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닭가슴살이 담겨 있던 플라스틱 트레이는 훌륭한 씨앗 기르기 통이 된다. 열심히 봄을 맞이하고 있는 에얼룸토마토 새싹들.
3월이 시작돼 지난해 갈무리해둔 씨앗과 호기심에 하나둘 사들였던 씨앗을 펼쳐본다. 겨우내 냉장고 뒤편에서 잠자던 씨앗 봉투를 살펴보니 벌써 마음이 분주해진다. 심어볼 것을 쭉 늘어놓고 한참 동안 분류하고 정리해보는 건 소소한 즐거움이자 한 해를 여는 중요한 일이 되었다.
씨앗들이 언제 어디서부터 왔을까 생각하면서 괜스레 가슴 한쪽이 웅장해지기도 하고, 그 작은 씨앗에서 새싹이 자라난다는 사실에 은은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즐거움이 될 수 없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귀찮음의 연속이겠구나 싶기도 하다.
“얘들아! 작년에 그 해바라기 봤지? 작은 씨앗에서 그런 생명력은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 해바라기 줄기 봤어? 엄마는 완전 나무인 줄 알았잖아!” 아이들에게 물으니 “맞아, 나도 깜짝 놀랐어. 근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거 아닐까? 자연은 참 대단해!”라고 답한다.
아직은 뭔가를 심기에 밤과 낮의 온도차가 커서 아이들과 함께 지피펠릿(씨앗을 발아시키기 위해 코코넛 껍질을 가공해 만든 친환경 유기물질)에 씨앗을 넣으며 농사 준비를 시작했다. 지금부터 키워야 4월이나 5월 무렵에 정식할 수 있는 토마토, 고추, 가지, 브로콜리와 3월부터 당장 길러 먹을 잎채소들 위주다.
“자, 이제 기다림의 시간이야. 맨날 들여다보면서 흙이 마르면 물을 촉촉하게 줘야 해. 새싹이 나려면 햇빛도 필요하니 낮에는 빛이 잘 드는 마당 한쪽에 꺼내두어야 하고. 얼마나 자라고 있는지 잘 관찰해보자.”
“응, 엄마. 내가 스프레이로 물을 잘 뿌려줄게.”
‘기다림’이라고 하니 요즘 사람들이 릴스(짧은 동영상) 같은 것을 시청하는 데 익숙해져서, 짧은 글조차 끝까지 읽는 것을 점점 어렵게 느낀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마 아이도 어른도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장 나만 해도 굳이 찾아보려는 것은 아닌데 어느 순간 릴스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어떨 때는 짧디짧은 릴스도 두 배 속도로 빠르게 재생해서 보는데, 그런 콘텐츠를 소비하는 습관으로부터 쉽게 책을 읽거나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일로 옮겨가기가 쉽지 않음을 느낀다.
그런 탓인지 요즘엔 스마트 기기 과다 사용에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뜨개질하기, 필름카메라로 사진 찍어 인화하기, 종이책 읽기, 손글씨로 직접 기록하기 등 손으로 움직이고 실체가 있는 무언가를 만나는 일들이다. 나름의 노력이 돋보이고 멋지다. 실제로 무언가를 만졌을 때 느끼는 행복감이야말로 가장 확실하다는 것을 어쩌면 모두가 다 알고 있다.
농사는 몸을 써서 하는 일이기에 힘겹기도 하고 기다림의 연속인 일이다. 하지만 농사를 해보려 마음먹고 실행에 옮기고 나서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잘 맞는 일임을 깨달았다. 한곳에 앉아 일하는 직업이다보니 바깥에 나가 햇볕을 쬐고 몸을 움직여주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좀 덜 힘들기 위해 나름 꾀도 내며 꾸준히 흙을 이어가는 농부가 되기 바라본다.
글·사진 이지은 패브릭·그래픽 스튜디오 달리오로로 대표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네 명이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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