현장을 맡고, 탈락업체의 인력까지 공사에 참여한 방식은 법 위반이 될 수 있다. 건산법은 도급을 받은 회사가 직접 시공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일괄 하도급 자체도 금지한다. 김광진 변호사(법무법인 주원)는 “원도급사가 일괄적으로 일을 위임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공사처럼 발주처가 코레일 같은 공공기관일 경우 낙찰업체는 하도급 상황을 발주처에 반드시 보고하고 감독받아야 한다. 또 건산법에 따라 한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다른 회사 소속 현장대리인으로 등록돼 공사를 총괄하는 것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이중 취업’으로 간주해 허용되지 않는다. 현행법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ㄱ씨와 ㅊ사의 공사 참여 과정에서 연이어 일어난 셈이다.

2022년 11월7일 서울 영등포역에서 열차가 선로를 이탈한 사고 후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인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문제는 낙찰받지 못한 코레일 발주 공사에서 ㄱ씨가 현장 지휘자 역할을 맡은 사례가 한 번이 아니라는 점이다. 코레일이 발주한 9억원 규모의 경북 지역 철도 방호 울타리 설치 공사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22년 진행된 공사 입찰에서 ㅊ사는 3위로 탈락했는데, ㄱ씨는 낙찰업체 소속 현장대리인으로 등장했다.
2024년 6억원대 철도 방호 울타리 공사에서도 다른 회사가 낙찰받은 현장에 ㄱ씨가 현장대리인으로 배치됐다. 같은 해 말 또 다른 철도 방호 울타리 설치 공사에서도 ㅊ사는 입찰에서 떨어졌지만, ㅊ사 인물들이 연달아 현장대리인을 맡았다. ㅊ사 이사가 먼저 현장대리인을 맡고, 그가 사임한 뒤 ㄱ씨가 이어서 현장대리인을 맡았다.
ㄱ씨는 10년 넘게 ㅊ사의 대표 또는 사내이사로 등기돼 있다. ㄱ씨는 평소 자신이 ‘대표’라고 적힌 명함을 사용했고, 회사 관계자는 ㄱ씨를 회사의 소유주라고 설명했다. 다수의 공사에서 낙찰업체가 아닌 ㅊ사가 실제로 일을 넘겨받아 처리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ㅊ사가 자격 미달 상태에서 명의대여 등을 통해 편법 시공을 이어온 정황도 드러났다. ㅊ사는 2023년 코레일이 발주한 경북 지역 철도 수해복구 공사를 수행했는데, 해당 공사는 ‘종합건설업’ 면허 보유 업체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여러 분야를 포괄하는 공사를 수행할 인력이나 자산 기준을 갖춰야만 입찰할 수 있었으나, ㅊ사는 종합건설업 면허 없이 ‘전문건설업’ 면허만 보유하고 있었다. 이 공사에도 ㄱ씨가 현장대리인으로 투입됐다. 당시 상황을 아는 관계자는 “(ㅊ사가) 낙찰업체 명의를 빌려 실제 공사를 수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부터 2025년 사이 ㅊ사 대표와 이사가 다른 낙찰업체 소속 현장대리인으로 등장한 코레일 발주 공사는 8건이 확인됐다. 해당 목록의 계약금액은 모두 약 41억원이다. 대부분 철도시설을 보수하거나 안전시설물을 설치하는 공사였다.

도상자갈 보충작업 현장.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김혜윤 한겨레 기자 unique@hani.co.kr
한겨레21이 철도시설 공사 업계 관계자들을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ㅊ사와 ㄱ씨가 공사에 참여한 방식은 업계에서 반복되는 불법하도급 구조와 맞닿아 있다. 철도시설 공사에 관여했던 이들이 설명한 공사 구조는 이렇다. 경쟁입찰에서 낙찰업체가 결정되면, ㅊ사처럼 하도급을 받으려는 회사가 낙찰업체에 접촉한다. 공사금액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 명목으로 떼어주기로 약정하고, 나머지 공사대금을 받아 실제 공사를 진행한다. 인력과 장비 또한 원도급사가 아닌 하도급사에서 투입한다.
철도 공사 업계에서 일하는 ㄴ씨는 “낙찰업체가 정해진 뒤 연락해 하도급사가 통상 공사금액의 5~10% 정도를 떼어주고 공사를 넘겨받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낙찰업체 입장에선 수수료만 받는 것을 택하는데, 철도시설 공사는 차단 작업 등 까다로운 절차가 있어 경험이 없으면 굳이 실무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철도시설 공사 입찰 자체도 많지 않아서, 굳이 경험을 쌓기보다 이윤만 남기고 하도급사에 넘기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찰 전부터 명의를 빌려줄 업체가 정해진 경우도 있다. 사전에 실제 시공할 업체를 정하고 수수료 액수까지 협의한 뒤 입찰에 참여하는 식이다.
이런 불법하도급 과정을 숨기기 위해 서류상으로 하도급업체 관계자를 원도급사에 취업시키는 일이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실제 하도급사 인력을 낙찰업체 직원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새로 입사한 것처럼 재직증명서와 4대 보험 등 관련 서류를 꾸미고, 한국건설기술인협회의 경력자료 역시 낙찰업체 소속으로 바꾼다. 이후 ㄱ씨 사례처럼 현장대리인으로 신고하는 과정을 거치면, 발주처 서류와 건설공사대장상으로는 낙찰업체가 직접 시공하는 것으로 위장할 수 있다.
관급공사를 다수 진행한 업계 관계자 ㄷ씨는 “누가 입찰을 따내든 일하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며 “자기 회사가 따면 자기 회사에서 일하고, 남의 회사가 따도 하도급을 받아 일하는 식”이라고 했다.
이런 하도급 정황이 드러나더라도 수사와 처벌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서류상 소속을 바꾸면 실제 시공업체를 가려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건설 분야 전문 김영재 변호사(법무법인 화담)는 “형식상 낙찰업체가 공사를 진행하는 구조다보니, 고발하더라도 증거 부족으로 혐의 없음 처분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파헤치지 않고 서류 중심의 형식적 수사에 그친다면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코레일의 2021~2025년 토목공사 분석 자료를 보면, 동일한 건설기술인이 서로 다른 낙찰업체 소속으로 반복 배치된 공사는 214건이었다. 해당 공사의 계약금액은 모두 약 1212억원이었다. 4회 이상 반복해서 공사 현장에 배치된 현장대리인은 14명이었고, 이 가운데 10명은 5회 이상 등장했다.
같은 시기에 진행된 서로 다른 업체의 공사 현장에 동시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건설공사대장에 기록된 기술인도 7명이나 됐다. 모두 15건이었는데, 현장대리인은 현장에 상주할 의무(건산법 제40조)가 있으므로, 동시에 두 곳에 배치됐다면 기록상으로도 법을 어겼을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런 불법하도급 구조가 공사의 품질을 낮출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코레일이 발주한 토목공사에는 철도시설을 보강하거나 안전시설을 설치하는 공사가 포함돼 있다. 시공 주체와 관리 책임이 불분명해질 경우 철도 안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ㄱ씨가 현장대리인으로 등장한 경북 지역 철도 수해복구 공사(2023년 발주)나 철도 터널 출입구 안전난간 설치 공사(2025년) 모두 승객이나 현장 작업자의 안전과 직결된다. 이 밖에 동일 기술인이 서로 다른 낙찰업체 소속으로 반복 배치된 공사 목록에는 터널 구조물 보강과 교량 보강 등 안전을 고려해 정교하게 시공돼야 할 공사들이 포함돼 있었다.
김영재 변호사는 “명의대여와 영업비 명목으로 자금이 빠져나가면 실제 공사는 원래 도급받은 금액보다 훨씬 적은 예산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며 “이는 공사 품질 저하로 이어져 결국 부실 공사 가능성을 키운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의 안전과 시설물의 기능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격을 갖춘 업체만 입찰할 수 있도록 기준을 정해둔 것”이라며 “지금 같은 불법·편법이 방치되면 무자격 업체가 공사 현장을 관리·감독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노동자들의 임금과 고용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인임 정책연구소 이음 이사장은 “계약 단계가 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 이윤을 챙기면 하도급 노동자에게 돌아갈 임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철도공사 직원들이 도상자갈 보충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결국 발주처이자 공공기관인 코레일이 철저한 관리·감독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한 이사장은 “인력이 정당한 계약을 통해 투입되는지, 도급업체가 제구실하는지를 꼼꼼히 점검하는 게 발주처 도급 담당자의 핵심 역할”이라며 “시방서(공사 설명서) 준수 여부를 끊임없이 감독하고 안전관리도 엄격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하도급 의혹을 두고 ㄱ씨는 한겨레21의 질의에 응하지 않았다. ㅊ사 관계자는 하도급 여부를 묻는 말에 “하도급한 것도 있고 안 한 것도 있다”고 답했다. 다만 어느 공사에서 하도급했는지는 특정하지 않았다. ㅊ사에 공사를 불법적으로 하도급했다는 의혹을 받는 원도급사 중 일부는 절차대로 공사를 진행했고, ㄱ씨가 실제 입사해 현장대리인을 맡았으며 공사를 하도급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 밖의 원도급사들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코레일 쪽은 불법 하도급 공사를 두고 “감사실에서 감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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