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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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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야 반도체가 나온다

등록 2026-10-15 20:33수정 2026-10-21 10:54


“저는 엔지니어로 시작해 61년 동안 일했는데, 일주일에 50시간 이상 일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2016년 10월 한 엔지니어 출신 사업가 ㅁ씨는 대만의 유력 경제 매체인 ‘천하잡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로의 섬’이라 불릴 만큼 연장노동이 일상인 대만의 노동환경에서 이 발언은 대중의 이목을 끌 만했습니다. 한겨레21 취재진은 대만의 신주와 타이베이 취재를 진행하던 중 이 일화를 전해 들었습니다.

세계 최고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티에스엠시(TSMC) 등 대형 반도체 기업이 몰려 있는 신주과학단지는 국내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이 발표되자 모범 답안으로 꼽혔습니다. 여러 국내 언론이 신주과학단지를 찾았습니다.

한겨레21은 그곳 노동자들의 삶이 궁금했습니다. 연구개발직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주 52시간 근무 상한제 예외 적용) 도입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한국 언론 최초로 TSMC 전현직 직원과 직업의학과 전문의를 만나 ‘과로와 연구개발의 상관관계’를 물었습니다.

대만에서 만난 노동자와 전문가들은 노동시간에 집착하는 한국의 움직임을 놓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2024년 11월 반도체 특별법이 통과될 때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 필요성을 뒷받침했던 논거인 TSMC의 ‘24시간 3교대 연구개발’ 전략이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반도체가 도대체 뭐라고 연구개발직이 예외를 적용받아야 합니까.” 8년차 TSMC 엔지니어 차이청루이(가명)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신주과학단지는 한국의 참고서이자 오답노트입니다. 연구개발을 촉진하는 장점은 취하고, 노동자의 삶을 갉아먹는 환경은 경계해야 합니다. 2023년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개발직 노동자가 주 60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으로 숨져 산업재해 승인을 받은 사실이 2026년 10월12일 한겨레 보도로 드러났습니다. “높은 급여를 받는다고 해서 잠을 덜 자도 되거나 휴식과 회복이 덜 필요한 것은 아니”(황이링 대만 직업안전위생링크 상임이사)라는 조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일주일에 50시간 이상 일한 적이 거의 없었다”던 엔지니어 출신 사업가 ㅁ씨는 대만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이자 TSMC 창립자인 모리스 창입니다. 과로 문화로 비판받던 TSMC는 지금 노동시간을 줄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한국이 경쟁자이자 본보기인 회사의 과거를 따라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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