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찰 피하려고…특수 잉크 쓴 편지에 숨겨둔 메시지는오래된 편지 한 장에 눈길이 간다. 국한문 혼용체로 쓰인 손편지다. 끝이 뭉툭한 붓으로 반듯하게 또박또박 쓴 글씨가 알아보기 쉽고, 행간이 넓어서 시원한 느낌을 준다. 가로로 긴 종이에 세로로 내려썼다. 1929년 7월2일에 쓴 편지이니, 근 100년이 다 된 셈이다....2024-03-01 15:29
무키우스 기억한 로마인, 송학선을 잊은 한국로마의 젊은 귀족 가이우스 무키우스는 상황이 너무나 수치스럽다고 생각했다. 로마가 적대국 에트루리아의 포위 공격을 받고 있다니. 그들은 과거의 전쟁에서 로마인이 자주 패배시켰던 자들이 아닌가.포르세나 왕이 이끄는 에트루리아 군대는 로마 성벽 포위 작전을 오래 계속했다....2024-02-14 23:06
조선에 왔다 경고받고 사과하고 떠난 일본인 사회주의자, 왜? 일본인 사회주의자 다카쓰 마사미치(高津正道·32)가 조선을 방문했다. 1925년 4월15일이었다. 그날 저녁 7시에 열차 편으로 경성역에 도착했다.그는 초창기 일본공산당의 손꼽히는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와세다대학 철학과 재학 중 사회운동단체 효민회 조직...2024-01-18 13:32
일본이 맹렬히 잡고자 한 김단야, 상하이로 어떻게 탈출했나“나(단야)는… 29일에 남조선 출장을 떠나 김천에 내렸다가, 30일 오전에 김천서 사변의 급전(急電)을 받고 곧 몸을 피하여, 2일간 산촌에 잠복하였다.”1김단야는 1925년 11월 말 조선공산당 제1차 검거 사건이 터졌을 때,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2023-12-24 19:59
‘6·10만세’ 학생이 했다? 일제의 취조 편의주의 결과6·10만세운동이 벌어지고 한 달 남짓 지난, 1926년 7월16일이었다. 조선에서는 아직도 긴장이 가시지 않았다. 검거의 회오리바람이 불고 있었다. 6월6일 최초의 대검거에 뒤이어, 6월10일 시위운동 가담자 검거, 6월21일 공산당 혐의자 검거가 꼬리를 물었다. 7...2023-12-03 15:28
기약 없이 갇혀 숱한 매를 맞고도 보복 않은 홍범도1910 년 4 월이었다. 홍범도는 러시아 연해주 재피거우 ( 梓皮溝 ) 마을에 머물러 있었다. 이 마을은 중국·러시아 국경에 가깝고 쑤이펀강 상류 산간지대에 있는 까닭에 한국 독립운동과 인연이 깊었다. 뒷날 반일 무장부대 ‘ 13 도의군’ 이 출범했고, 반일단체 혈성...2023-11-14 13:11
일제 압송 이틀 뒤 사진, 얼이 나간 표정에 눈에 어린 공포6·10 만세운동이 벌어진 그날(1926년 6월10일), 서울 시내에서 학생 150여 명이 체포됐다. 거리시위에 가담한 혐의였다. 이틀 뒤에는 ‘조선 독립 만세 사건의 계획자’로 지목된 학생들이 속속 검거된다는 신문 기사가 떴다. 연희전문학교 학생 권오상(26), 박하...2023-10-03 08:46
백광흠에게 무슨 짓을, 팔팔하던 이가 한 발짝도 못 걸어백광흠은 서울 한복판에서 체포됐다. 1926년 8월19일 오전 10시쯤이었다. 6·10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두 달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 그는 관철동 길거리에서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대에 붙들렸다.1 그 사람만이 아니었다. 시내 각처에서 활동을 개시한 형사들 때문에 ...2023-08-16 13:06
여운형, 영하 20도에 별들이 속살거리는 고비사막을 지나몽골을 경유하는 여행길은 위험했다. 1921년 11월에는 그랬다. 광막한 고비사막과 초원 지대를 육로로 건너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중국 북경에서 출발해 러시아 이르쿠츠크까지 가야 하는데, 철도는 놓여 있지 않았고 자동차길도 거칠었다.여운형(35)은 그 길을 건너려...2023-07-13 00:39
의사로 위장한 부부…독립운동, 세 번의 사지를 넘다1944년 11월27일, 일본이 패전하기 9개월 전이었다. 서울을 떠나 중국 연안까지 가려면 사지(死地)를 세 번 넘어야 했다. 첫째, 조선과 만주국의 국경을 넘어야 했다. 둘째, 만주국과 중화민국 사이의 국경인 산해관을 통과해야 했다. 셋째, 일본군과 팔로군이 총부리...2023-06-18 14:52
개교 이래 제일가는 수재의 퇴학, 긴 독립 투쟁사의 첫 장면박진홍(31)은 조선문학자 김태준(40)을 찾아갔다. 을 저술한 학자이자, 경성제국대학 조선문학 강좌의 강사로 유명한 남성을 방문한 것이다. 한때 경성제국대학 총장에게서 교수 승진까지 내락받은 전도 양양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잘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었다. 다소...2023-06-01 09:16
20대에 옥살이 4번한 신여성…일제에 저항한 이순금헤아려보니 무려 네 번이었다. 젊은 시절의 이순금이 20대에 일본 수사기관에 구속된 횟수가 말이다. 푸른 청춘을 경찰서와 형무소를 오가며 다 보낸 셈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젊음이었다. 여느 사람이라면 한 번 검거된 경험만으로도 위축됐을 것이다.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2023-05-10 14:28
양명은 왜 이동휘의 제안을 거절했을까양명(29)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얼마나 고대하던 일인가. 국제공산당 조선위원회를 둘러싸고 제각기 딴마음을 품고 있던 한 무리의 조선인, 러시아인, 그 외 각국 사람들이 한결같이 그의 도착을 기다렸다. 12월당과 2월당 두 개로 분열된 조선공산당 양쪽과 협의하는 것은...2023-04-20 10:37
앙숙에게까지 손 내민 노련한 공산당원의 좌절이동휘는 발언 차례가 돌아오자 작심하고 입을 뗐다. 1928년 9월20일 국제당 조선위원회가 주최한 조선 문제 청문회 자리였다. 그의 폭탄 발언으로 회의 분위기는 심각해졌다. 긴장감이 돌았다. 그는 위원회의 업무 처리 방식을 규탄했다. 너무 무능력했다. 회의 일시 통보...2023-04-24 08:25
분열된 조선공산당에 새 노선을 제시한 김단야김단야(29)는 1928년 9월20일에 열리는 쿠시넨위원회 회의에 출석해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국제레닌학교에 재학할 때였다. 국제당 동양부의 추천으로 1926년 9월에 입학한 이래 3년째 되던 해였다.국제레닌학교란 국제공산당이 운영하던 각국 공산당 간...2023-03-01 1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