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몇 해 전 서울 강남 지역의 수해 피해가 심각했다. 강남 한복판에서 수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내가 살고 활동하는 강북 지역은 사진으로 본 강남만큼은 아니었지만, 저층 주거지와 반지하 거주민들이 피해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직접 봤다. 처음 만난 한 환자분은 당시 거주지가 수해로 침수돼 잠시 모텔에서 지내고 있었다. 노부부가 얼마나 힘든 상황을 겪었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해안가 지역이나 산간 지역에선 여름마다 태풍 피해와 산사태가 언제나 큰 뉴스였다. 올해도 여러 지역 주민이 수해로 곤란을 겪었고, 안타깝게도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하루빨리 피해가 복구돼 일상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물난리와 더불어 폭염도 우리를 지치게 한다. 여름은 원래 덥지만 올해 유난히 더 덥게 느껴졌다. 에어컨이 보급돼 쾌적하게 지내는 어르신도 많지만, 여전히 선풍기 하나에 의지하거나 심지어 선풍기도 없이 여름을 보내는 분들도 있다. 정순(가명) 어르신은 겨우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하고 있었다. 2년 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인지저하가 심했던 어르신으로, 직계가족이 없어 멀리 사는 조카로부터 최소한의 도움만 받으며 지내고 계셨다.
어느 날, 어르신의 기력이 떨어졌다며 보호자에게 연락이 왔다. 거동이 가능할 때는 병원에도 몇 번 모시고 갔지만 이제는 그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어르신은 무너져가는 주택 단칸방에서 홀로 무더위를 버티고 있었다. 선풍기 하나 틀어놓고 그저 생명을 유지하는 듯 보였다. 깡마른 몸은 더위조차 인지하지 못했고 모든 도움을 거부했다. 보호자는 에어컨 설치를 고민했지만, 이른 시일 내에 가능할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급한 처치를 해드리고 걱정스레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보호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경황이 없어 먼저 연락을 못 드렸네요. 119를 불러 병원으로 모시려 했는데, 어르신이 완강히 거부하셨어요. 응급대원도 심정지가 아니면 이송이 어렵다고 했고요. 결국 사설 응급차를 이용해 요양원으로 모셨습니다. 그동안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인지저하 증상이 심해도 그동안 자유롭게 지내셨던 분이라 요양원 입소가 아쉽기도 했지만, 동시에 다행이기도 했다. 더위 속에서 버티기는 분명 힘들었을 것이고, 혼자 지내며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컸다. 시설이라면 최소한의 돌봄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어르신이 잘 적응하실지는 여전히 걱정이다.
부쩍 심해진 기후위기 속에서, 어떤 노인들은 ‘기후 난민’이 되어 결국 시설 입소를 피할 수 없다. 돌봄 불가능이 일상이 돼버린다. 기후위기가 재난인 이유는 단순히 경제가 무너져서가 아니라, 사람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을 보면, 서로를 돌보려는 노력이 무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스마트한 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 말한다. 인공지능을 통한 돌봄 기술도 장려된다. 그러나 인공지능 발전은 필연적으로 막대한 전력 소모를 유발한다. 인공지능까지 가지 않더라도, 곳곳에 돌아가는 에어컨 실외기들을 보면 지구의 생명력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돌봄은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처럼 보인다. 문명의 발전이 동반한 기후위기가 생명을 위협하는 지금, 그 기술이 과연 위협받는 생명을 구할 수 있을까?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수많은 어르신이 폭염 속에 힘들어하고 온열질환으로 병원에 이송된다. 획기적 전환이 쉽지 않겠지만, 이제는 기후위기를 고려한 돌봄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시점임은 분명하다.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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