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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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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산당, 사회주의운동의 전환을 꾀하다

국외 망명지 무장부대 정규전 대신 조선 내 농민 대중 조직화·의식화 지향
등록 2026-10-15 20:36수정 2026-10-22 08:40
조선공산당(내지당) 중앙간부 김한. (C)국사편찬위원회, 사진 제공 임경석

조선공산당(내지당) 중앙간부 김한. (C)국사편찬위원회, 사진 제공 임경석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옛 코민테른문서보관소에는 서울에서 보낸 흥미로운 편지가 보관돼 있다. 러시아어 타자본으로 3쪽 분량이다. 문서 첫 쪽 상단에 ‘조선어에서 번역’이라고 기재돼 있다. 원본은 한글로 쓰였는데, 그것을 러시아어로 번역했음을 보여준다.

 

“올해의 노동운동은 지난 몇 해에 비해 더욱 강화됐습니다. 그 중요 지표로는 무산자동맹회의 창립, 노동대회의 재조직, 노동공제회의 해산과 그를 대신한 노동연맹회의 결성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명백히 조선 노동운동사의 대사건들입니다.”1

 

서울발 비밀편지의 정체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이다. 대뜸 식민지 조선의 노동운동 약진 양상을 설명하고 있다. 편지를 쓴 사람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 노동운동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수신자도 동일한 관심을 갖는 사람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누가 쓴 편지일까? 편지 말미에 글쓴이의 이름이 적혀 있다. ‘ДЕГУАН’이라고 번역돼 있다. 조선식 성명의 음가를 소리 나는 대로 러시아어로 옮겨 적었다. ‘데구안’이라고 읽히지만 그런 조선식 이름이 있을 리가 없다. ‘조구안’이나 ‘조관’일 가능성이 큰 것 같다. 한글 편지 원본이 남아 있지 않으므로, 부득이 러시아식 철자를 단서로 삼아 편지 작성자의 신원을 더 추적해봐야겠다.

먼저 언제 작성된 편지인지를 알아보자. 내용 속에 실마리가 있다. ‘올해’에 몇몇 노동단체가 창립되고, 재조직됐다고 한다. 이 단체들이 창립되고 재조직된 시기를 확인함으로써, 올해가 어느 해를 가리키는지 알 수 있겠다. 이 중에서 무산자동맹회가 창립된 시기는 1922년 3월31일이었다.2

기존에 존재하던 두 개의 노동단체 무산자동지회와 신인동맹회가 통합해 무산자동맹회라는 이름으로 거듭났다. 재조직됐다는 노동대회도 단체 명칭이다. 1920년 2월16일 창립된 이 단체가 재조직된 때는 1922년 4월15일이었다. 이날 ‘이질 분자’를 배제하고 직업별 노동조합으로 단체 성격을 변환시켰다고 한다. ‘이질 분자’란 “자각 없는 유민(遊民)이 명리(名利)운동으로 노동단체를 이용하고자 하는 자들”을 가리킨다.3 단지 명성을 얻을 목적으로 노동운동에 참여한 지식층을 배제했다는 말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편지에서 말하는 ‘올해’란 1922년을 뜻함이 밝혀졌다. 편지 속 말투가 한 해를 회고하는 듯한 어조임에 유의하자. 편지를 작성한 시점은 1922년 연말에 가까운 때임을 추정할 수 있다. 다행히 편지를 쓴 달과 날짜도 정확히 지목할 수 있다. 러시아어 번역자는 첫 쪽 맨 위에 ‘1922년 11월25일’이라고 기재해놓았다. 편지 작성일이거나, 혹은 편지를 러시아어로 번역한 날짜일 것이다. 문맥으로 볼 때 전자일 가능성이 크다.

 

김한이 1922년 11월25일자로 모스크바 파견원 정재달·조봉암에게 보낸 비밀편지 러시아어 번역본 첫 쪽. (C)РГАСПИ , 사진 제공 임경석

김한이 1922년 11월25일자로 모스크바 파견원 정재달·조봉암에게 보낸 비밀편지 러시아어 번역본 첫 쪽. (C)РГАСПИ , 사진 제공 임경석


발신자는 중립당 간부 김한

 

1922년 11월 즈음에 조선 내지의 노동운동 상황을 모스크바에 있는 자신의 동료에게 편지로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도대체 누가 편지를 썼을까? 다음 문장이 실마리를 준다.

 

“당신의 편지를 통해 우리는 최근의 당대회 결과를 알았습니다. 종전 보고문과 이 보고문을 모스크바의 동무들에게 전해줄 것을 요청합니다.”4

 

이 문장은 편지의 발신자와 수신자를 특정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서울의 발신자는 ‘당신의 편지’를 통해 국외에서 개최된 ‘최근의 당대회’ 결과를 잘 알게 됐다고 한다. 또 적어도 두 차례 이상 편지를 국외로 보냈음도 드러나 있다. ‘최근의 당대회’에 주목할 필요를 느낀다. 그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바로 베르흐네우딘스크에서 개최된 공산당대회였다. 바이칼호 동쪽에 있는 머나먼 시베리아의 도시, 오늘날 울란우데라고 부르는 이 도시에서 1922년 10월18일부터 28일까지 열흘간 조선인 사회주의자 128명이 모인 회합이었다. 상해당(상해파 고려공산당), 이시당(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등으로 분열된 대오를 단일한 공산당으로 통합하기 위해서였다. 이 대회는 식민지 시대에 열린 사회주의자들의 회합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국내외 여러 곳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방의 소도시로 몰려들었다. 러시아 영내는 말할 것도 없고 북간도, 서간도, 일본 동경, 상해, 북경에 있는 조선인 공산주의 단체들이 대표자를 파견했다. 조선 내부에서도 대표자들이 비밀리에 파견됐음은 물론이다.

이때 서울에서 파견된 대표자가 두 사람 있었다. 정재달(23)과 조봉암(23)이었다. 이 둘의 자격은 대회의 다른 참석자들과 달랐다. 다른 이들은 상해당이나 이시당의 세포단체에서 대의원으로 선출됐으나,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공산당의 대표자였다. 서울에서 비밀리에 조직된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파견됐다고 자임했다. 이 당은 기존 상해당과 이시당과는 다른 독자 노선을 걸었다. 그래서 양당에 대해 중립적 태도를 취했다는 뜻으로 ‘중립당’이라 불리거나, 조선 내지에서 설립됐다는 뜻으로 ‘내지당’이라고도 불렸다.

두 사람을 파견할 때, 내지당 중앙간부는 훈령을 부여했다. 통합대회를 통해 중앙위원회를 구성할 터인데, “중앙위원회의 과반수는 이곳 조선 내지에 존재하는 열성 동무들로 구성”해야 하며, “당 사업의 중심을 신속히 조선 내지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5

조선 내지 중심주의였다. 당 간부 구성에서 내지 인사가 과반수를 점해야 하고, 당 중앙 소재지를 조선 내지로 옮기는 것에 두 사람은 진력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국외 망명지를 거점으로 하는 기존의 두 공산당과는 현저히 다른 노선을 견지하고 있음이 눈에 띈다.

 

새로운 훈령 부여 목적

 

이제 서울발 비밀편지의 발신자가 누군지 좁혀졌다. 바로 내지당 중앙위원회를 대표하는 이였다. 내지당 중앙간부의 일원으로서 베르흐네우딘스크 대회에 보낸 두 파견원에게 지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1922년 당시 내지당 중앙간부의 명단은 “김한, 김사국, 신백우, 원우관, 이영, 전우(정재달), 윤덕병”이었다.6

이 사람들 속에 서울발 비밀편지의 발신자가 포함돼 있었다. 바로 김한(34)이었다. 어라? 러시아어 철자 ‘ДЕГУАН’은 김한과는 전혀 무관하지 않은가. 김한의 본명이 아니라 아호가 그와 관련돼 있었다. 비 갤 제(霽), 볼 관(觀), ‘제관’이 바로 김한의 아호였다. 결국 ‘ДЕГУАН’은 ‘데구안, 조구안, 조관’이 아니라 조선공산당(내지당) 중앙간부 ‘제관’ 김한을 가리키는 러시아어 철자였다. 김한은 통합대회 파견원에게 행동 지침을 하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중앙위원 중에서도 가장 권한이 무거운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당중앙 책임비서였던 것 같다.

김한은 왜 자당의 러시아 파견원들에게 비밀편지를 썼는가? 1922년 11월25일에 말이다. 편지를 쓴 시점에 유의하자. 베르흐네우딘스크 당대회가 끝나고 한 달쯤 지난 때였다. 내지당의 두 파견자는 조선으로 귀환하는 대신에 모스크바로 향했다. 국제당 본부의 요청에 따라 조선 문제 논의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내지당 중앙위원회는 이 사정을 인지하고 있었다. 두 파견원이 국내로 밀송한 보고서를 통해 ‘최근의 당대회 결과’를 파악하고 있었다. 김한은 모스크바 외교에 임하는 자당의 파견원들에게 새로운 훈령을 부여할 필요를 느꼈다.

 

“우리는 대회의 결렬을 불가피한 일로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협잡질에 능한 상해파는 1년 동안에 자금만 낭비하고 혁명사업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투쟁 과제는 취약한 당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노동 대중 속에서 사업을 강화하는 일입니다. 창당이 올해 이뤄지지 않는다면, 내년에 이뤄져도 늦지 않습니다.”7

 

베르흐네우딘스크 대회가 결렬됐으므로 공산당 통일운동은 실패했음을 인정한다는 말이었다. 또 대회장에서 다수를 점한 상해당의 주도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한이 힘주어 강조하는 요점은 조선 내지 중심주의였다. 노동자 대중 속에서 사회주의운동을 강화해야 하며, 통일공산당 창립은 그 소산이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훈령은 파견원들에게 줬던 이전 훈령과 동질적인 것이었다. 내지당 중앙간부는 파견원들에게 이미 지시한 바 있었다. 내지 중심주의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대회에서 탈퇴하라고. 또 내지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국외 공산그룹과 연대하라고 지시했다.8 정재달과 조봉암은 이 훈령을 준수했다. 상해당 대의원들이 다수를 점한 대회장에서 탈퇴했고, 그 후에는 이시당 대의원단과 행동을 함께하는 양상을 보였다. 내지당 중앙간부는 이 행동 양상을 포괄적으로 승인했다.

 

비밀편지의 역사적 의의

 

김한의 비밀편지는 운동사 속에서 의의가 깊다. 한국 사회주의운동의 전환기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1920~1921년 시기의 사회주의운동은 국외 망명지에 기반을 두었다. 무장부대를 조직해 일본 제국주의를 상대로 하는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활동에 주력했다. 하지만 그 국면은 저물어갔다. 그 대신에 국내의 노동자 농민 대중을 조직화·의식화하려는 움직임이 대두했다. 민중항쟁의 고조를 통해 해방의 가능성을 확장하려는 노선이었다. 김한의 비밀편지는 내지당과 그 파견원들이 이런 전환을 가장 앞장서서 수행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참고 문헌

1. Информация из Сеула от Дегуан(서울에서 霽觀이 보내온 정보), 1쪽, 1922년 11월25일, РГАСПИ ф.495 оп.135 д.70 л.20-22.

2. 朝鮮總督府 警務局, ‘大正11年朝鮮治安狀況’ (1), 고려서림 영인, 159쪽, 1989년.

3. ‘노동대회의 갱신’, ‘개벽’, 1923년 10월, 105쪽.

4. Информация из Сеула от Дегуан, 2쪽.

5. Письма из Корей на имя тов.Тену(전우 동무 앞으로 조선에서 온 편지), 4쪽, 1922년 10월15일, РГАСПИ ф.495 оп.135 д.63 л.65-70.

6. ‘서울청년회에 대한 보고’, РГАСПИ ф.495 оп.135 д.198 л.204а-204в

7. Информация из Сеула от Дегуан, 2쪽.

8. Письма из Корей на имя тов.Тену, 4쪽.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독립운동 열전’ 저자

 

*임경석의 역사극장: 한국 사회주의운동사의 권위자인 저자가 한국 근현대사 사료를 토대로 지배자와 저항자의 희비극적 서사를 풀어내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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